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논리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한 책들

2020. 9. 1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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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독자들은 유독 개인주의적 독서 성향이 강하다.

공동체의 담론이나 거시적인 주제를 다룬 책들보다 개인적인 성공이나 자기계발을 주제로 한 책들이 인기가 더 많고, 정치·사회 분야 책들은 좀처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정치·사회 분야의 책들이 심심치 않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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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강양구, 권경애, 김경률, 서민, 진중권 지음/ 천년의상상·1만7800원

검찰개혁과 촛불시민

조국백서추진위원회 지음/오마이북·2만5000원

우리나라 독자들은 유독 개인주의적 독서 성향이 강하다.공동체의 담론이나 거시적인 주제를 다룬 책들보다 개인적인 성공이나 자기계발을 주제로 한 책들이 인기가 더 많고, 정치·사회 분야 책들은 좀처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정치·사회 분야의 책들이 심심치 않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 “이 나라의 위기가 아마추어 집권 세력의 근거 없는 반일종족주의로부터 시작됐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 <반일종족주의>(미래사)가 여러 화젯거리를 만들어내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더니, 얼마 후부터는 <반일종족주의>에 반대하고 비판하는 책들의 출간이 이어져 한판 대결을 벌였다. 일본계 한국인 호사카 유지 교수가 쓴 <신친일파>(봄이아트북스)는 <반일종족주의>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일종족주의> 대 <신친일파>의 한판 대결에 이어, 최근 서점가에서는 ‘조국백서’와 ‘조국흑서’라고 불리는 2권의 책이 뜨겁게 충돌하고 있다. 조국백서라고 불리는 책의 정식명칭은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오마이북)이고 조국흑서라고 불리는 책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천년의상상)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등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주요 서점의 종합베스트셀러 최상위권 기록을 유지하며 대단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과 비판하는 세력이 각각 책을 출간하고, 책을 통해 서로 논리 대결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둘로 쪼개진 대한민국 사회에서 책이 진영 논리를 대변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광화문 태극기 집회가 끝나면 시위대들이 집단으로 근처의 대형 서점으로 몰려가 자신들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던 <반일종족주의>를 싹쓸이해서 사들이는가 하면,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는 <반일종족주의>를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평가한 진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신친일파>를 구매하며 반격한다. 올해 초 조국백서추진위원회가 백서 발간 계획을 밝히면서 시작된 이른바 ‘조국 전쟁’은 점입가경이다. <검찰개혁과 촛불시민> 출간을 위한 모금에 나흘 만에 9330명이 참여하며 목표액인 3억 원을 손쉽게 달성했다. 8월5일 책이 출간되자마자 모금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조국백서의 성공을 응원하며 앞다퉈 책을 구매했고, 이에 질세라 반대 진영의 책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서점가에 등장했다. 현재는 조국흑서가 조국백서를 앞서며 조국 전쟁의 승패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명으로 촉발돼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갈등이 서점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특정 책을 거론하며, 우리 편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책을 읽어야 한다고 부추긴다. 진영 논리에 매몰된 사람들은 상대 진영의 책을 읽으며 생각을 가다듬기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책을 읽으며 확증편향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든다. 책이 갈등을 유발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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