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문재인 대표와 대화 땐 녹음기를 켜놔야 한다"

김광일 논설위원 2020. 8. 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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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들어있는 단체채팅방에 오늘 아침 이런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이 많겠지만 너무 좋은 글이라 공유합니다."라고 서두를 꺼낸 뒤 "우생마사(牛生馬死)"란 말을 소개했다. 홍수에 휩쓸렸을 때 ‘소 우(牛), 날 생(生)’, 소는 살아나오지만, ‘말 마(馬), 죽을 사(死)’, 말은 빠져 죽는다는 뜻이다.

커다란 저수지에 말과 소를 동시에 던지면 둘 다 헤엄쳐서 나온다고 한다. 말이 헤엄 속도가 훨씬 빨라 소보다 곱절 속도로 땅을 밟는데 네 발 달린 짐승이 무슨 헤엄을 그렇게 잘 치는지 신기하다고 한다. 그런데 장마 때 큰물이 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는 살아나오는데 말은 익사한다. 실제로 이번 홍수 때도 물살에 떠내려간 소가 수십 km 떨어진 곳에서 살아 있었다. 지난8월8일 경남 합천에 있는 축사에서 밀양까지 물길로만 80km, 이백 리 길을 나흘 동안 떠내려갔던 생후 86개월 된 암소가 살아서 돌아온 것이다.

물이 고여 있는 저수지 말고, 물살이 센 급류에서 말은 자신이 헤엄을 잘 치는데도 강한 물살이 자신을 떠미니깐 그 물살을 이기려고 물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간다고 한다.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다가 결국 물살에 떠밀리게 되는데 나중에는 지쳐서 익사해 버린다고 한다. 그러나 소는 절대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냥 물살을 등에 지고 같이 떠내려간다. 저러다 죽겠다 싶지만, 떠내려가는 와중에도 조금씩, 조금씩 강둑 쪽으로 다가가 어느새 강가로 엉금엉금 걸어 나온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한 신문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비교하는 분석 글을 게재했는데, 문득 ‘우생마사’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철호 칼럼니스트가 쓴 이 글은 먼저 그동안 문 대통령이 했던 말을 하나씩 되짚으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2019년11월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 2020년1월4일 "집값이 급등한 일부 지역은 취임 전 상태로 원상복구 돼야 한다", 2020년1월7일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2020년8월 "주택시장 안정되고 집값 상승세는 진정됐다" 등등이다. 이것은 모두 빈말이 되어 버렸고, 믿음과 신뢰도 사라졌다. 사실 국민 분노의 절반은 문 대통령의 이런 유체이탈 화법 때문이다. 그런데 이뿐 아니다.

요즘 SNS에는 ‘문 대통령은 얼마나 약속을 지켰나’라는 글이 퍼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다음 같은 약속을 했었다. "중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 "북한이 제일 무서워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훌륭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 드리겠다." 등등. 그런데 문 대통령의 이런 약속들은 정반대로 실행되고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모두 실없는 얘기가 돼버렸다. 사과나 변명도 없다. 문 대통령 어록 중에 다만 기억에 남을 딱 하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뿐이고, "문 대통령의 유일한 업적은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을 임명한 것뿐"이라는 역설적 비아냥거림이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만 놓고 보면 마치 물살을 거슬러 올라 헤엄을 치려는 한 마리 말처럼 보인다. 임기 초반 지지율만 믿고, 180석 거대 여당만 믿고 끝까지 민심과 시장(市場)의 물살을 거슬려 올라가려는 모습처럼 보인다. 여기에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의 어록을 선명하게 대비해보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의 흐름과 민심에 순응하는 한 마리 소처럼 보이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소는 ‘자신의 가치관과 논리가 분명하게 서 있는’, ‘자신의 말과 글이 되는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어록을 보면 이렇다. 2020년8월 문 대통령이 집값 안정을 말하자 김 위원장은 "집값 안정이라고? 대통령 혼자만의 생각이다."라고 했고,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하자 김 위원장은 2020년1월 "문 대통령은 국민의 고통에는 진짜 미안한 마음이 없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추미애 장관의 인사 칼춤과 섣부른 조직 개편에 대해 김종인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실질적으로 검찰이 어떤 모습을 갖추게 하려는 것인지 입장을 분명히 밝혀달라"고 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여당의 독주가 이어진 이번 달에도 "장외투쟁 안 한다. 선거로 정권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삭발과 단식 같은 극한투쟁을 하지 않아도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중도층에게 불어넣고 있다. 엊그제 김원웅 광복회장이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와 결탁했다"고 하고, 애국가를 지은 안익태를 "민족 반역자"라고 하자 야당 공격수들은 "김원웅은 즉각 사퇴하라"고 맹폭을 퍼부었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은 "무엇을 목적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그런 사람이 어떻게 광복회 행사장에 나와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차원이 다르다. 진보 쪽에서 또다시 ‘친일 대 반일’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들고 나오자 그것을 되치기해서 ‘중도층으로 하여금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고도로 계산된 발언’이다. ‘그런 사람, 그런 이야기, 이런 분위기’를 통탄하면서 도대체 ‘무슨 목적이냐’고 점잖게 따지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감정선을 건드리면서 뼈를 때리듯 공감을 끌어내고 있는 발언들이다.

그중 압권은 2016년2월 김종인 위원장이 했던 말이다. "우리가 좀더 도약하면 북한이 궤멸되고 통일 될 것이다." 그리고 2016년4월 김종인 위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문재인 대표와 대화할 때는 녹음기를 켜놔야 한다." 당시는 더불어민주당이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놓고 ‘김종인 당 대표 추대론’이 흔들리면서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사이의 불협화음이 커지던 시기였다. 김종인 대표가 문재인 대표랑 대화할 땐 녹음기라도 켜놔야 한다면서 문재인 대표의 두루뭉술 화법을 꼬집은 것이었다. 오늘 4년 전 어록을 꺼낸 이유는 이런 상황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은 문 대통령이 3년 전 취임사에서 했던 녹음 내용을 청와대 앞에 대형 확성기로 틀어놓고 그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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