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사진)이 북한 비핵화에 앞선 종전선언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先)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재차 드러낸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21일(현지시간)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이 북한의 비핵화 없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북한 주민의 더 밝은 미래, 북한과 한국 사이의 상태를 바꿀 문서들을 분명히 포함하는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일련의 문제들을 바라보는 미국의 방식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방식이란 2018년 있었던 1차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의 4대 합의사항인 ‘동시적·병행적 진전’ 원칙을 말한다. 종전선언뿐만 아니라 남북 협력 문제를 비핵화 논의와 별도로 진행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우리는 (비핵화의 끝에) 세계 평화와 안정, 그리고 북한 주민들을 위한 중요하고 좋은 결과가 있다고 계속해서 믿고 있다”며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 궁극적으로 한국 대통령이 말했던 것으로 이어질 그런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은 비핵화 협상 재개 카드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비핵화 협상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영구적으로 종식돼야 하며, 시작은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는다”며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등 외교·안보 고위 인사들이 잇따라 미국을 찾아 미국 측에 종전선언과 관련된 방안을 설명해왔다.

미 국무부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재를 해제하라는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권고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관련 질의에 “지금은 성급히 (대북)제재를 완화할 시기가 아니다”며 “북한이 금지된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개발하는 상황에서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답했다.

한편 국무부는 오는 25일부터 시작되는 폼페이오 장관의 아시아 순방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달 초에도 방한을 계획했다가 취소했다. 이후 이달 내 방한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으나, 사실상 무산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한국이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부에 따르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전날에 이어 22일에도 폼페이오 장관과 전화통화를 했고, 폼페이오 장관의 초청에 응해 미국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패싱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며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해서 장관이 방미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