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미안" 이틀만에 "남조선 경고"..北, NLL 들고나왔다

김다영 입력 2020. 9. 27. 16:51 수정 2020. 9. 27. 21: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한국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사과한 지 이틀 만에 남측의 영해 침범을 공개 경고하고 나섰다. 남측이 소연평도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공무원 수색 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북측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남측의 북방한계선(NLL)을 사실상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이 NLL을 다시 문제 삼고 나선 것은 2018년 이후 처음이다.


◇北 이틀만에 사과 → '경고' 돌변, 고압적 자세
북한은 27일 '남조선 당국에 경고한다' 제목의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우리는 남측이 새로운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무단침범 행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남측에서 지난 25일부터 숱한 함정과 기타 선박들을 수색작전으로 추정되는 행동에 동원하면서 우리측 수역을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서남해상과 서부해안 전 지역에서 수색을 조직하고, 조류를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시신을 습득하는 경우 관례대로 남측에 넘겨줄 절차와 방법까지도 생각해두고 있다"며 "이 같은 남측의 행동은 우리의 응당한 경각심을 유발하고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하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경·군 "우리 해역서 수색"…北 사실상 NLL 거부
그러나 이런 북측 주장과 관련해 이날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 해역에서 정상적인 수색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우발적인 충돌 상황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해경 관계자도 "북한과 남측이 생각하는 NLL 기준이 다르다"며 "해경은 NLL 남쪽에서만 수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은 자신들이 서해 영해의 기준으로 제시해 온 '서해 해상경비계선'을 기준으로 '무단 침범'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은 1999년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 해상경비계선이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이 '서해 경비계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분계선은 현재의 NLL에서 훨씬 남쪽으로 설정돼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 외교 소식통은 "2018년 이후 평화 분위기 속에서 북한은 그동안 NLL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다시 처음으로 NLL 문제를 꺼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 공무원 피살 사건을 계기로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는 NLL 문제가 다시 쟁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NLL 쟁점화 움직임에 대해 한국 정부가 빌미를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지난 2018년 9·19 군사합의서 작성 당시 남북이 서해 NLL 지역 평화수역 설정에 대해 논의하면서도 경계선에 대한 명확한 정리 없이 ‘북방한계선’이라는 문구만 넣었다.

김덕기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예비역 해군준장)은 당시 '남북 군사합의서’의 전략적 함의와 해결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서해상 '적대행위 중지 구역(일명 완충구역)'의 기준을 NLL로 정하지 않은 것이 'NLL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북한 주장을 수용했다는 논란이 있다"며 사실상 NLL이 무력화된 것으로 봤다. 김 위원은 이어 "NLL을 중심으로 남북 똑같은 해역을 완충구역에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다만 국방부는 이에 대해 "9.19 군사합의 상에 언급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표현을 통해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인정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경고로 北의 태세 전환…남북 공동조사 가능성 ↓

서해 최북단 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에 피격·사망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이모씨(47)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가 26일 오전 인천시 연평도에서 전남 목포 서해어업관리단으로 돌아갔다. 사진은 이날 이른 아침 무궁화10호가 출발 전 연평도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날 북한의 경고로 한국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청와대는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지난 25일 저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북측에 추가 조사를 요구하고 남북 공동조사 요청도 검토하기로 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이미 북한은 최고 존엄인 김정은의 이름이 들어간 사과 통지문을 전달한 만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여길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NLL 문제를 거론하는 경고가 나왔으니, 공동 조사는 물론 북한 측의 추가 설명을 듣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는 전례가 없다.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에서 박왕자씨 피살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정부는 북한에 현장 방문을 허용할 것을 촉구했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 따라서 정부 합동조사단은 금강산 현장과 유사한 강원도 고성군 해안에서 50대 전후 여성과 마네킹을 이용해 탄도실험, 사물식별 시험 등 모의시험을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더욱이 현재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침투를 경계하며 국경을 사실상 봉쇄한 채 방역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측 조사단의 입경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란 설명이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도 이번 경고문에 대해 "공동조사 가능성이 나오는 등 향후 수습 상황에 대해 북측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며 "또 향후 이 사건으로 충돌이 발생할 경우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김상진·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