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칼럼] 경제민주화 절호의 기회를 잡아라

성한용 2020. 9. 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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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위원장이 변화와 혁신의 디엔에이를 심는 수술에 성공하면 국민의힘이 공정경제 3법에 찬성할 것이다. 2022년 대선에서 국민의힘 집권 가능성은 커진다. 수술에 실패하면 김종인 위원장은 쫓겨날 것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성한용 ㅣ 정치부 선임기자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은 1987년 헌법에서 빠질 뻔했다. 최종 검토 과정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빼려고 했다. 김종인 의원은 뺄 수 없다고 버티며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이야 정치세력이 경제세력에 비해 권한이 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경제세력이 정치세력을 앞지르게 될 것이고 자기들 마음대로 나라를 움직이려는 욕심을 갖게 될 것이다. 경제세력은 언제든 위헌 소송을 걸어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려 들 것이다. 그들을 제어할 헌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전두환 대통령은 “그러면 그냥 그대로 넣어야겠군”이라고 딱 한마디를 했다. 경제민주화는 그래서 헌법에 들어갔다. 1987년 이후 경제 관련 입법이나 행정처분에 대해 경제계가 함부로 위헌이라고 주장하지 못한 것은 경제민주화 조항 때문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경제민주화가 다시 눈길을 끈 것은 친재벌 노선의 이명박 정부 때였다. 민주당이 2011년 7월 당내 기구로 ‘119 경제민주화특위’를 설치하고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 정책을 통렬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위기에 처한 여당의 구원자로 나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하고 경제민주화를 공약했다. 정강·정책에도 넣었다.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해서였다. 여당과 야당이 “경제민주화는 우리가 진짜”라고 싸우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 이긴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7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재계가 아우성을 쳤다. 박근혜 대통령이 10대 재벌 총수들을 만났다.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도록 하겠다.”

항복 선언이었다. 정부는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재벌의 로비에 휘말려 탄핵당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경제민주화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2020년 총선 참패로 주저앉은 야당을 김종인 위원장이 접수했다.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넣었다. 그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우리 당은 약자와 함께하지 못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당으로 인식됐다”며 “후퇴하지 않을 변화와 혁신의 디엔에이를 당에 확실히 심겠다”고 했다.

정부가 8월25일 국무회의에서 공정경제 3법(상법 일부개정 법률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 법률안,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했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경제민주화 법안이다. 정부는 31일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무회의 이튿날 이른바 보수신문 지면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다. 공정경제 3법을 실행하면 경제가 무너지고 나라가 망할 것처럼 썼다. 상주보다 곡장이가 더 서럽게 운다는 말이 있다. 보수신문은 도대체 왜 그럴까? 김종인 위원장은 “광고를 무기로 기사 보도와 사설의 논조를 좌우한다”고 했다. 그런가? 이른바 보수신문이 재벌과 일심동체가 된 지 오래다.

다행인 것은 공정경제 3법에 대한 국민의힘의 태도다. 8월25일 국무회의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공식 논평을 내지 않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 개혁이 아니라, 재벌의 탐욕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 정부에서 시도했던 출자총액제한이나 순환출자금지 등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재벌그룹 계열의 상장회사 이사회가 민주적이고 투명한 감시체제를 갖추도록 이사회 운영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2012)

정부의 공정경제 3법과 일치한다. 그래서 참 궁금하다. 국민의힘이 공정경제 3법에 찬성할까, 반대할까?

우리나라 보수의 디엔에이는 친재벌이다. 국민의힘은 보수의 전위다. 따라서 결론은 둘 중 하나다.

첫째, 김종인 위원장이 변화와 혁신의 디엔에이를 심는 수술에 성공하는 경우다. 국민의힘이 공정경제 3법에 찬성할 것이다. 2022년 대선에서 국민의힘의 집권 가능성은 커진다.

둘째, 수술에 실패하는 경우다. 국민의힘이 공정경제 3법에 반대할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쫓겨날 것이다. 2022년 대선에서 국민의힘의 집권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다.

대선 승부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이다. 지금 우리는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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