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신과 함께 정치를

2020. 9. 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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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의 가벼운 대화가 가끔 심각한 논쟁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등장하는 단골 주제가 두 가지 있다.

사회통합을 위하여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정치와 종교가 오히려 자신들의 세력 규합에 몰두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힘든 삶으로 인해 누군가라도 원망하고 싶은 현실에서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북돋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종교가 해야 할 역할이며, 매일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국민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리더십은 정치가 해야 할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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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 - 인과 연'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인과의 가벼운 대화가 가끔 심각한 논쟁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등장하는 단골 주제가 두 가지 있다. 바로 정치와 종교에 대한 견해의 차이이며 일단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대부분 논리보다 감정의 문제로 비화되기 십상이고 종국에는 편 가르기의 소모전으로 마무리된다.

정치와 종교의 가장 큰 공통점은 힘의 근원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허물이나 과오가 있기 마련인 보통 사람이 그 어떤 차별이나 편견 없이 나를 받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어느 조직에 가입하거나 어떤 주장에 마음을 주는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풍요롭고 안전한 삶을 제공할 것이라는 달콤한 공약으로 우리의 이성을 유혹하고, 종교는 신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영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신앙이란 증거가 없어도, 심지어는 반대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종교에 대한 비판이나 개혁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많은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것은 그 믿음이 이타성(利他性)에 기반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는 민주주의를 기본 원리로 운용하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에 의해 결정되더라도 늘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무시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만연할수록 그 사회는 파시즘으로 흐를 위험이 높아진다. 영국의 소설가 에드워드 포스터(Edward Forster)는 민주주의의 두 가지 덕목은 다양성을 용인하는 것과 비판을 허락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정치는 늘 자신의 지지층보다는 불만세력이나 소외계층을 잘 설득하고 포용하면서 사회를 이끌어야 하기에 그 믿음은 보편성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는 외부의 적인 일본과의 가상전쟁을 유발하거나 내부의 적인 적폐를 비난하는 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이분법적인 프레임으로 국민들간의 싸움을 부추키고 있다. 종교 역시 바이러스를 옮기는 숙주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도 모자라서 종교탄압의 프레임을 주장하고 있다. 사회통합을 위하여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정치와 종교가 오히려 자신들의 세력 규합에 몰두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게 정치"라는 조소적인 말을 남겼다. 세상 사는 게 힘들어질수록 극단적 주장이 힘을 얻게 되고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적 휘둘림이 인간행동을 좌우하게 된다. 즉 사회가 망가질수록 비현실적인 정치구호나 종말론적인 종교예찬에 사람들의 마음이 더 현혹되는 것이다.

힘든 삶으로 인해 누군가라도 원망하고 싶은 현실에서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북돋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종교가 해야 할 역할이며, 매일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국민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리더십은 정치가 해야 할 의무다.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나쁜 상황이 있는 거지"라는 천만 관객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하루하루가 살기 힘들고 사회에 대한 증오심이 깊어질 때 정치와 종교가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신과 함께 정치가 힘을 발휘할 때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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