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택배기사, 죽기 전 일주일..60시간 넘게 일했다
주 52시간 시대 '초장시간' 시달려도 법 보호 못 받아
[경향신문]
택배기사의 죽음이 과로사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노동량이 필요할까. 지난해 일터에서 쓰러졌던 한 택배기사는 쓰러지기 직전 12주 동안 평균 주 74시간을 일해 과로사 인정을 받았다. 또 다른 택배기사는 하루에 평균 600㎏ 이상 택배를 나른 것이 밝혀져 과로사로 인정됐다. 이들에게 ‘주 52시간 근무’는 딴 세상 이야기였고, 하루에 누적으로 250㎏이 넘는 무게를 들지 않도록 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지침은 무용지물이었다.
31일 정의당 노동본부는 강은미 의원을 통해 지난해 일터에서 쓰러진 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승인을 받은 택배기사 5명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 판정서를 입수, 이를 공개했다. 근로복지공단 질판위는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정신질환 등 업무 관련성을 평가하기 어려운 질병의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기구다.
판정서에는 지난해 일터에서 뇌혈관 및 심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져 사망한 택배기사 5인의 고단한 노동이 고스란히 담겼다. 5명 중 4명은 쓰러지기 전 1주일간 60시간 넘게 일했다. 그중에서도 현대택배에서 일했던 노동자 A씨의 노동시간이 79시간30분으로 가장 길었다. 주 6일 근무를 가정해도 하루 평균 13시간15분씩 일한 것이다.
사고가 난 주에만 특별히 일이 몰린 것도 아니다. CJ대한통운에서 일하다 지난해 3월 쓰러진 B씨는 쓰러지기 전 3개월간 매주 평균 74시간16분을 일했다. 매일 오전 6시 집을 나섰고, 점심시간도 제대로 갖지 않고 일한 후 오후 8~9시에야 귀가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발병 전 3개월간 주당 60시간 넘게 일하거나, 발병 전 1개월간 주당 64시간을 넘게 일한 경우 ‘과로사’로 판단한다. ‘주 52시간제’ 가 도입됐음에도 과로사 인정 기준은 높게 두고 있는 것이다.
초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무거운 택배 물량을 쉴 새 없이 날라야 하는 노동환경도 과로사의 원인이 됐다. 우체국 택배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5월 사망한 C씨가 사망 전 3개월 동안 나른 택배의 누적 중량은 5만3935㎏이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하루에 250㎏ 이상 중량물을 드는 작업을 근골격계 부담 작업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C씨는 하루 평균 642㎏의 택배를 상하차한 셈이다.
이 밖에 택배 파손·분실에 대한 책임을 택배노동자들이 져야 하는 점도 스트레스의 한 요인으로 인정됐다. 실제 A씨의 경우 사망 3일 전 택배물 파손 문제로 고객과 심한 말다툼을 벌였는데 질판위는 이 역시 질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강은미 의원은 “택배 물량이 폭주하는 추석을 앞두고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 실질적인 근로시간 단축, 택배물 중량에 따른 노동강도 완화대책, 분실 부담에 대한 대책까지 종합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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