"51세 이재용 선언은 뭔가" 물은 판사, 내일 이재용 재판 연다

박태인 2020. 10. 2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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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 이재용 재판의 변수될까
지난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에 참석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 [연합뉴스]

고(故) 이건희(78)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한 25일로부터 정확히 1년 전인 2019년 10월 25일.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피고인석에 앉아 재판장으로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신경영 선언'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51세 이재용의 선언은 무엇이어야 하나"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사건을 맡고있는 정준영(53)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51세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자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습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가 별세한 다음날인 26일에도 이 법정에서 재판이 예정돼있다. 특검이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편향적으로 재판을 하고 있다"며 낸 기피신청이 기각된 지 8개월 만이다.

이날은 공판준비기일이라 피고인인 이 부회장의 출석 의무는 없다. 정 재판장은 지난 6일 피고인 중 이 부회장에게만 소환장을 발부하며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별세로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만 재판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과연 고 이 회장의 별세는 이 부회장 재판에 변수가 될 수 있을까. 법조계에선 1년 전 오늘 열렸던 이 부회장 재판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1993년 신경영 선언하던 이건희 회장의 모습. [연합뉴스]



정준영 재판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요구한 것
당시 법정에서 정 재판장의 질문을 받았던 이 부회장은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정 재판장을 바라봤다. 병상에 누워있었던 아버지와 관련한 질문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정 재판장이 언급한 고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비상경영회의에서 고인이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봐라"며 삼성전자의 개혁 드라이브를 건 경영 선언을 말한다. 이후 삼성전자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당시 정 재판장은 작심한 듯 이 부회장을 향해 "(국정농단)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범죄"라 정의했다. 이어 "다음 몇 가지 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삼성그룹이 이 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며 세 가지 주문사항을 내놨다.

그 세 가지는 ▶효과적인 기업내부 준법감시제도 설치 ▶재벌체제 폐해 시정 및 혁신경제 기여 ▶어떤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였다. 정 재판장은 이 부회장에게 "재판 중에도 당당히 기업총수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6일 서초동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재판부 요구에 세습 포기선언까지 한 이재용
정 재판장의 요청 뒤 이 부회장은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후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이 부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경영권 승계 의혹 사과와 무노조 경영 철회는 물론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란 예상밖의 경영권 세습 포기 선언도 했다.

특검 측은 재판부가 법정 외의 사안으로 이 부회장의 양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로 뇌물액이 50억 이상 늘어난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정 재판장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법조계에선 재판의 당사자가 아닌 고 이 회장의 죽음이 이 부회장의 재판에 직접적 영향을 주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동정론이 일 순 있겠지만, 그 역시 한정적일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정준영 재판장이 이 부회장에게 '책임감 있는 준법경영'를 요구한 점에 대해선 일부 전·현직 판사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국정농단 사건 공소유지를 맡고있는 박영수 특별검사. 연합뉴스



"무시할 수 없을 것""애초 변수 아니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결국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책임감 있는 준법 경영을 요구했다. 이건희 회장이 떠난 상황에서 이 부회장에게 모든 책임이 맡겨진 상황을 무시하진 못할 것"이라 말했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이재용 부회장 사건에 이건희 회장은 처음부터 변수가 될 수 없었다"며 "2014년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이 부회장이 사실상 삼성그룹 총수 역할을 하지 않았냐"고 했다.

이 부회장 재판부는 26일 공판준비기일에서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평가할 전문심리위원 선정을 논의한다.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으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61)을 지정했다. 이 전 부회장 측은 김경수(60) 전 대구고검장을 제안한 상태다.

박영수 특검 측은 지난 21일 전문심리위원 선정 과정이 위법하다며 전문심리위원 참여결정 취소 신청을 했다. 이날 재판에서 특검과 재판부, 이 부회장 변호인단 간의 새로운 갈등이 촉발될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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