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자기야, 문을 열까 닫을까?

2020. 9. 2.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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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오늘 이사했는데 문을 닫으면 페인트 냄새가 심해서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문을 열면 매연 때문에 죽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문을 여는 게 좋을까 닫는 게 좋을까?" 새집으로 이사한 여자친구를 방문한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던진 질문이다.

첫 번째 남자가 "새집 냄새보다는 문 열어서 매연 맞는 게 차라리 낫지!"라고 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남자 출연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서 선풍기를 밖으로 향하게 하면 안에 냄새도 빠져나가고(매연은 집으로 못 들어오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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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자기야, 오늘 이사했는데 문을 닫으면 페인트 냄새가 심해서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문을 열면 매연 때문에 죽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문을 여는 게 좋을까 닫는 게 좋을까?” 새집으로 이사한 여자친구를 방문한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던진 질문이다.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사실 이 질문은 ‘미운 우리 새끼’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명의 미혼 여자 연예인이 5명의 남자 연예인에게 ‘연애 능력 고사’라는 주제로 던진 질문이다.

남자 연예인들은 앞다투어 정답을 맞히려 했다. 첫 번째 남자가 “새집 냄새보다는 문 열어서 매연 맞는 게 차라리 낫지!”라고 했다. 여자 연예인은 “탈락!”을 외쳤다. 두 번째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른 데로 내가 집을 한 번 알아볼까?”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탈락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남자 출연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서 선풍기를 밖으로 향하게 하면 안에 냄새도 빠져나가고…(매연은 집으로 못 들어오고)”라고 했다. 아쉽지만 또 탈락이었다. 또 한 명의 남자가 자신에 찬 목소리로 “공기청정기가 하나 필요하겠구나! 잠깐 기다려 내가 하나 사 올게”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또 탈락이었다. 참다 못한 마지막 남자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열면 매연! 닫으면 냄새! 그럼 도대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라며 불만을 쏟아 놓았다. 포기한, 완전한 탈락이었다.

누구도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그럼 과연 여자들이 원하는 정답은 무엇일까. 정답은 “자기야 괜찮아? 많이 아파? 병원 가야 하는 것 아냐?”이다. 이 정답을 들은 남자들은 의아함을 넘어 분노에 찰 것이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거야?” “네가 문을 여는 게 좋은지 닫는 게 좋은지 물었잖아?”라고 반격한다. 반대로 이 정답에 여자들은 세상에 없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바로 그거야! 문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라고 격하게 호응한다. 사실 이 정도면 남자와 여자는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왜 남자는 여자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하는 걸까. 남자들이 던진 답을 분석해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남자들은 닥쳐진 문제를 파악(결과에 대한 원인 분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승리하는 데 인생을 건다. 사냥하던 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래야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 다른 남자들 위에 군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닥쳐진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남자가 갖춰야 할 가장 치명적인 생존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이 없다면 아마 사회에서 소리 없이 도태될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일과 성공을 추구하며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여자친구의 질문을 받았을 때 고통의 한 중앙에 서 있는 여자친구는 보이지 않고 파악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만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아내가 남편에게 친구 욕을 하며 속상함을 표현할 때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남편은 아내와 친구 중 문제의 원인이 누구인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 한다. 그러고는 “당신이 잘못했네!” 혹은 “당신도 잘못했네!” 등과 같은 말로 문제의 인과 관계를 정리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속상한 이야기를 굳이 꺼낸 유일한 이유는 “당신 괜찮아? 마음 많이 상했겠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는데도 말이다.

며칠 전에 손가락을 조금 다쳤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중학생인 딸과 아들에게 손가락을 보여주며 손가락을 다쳤다고 했다. 내 손을 본 아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왜?” 아들은 내가 왜 다쳤는지 알고 싶은 듯했다. 딸은 “아빠 괜찮아?”라고 말했다. 딸은 나를 위로하고 싶었나 보다.

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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