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전광훈은 한국 기독교의 결과다 / 한승훈

2020. 9. 2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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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훈 ㅣ 종교학자·원광대 NEAD연구단 연구교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지난 한달은 매우 드라마틱했던 기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8월 초,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바이러스의 확산은 통제되고 있었다. 남은 것은 감염을 최대한 억누르면서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8월15일에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극우 시민단체들과 개신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군중이 광장을 가득 채웠다. 주최 쪽은 “야외에서 집단감염된 사례는 한건도 없다”며 방역 수칙을 무시했다. 심지어 이 집회는 핵심인물 중 하나였던 전광훈 목사의 교회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음에도 강행되었다. 그 결과는 코로나19 감염자의 전국적인 폭증이었다. 전광훈 목사 본인도 감염되었다. 그는 결국 보석이 취소되어 감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극우 기독교는 여전히 가을 거리를 떠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전광훈 목사를 한국 기독교의 병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상으로 취급한다. 반면 교계 일각에서는 그가 제대로 된 목사 자격도 갖추고 있지 않고 신학적으로도 의심스러운 인물이라며 그를 따르는 이들이 일부 일탈적인 신자들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필자는 전광훈이 기독교의 ‘대표’도 아니고 ‘일탈’도 아닌, 현대 한국 기독교 역사의 ‘결과’라고 본다.

그가 이른바 “빤스 목사”로 조롱을 받던 시절만 해도, 전광훈은 교계 일부에만 알려진 인기 부흥사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점잖지 못한 성차별적, 극우적 발언을 일삼는 것으로 악명이 있었지만 대단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그의 ‘재능’은 극우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노리는 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종종 막말 논란을 일으키는 그의 거침없는 (그러나 정치적, 신학적으로는 한없이 문제가 많은) 화법은 오늘날 고령화된 교회의 주축을 이루는 중장년층 신자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북한, 진보세력, 타 종교 등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은 이들에게는 익숙한 논리였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주류 목회자들이 대놓고 주장하기에는 껄끄러운 주제가 되어 있었다.

결국 전광훈은 한국 기독교의 특정 측면이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모습이다. 주류 교단들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일부 이단적인 움직임이라며 ‘손절’하려는 시도는 캡사이신을 마구 뿌려서 고추가 잔뜩 들어 있다는 것을 숨기는 꼴이다. 한국 기독교에서 그의 역할은 집권 전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아돌프 히틀러와 유사하다. 정치 깡패 집단을 이끌며 극우세력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연설을 하던 히틀러를 주류 보수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진보세력을 억누르는 데 활용하려 했다. 물론 그 결과는 히틀러의 폭주를 통제하지 못하고 모두가 그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끝났다.

8·15 집회를 앞두고 사랑제일교회에서 있었던 철야집회의 참여자들, 그리고 집회 당일 전국에서 버스를 대절해 모인 기독교인들은 평범한 개신교 교회의 신자들이었다. 기독교계 내부에서 지적하듯이, 그리고 전광훈 스스로도 과시하고 있듯이 주류 교단 대형교회들의 장로들도 이 집회를 지원하였다. 전광훈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보수 기독교 신자들이 원하지만 차마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 그들에게 익숙하고 듣고 싶은 말들을 해주는 사람이다. 전광훈을 통해 그들이 이루길 바라는 것은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절, 종교를 이용한 반공, 혐오가 국가 권력에 의해 권장되던 시절인 “좋았던 그때”로의 귀환이다.

전광훈에게 공감하는 신자들은 한편으로는 깊은 신앙심과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유튜브와 카카오톡으로 유포되는 가짜뉴스들을 자녀들에게 공유하며 자신들은 대한민국이 사악한 세력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하는 거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종교적 신념은 기복적 욕망, 구도에 대한 의지만큼이나 저항의 언어도 강화한다. 이 신성화된 거짓 저항의 언어를 끊어내지 못하면 다가오는 10월3일은 새로운 지옥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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