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코로나19로 취준생이 잃은 '세 가지'

이유민 2020. 9. 1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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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두 명의 청년을 만났습니다. 취업난에 코로나19라는 악재까지 겹쳐 막막한 현실을 보내고 있는 취업준비생들이었습니다. 유쾌하고 밝은 청년들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자신들이 잃은 ‘세 가지’를 언급할 땐 답답하고 속상한 심경이 표정에 여실없이 드러났습니다. 뉴스에서 다 전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취재후’로 담아냅니다.

[연관기사] “꿈도 거리두기중”…채용·경력·아르바이트 모두 잃었다 (2020.09.11. KBS1TV 뉴스9)

■잃은 것 ①취업

“불합격할 기회조차 없어졌다는 게 지금 취준생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대학 졸업 뒤 2년 동안 직장을 찾고 있는 27살 정지수 씨는 취업 준비생들의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채용을 진행하는 기업 자체가 적은데다, 신입 직원을 뽑더라도 규모를 대폭 줄인 게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정 씨는 "면접장에 가봐야 실전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을 지 알 수 있는데 기회 자체가 없다"며 "탈락이라도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청년층에서 고시생과 단기 아르바이트생 등을 포함한 이른바 '체감실업률'은 24.9%로 8월 기준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의 안수정 책임 매니저는 "중소 기업은 40% 이상이 하반기 채용을 진행하지 않는데다, 경력 위주로 뽑는 곳이 많다"면서 "코로나19로 채용 일정이 미뤄지는 경우도 많아 구직자들의 고충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잃은 것 ②스펙

“상반기에 HSK 시험을 신청했는데 두 번이 취소됐어요. 공부했는데 시험을 볼 수 없었던 거예요.”

정 씨는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전공 특성상 중국어 자격시험인 HSK 점수를 확보해놓아야 하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시험을 보는 것조차 녹록지 않습니다. 정 씨는 “토익 공부를 했을 땐, 시험 전날 확진자가 나와서 고사장이 폐쇄돼 시험을 치지 못한 적이 있다”면서 “공부를 했는데 시험을 볼 수 없어서 굉장히 힘이 빠지는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각종 자격시험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면서 기껏 공부해놔도 시험을 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거리두기 조치로 스터디 모임을 할 장소조차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도서관을 비롯한 공공기관들이 문을 닫다 보니 취업 준비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마련이 안 된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잃은 것 ③알바

“매일 서류를 넣어도 연락이 오는 곳이 없어요. 식당부터 카페, 영화관까지 다 지원해본 것 같아요.”

연극영화과를 다니는 대학생 송명화 씨는 연기 학원비를 아르바이트로 충당해왔습니다. 하지만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 조치가 시작된 무렵, 학원에서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매일 알바 사이트를 들여다보지만 새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송 씨는 “학원이나 학교 모두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생활도 못하다 보니 집에만 있어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이 고용주 23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0.6%가 거리두기 2.5단계 조치 이후 알바생 고용을 감소하거나 중단했다고 답했습니다. 거리 두기 2.5단계 종료 이후 알바생을 고용할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20%가 당분간 고용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삼중고’ 취준생…사회적 지원 필요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절반은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했고, 계획이 있어도 규모를 줄이거나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란 기업이 77.4%에 달했습니다. 이같은 실정에 정부는 최근 미취업 청년들에게 1인당 50만 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지원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한 일회성 지원에 불과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거란 분석입니다. 이채은 위원장은 “정부 지원 등이 청년들이 체감하기엔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최소 90일 최대 180일 정도인 실업급여 일수를 늘린다든가 구직급여나 실업부조 제도를 좀 더 확충하는 방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두 명의 취업준비생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를 잃을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잃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응원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묵묵히 버티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잃은 이들은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희망에 미약하게나마 확신을 더해 주는 건, 우리 사회의 몫일 겁니다.

이유민 기자 (reas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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