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코나 화재에서 어른거리는 'ESS 도깨비불' 데자뷔

강기헌 2020. 10.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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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지난해 7월 28일 강원도 강릉시 한 사무실 옆 노상에서 주차 중이던 코나EV 차량 한대가 불타고 있다. 당시 차량 뒷편 바퀴와 트렁크가 심하게 불탔다. [강릉소방서]

'정부가 화재 원인을 콕 짚어 발표한다. 이에 해당 기업이 반발한다. 한발 물러선 정부가 추가 조사를 진행한다.'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의 연쇄 발화를 놓고 국토교통부와 현대차, LG화학 등이 벌인 줄다리기를 압축하면 이렇다. 이런 패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ESS(에너지저장장치) 연쇄 화재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정부의 조급한 발표에 각사의 이해 관계가 얽히며 화재 원인 규명 작업은 더뎌졌다. 그 시간만큼 관련 업계는 피해를 봤고, 산업 경쟁력도 까먹었다.


국토부, 자체 조사 없이 배터리 결함 발표
국토교통부는 지난 8일 코나 일렉트릭에 대한 제조사 리콜을 발표했다. 보도자료에는 “코나 전기차는 차량 충전 완료 후, 고전압 배터리의 배터리 셀 제조 불량으로 인한 내부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돼 시정조치에 들어간다”고 적었다. 배터리 양극과 음극을 가르는 분리막 손상이 화재 원인이라고 적시했다. 이에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이 반발했다. LG화학은 “재연 실험에서 화재가 확인되지 않았고, 화재의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부는 한발 물러서며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국토부의 자체 조사는 전무했다. 조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2건, 한국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이 3건을 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자발적 리콜 절차에 제조사가 제시한 의견에 따라 리콜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7일 전남 해남군 황산면 태양광 발전소 ESS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해남소방서



코나 사태에 ESS 발화 데자뷔
코나 일렉트릭 화재에선 ESS '도깨비불 사태'가 데자뷔 처럼 어른거린다. 수 년 간 이어진 ESS 연쇄 발화는 화재 원인을 특정하지 못해 도깨비불이란 별명이 따라 다녔다. ESS는 태양광 발전소 등에 설치해 전기 에너지를 저장하는 장치다. 문제가 불거진 건 ESS 사업장도 빠르게 늘면서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ESS 사업장이 빠르게 늘었고 그만큼 화재 발생 건수도 증가했다. 2017년 8월 전북 고창을 시작으로 지난해 연말까지 전국적으로 28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전체 ESS 사업장 1622곳(2020년 2월 기준)의 1.7%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배터리 전문가 등이 참여한 민-관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지난해 1월 꾸렸다. 조사위는 5개월간의 조사를 끝내고 지난해 6월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배터리 결함보단 ESS 운영과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게 조사위의 결론이었다. 그런데도 ESS 화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정부 발표 이후 전국적으로 5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다시 산업부가 나섰다. 조사위원회를 새롭게 꾸려 재조사에 들어갔다. 조사위는 올해 2월 발표한 2차 조사 결과를 통해 5건의 ESS 화재 중 4건에서 배터리가 발화요인으로 나타났다고 결론지었다. 화재가 발생한 사업장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 실험해본 결과 배터리 충전율(SOC)을 제한한 상태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충전율을 높인 후에는 불이 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ESS 화재 정부 조사에도 현재진행형
ESS 사업장에 배터리를 공급한 LG화학과 삼성SDI는 정부 조사 결과에 반발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수천억원의 충당금도 쌓아야 했다. 불행하게도 ESS 화재는 빈도가 잦아들었지만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정부의 조사 결과 발표 후에도 지난 5월 전남 해남군 황산면 ESS 사업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29번째 ESS 화재다.


코나 화재도 ESS와 비슷하게 전개
코나 화재도 ESS 도깨비불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배터리 전문가로 꾸려진 산업부 민-관 조사단이 ESS 화재 원인 규명에 1년 이상 걸린 만큼 코나 화재 원인 확인 작업에도 비슷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배터리는 소재 특성상 화재가 발생하면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증거가 거의 남지 않는다. 재연 실험도 어렵다. 산업부 민-관 조사단의 ESS 1차 조사에선 배터리 결함을 가정하고 180차례 이상 재연 실험을 했지만,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

코나EV 화재발생 이력.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변수도 많다. 배터리를 제외해도 화재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장치가 적지 않다. 배터리 온도 등을 관리하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과 통합전력제어장치(EPCU) 등이 그것이다. ESS 화재 때는 배터리 제조사와 BMS 제조사, 전력제어장치(PCS) 제조사가 화재 원인을 서로 미뤘다.

코나 화재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코나 화재는 차량을 구입한 소비자까지 피해를 입은 탓에 사회적 파장은 더욱 클 전망이다. 가솔린 등 기존 내연 기관 차량 화재 발생 건수는 1만대 당 0.75~1.6건(2019년 1~9월) 수준이지만, 지금까지 코나 일렉트릭 화재는 1만대 당 5건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전문가 “원인 규명 없는 리콜은 반쪽짜리”
전문가들은 원인 규명이 최우선이라고 조언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ESS 화재에서 보듯 정확한 원인 규명이 없으면 화재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며 “정확한 원인 규명이 없는 리콜은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잇단 화재로 국내 ESS 산업은 1년 가까이 성장을 멈췄다. 세계적으로 앞선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차원에서라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화재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배터리는 물리·화학적 특성상 화재가 발생하면 원인 규명에 장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산업경쟁력을 올리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을 투입해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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