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시인은 암벽 오르던 클라이머였다!

글 김기환 편집장 사진 신동엽문학관 제공 2020. 8. 2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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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여고 재직시절 '피톤산악회'에서 활동.. 당시 사진 발굴해 공개
신동엽문학관, 10.1~12.1 '어느 암벽등반가의 신동엽 길' 사진전 개최
북한산 백운산장 앞에 선 신동엽 시인.
1960년대 참여문학을 대표하는 저항시 중 하나인 ‘껍데기는 가라’를 쓴 신동엽 시인이 암벽등반을 즐기던 클라이머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다.
193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신동엽 시인은 1969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59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의 입선 이후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타계할 때까지 10여 년 동안 장편서사시 ‘금강’을 비롯해 많은 시와 산문을 발표했다.
신동엽 시인이 클라이머였다는 사실은 산에서 찍은 옛날 사진들을 통해 확인됐다. 백운대 ‘시인 신동엽 길’을 개척한 김기섭(58)씨가 이 일을 주도했다. 부여에 있는 신동엽문학관(관장 김형수)은 신동엽 시인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곳으로, 최근 ‘시인 신동엽길’의 존재를 인지하고 김기섭씨와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 옛 사진에 대한 고증을 진행했고, 김기섭씨가 당시 함께 활동했던 이들을 수소문해 신 시인의 구체적인 등반활동 사실을 밝혀 냈다.
신동엽 시인이 도봉산 거북바위 부근에서 선인봉(맨 우측 봉우리)과 만장봉을 배경으로 서있다.
신동엽 시인은 1961년부터 명성여자고등학교(현 동국대학교 사범대학교 부속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가 전문등반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 학교에 한국피톤산악회(이하 피톤산악회) 관계자가 함께 근무했던 것이 인연이 됐다고 한다.
피톤산악회는 1958년 4월 김경선, 김영, 임창균, 국정근씨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전문등반 산악회다. 1960년대에는 인수봉과 선인봉 등에서 등반활동을 펼쳤고,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산악구조대’와 ‘설제’ 등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도봉산 오봉야영장과 샘터도 피톤산악회가 만들었다. 한국등산학교 설립위원이며 서울시연맹 산악구조대장을 역임했던 김경배 회원도 피톤산악회 출신이다.
신동엽 시인은 피톤산악회를 만나면서 암벽등반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다. 암벽등반에 관심이 많았던 신 시인은 국정근씨에게 배우기를 청했고, 등반에 필요한 기술과 장비 다루는 법을 습득했다. 암벽등반 선등은 경험이 많은 기존 회원들이 했고, 신 시인은 후등으로 바윗길을 올랐다고 전한다. 이들은 도봉산군에 속한 선인봉, 만장봉, 주봉, 오봉, 우이암을 자주 등반했다.
도봉산 우이암을 암벽등반 중인 피톤산악회 회원들.
신동엽 시인과 함께 등반했던 피톤산악회 창립 회원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 당시 활동을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신 시인 활동 당시 중학생이던 김경배 회원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현재 미국 뉴욕에 거주 중인 김경배씨는 김기섭씨와 통화하며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이 도봉산 무수골 초입 캠프에서 촬영한 사진”이라면서, “신 시인이 어깨에 걸친 나일론 로프는 매우 귀한 것으로, 당시에는 이런 장비를 갖춘 것만으로도 전문산악인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신 시인이 1961년 피톤산악회에 가입하면서 그와 가까운 문인들 여럿이 산행하곤 했는데, 그 가운데 박봉우 시인과 하근찬 소설가가 가장 오래 산행을 함께했다. 산에서 세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당시 피톤산악회는 선인봉 아래 석굴암 자리에 산장을 지으려고 석축도 쌓으며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석굴암 스님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그 자리를 양보하고 피톤산장을 건축했는데, 이 과정에 신 시인이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만큼 산과 피톤산악회에 대한 애정이 컸다.
흥미롭게도 1993년 백운대 암벽에 ‘시인 신동엽길’을 개척한 김기섭씨도 그동안 신동엽 시인이 클라이머였다는 사실은 몰랐다. 문학도인 김기섭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이름을 바위에 영원히 새기고 싶어, 신 시인의 이름을 루트명으로 붙였을 뿐이다. 그런데 신 시인이 생의 후반기에 열정적으로 등반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니,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말을 다시금 곱씹게 된다.
도봉산 무수골 초입 부근 야영지에서 피톤산악회 회기 앞에 선 신동엽 시인(가운데).
김기섭씨는 “솔직히 나는 반골 체질로, 박정희 군사독재 압제 하에서 자신의 목을 내놓고 시를 쓴 그를 존경했다”면서 “백운대 맨 밑바닥에서 정상으로 제일 길게 나있는 ‘시인 신동엽길’은 신동엽 시인에 대한 나의 헌시獻詩이다”라고 밝혔다.
신동엽문학관은 이번에 공개된 신동엽 시인의 등반활동 사진을 모은 ‘어느 암벽등반가의 신동엽 길’ 사진전(기획 김형수, 김필중)을 기획하고 있다. 전시회는 오는 10월 1일부터 12월 1일까지 충남 부여 소재 신동엽문학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문의 신동엽문학관(041-830-6827). 홈페이지 http://www.shindongye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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