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성범죄 대책' 쏟아냈던 민주당, 이행은커녕 뒷걸음질

김형규 기자 2020. 8. 2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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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의혹' 박원순 전 시장 49재..미흡한 후속 조치

[경향신문]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49재를 맞아 온라인 추모식을 알리는 홍보물. 박홍근 의원 페이스북 캡처

성폭력 가해자 공천 원천 배제 아닌 징계시효 연장에 그쳐
윤리감찰단 역할에도 의문…당 소속 시의원은 또 성추행
친박원순계 의원 “역사로부터 평가받길” 2차 가해성 발언

더불어민주당이 잇단 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폭력 의혹 사건 후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49재가 치러진 26일 당내 일부 친박원순계 의원이 “고인의 업적이 역사로부터 평가받기를 원한다”며 ‘2차 가해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최근 당 소속 시의원이 성추행 의혹에 연루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고위공직자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재발 방지 대책이 나왔지만 ‘위기 무마용’에 그친 셈이다.

민주당은 박 전 시장 사망 후 권력형 성범죄를 막기 위한 윤리감찰단 신설과 성인지 감수성 강화 교육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행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대표 직속으로 성비위 등을 감시하는 상설기구인 윤리감찰단 신설은 28일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될 당헌·당규 개정안에 포함됐다. 하지만 윤리감찰단이 성폭력 예방 역할을 할지 의문이 제기된다. 앞서 민주당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사건 후 젠더폭력대책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후 다시 젠더폭력근절대책TF를 꾸렸지만 실효성 부재로 도마에 올랐다.

이뿐만 아니라 성폭력 가해자를 공천에서 원천 배제하자는 방안은 징계시효를 연장하는 선에 그쳤다. 당 지도부 중 유일한 여성인 남인순 최고위원이 “대표가 지명하는 최고위원 2명을 여성으로 하자”고 차기 지도부에 제안했지만, 이낙연·김부겸·박주민 등 당 대표 후보 3인 가운데 뾰족한 답을 내놓은 사람은 없다. 다음달 3일로 예정됐던 소속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한 성인지 감수성 강화 교육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무기한 보류됐다. 당내 여성 의원 30명이 요구한 당내 성비위 긴급 일제점검과 공공기관 내 성폭력 예방·구제 제도화 등도 진척이 없거나 더딘 상황이다.

당내 젠더 감수성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실제 박 전 시장 사건 후 이해찬 대표의 기자를 향한 욕설 등 젠더 이슈에 무감한 지도부의 대응이 젊은 세대와 여성층의 지지율 하락으로까지 이어졌지만 뚜렷한 대응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전 시장 사건만 해도 가해 의혹 사실을 인정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건 정춘숙 의원 정도가 유일하다. 정 의원은 지난 10일 ‘시사인’ 인터뷰에서 “박원순조차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시장의 49재가 치러진 이날 ‘2차 가해성’ 발언까지 나왔다. 당내 대표적 친박원순계로 꼽히는 박홍근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인의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고 적었다. 박 의원은 “고인의 잘못이건 실수건 있는 그대로 대중의 심판을 받았으면 한다”며 “고인이 평생 일궈온 독보적 업적도 있는 그대로 역사로부터 평가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윤준병 의원도 전날 49재 소식을 전하며 “당신의 아름다운 삶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추모 플래카드 사진을 함께 올렸다.

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박 의원의 ‘공과 분리 평가’ 주장에 대해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피해자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전형적인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 ‘공과를 그대로 인정하자’는 말에는 누군가로 인해 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며 “결국 피해자와 지지집단을 표적 삼아 손가락질하는 사회적 낙인효과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라도 진상규명부터 명명백백히 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이런 발언을 하는 자체가 ‘책임 방기’라는 지적인 셈이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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