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를 찢어버려라"..검사장 17명, '취임 일성'으로 본 검찰개혁

김진호 입력 2020. 8. 12. 08: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두 번째 검찰 고위 간부 인사발령을 받은 17명의 전국 신임 고등·지방검찰청 검사장들이 어제(11일) 취임했습니다.

취임에 앞서 신임 고등·지방검찰청 검사장들이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입니다.

추 장관은 이들에게 "검찰 직접 수사를 더 줄여나가고, 종국에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직접 수사를 축소하는 기존 검찰개혁 방향에 더해 검찰이 '공소 제기'만을 맡을 것이라는 취지입니다.

윤 총장은 "인권중심 수사 및 공판중심 수사구조 개혁에 노력해달라"고 했습니다. 윤 총장의 언급은 검찰이 직접 수사를 맡되, 그 방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어제(11일) 내놓은 고·지검장들의 취임사는 어땠을까요.


■'변화' 부정하는 취임사는 안 보여

출렁이는 대내외 검찰 여건 속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식의 취임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홍성 신임 수원지검장은 "향후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대적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관련 법령과 제도를 정확히 숙지해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적응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조재연 신임 대구지검장도 "검찰 개혁은 마치 검찰 구성원들이 그동안 국민을 위해 다해 온 헌신과 노력을 부정당하는 것만 같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국민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는 국민의 요구를 경청하고 수용해 국민의 뜻에 따라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조상철 신임 서울고검장은 "형사 절차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많은 검찰 구성원들이 당혹해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닥칠 혼란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고 있다"라고 현재 검찰개혁 분위기를 진단했습니다.

■'인권 수사' 한목소리 강조

취임사 중에 눈에 띄는 공통 단어는 '인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고·지검장이 인권을 강조했습니다. 윤 총장이 신임 고·지검장들을 만날 때 말했던 '인권수사'와 맥락이 닿아있어 보입니다.

박순철 신임 서울남부지검장은 "인권 중심의 검찰권 행사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라면서 "구속·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그 기준을 엄격히 하며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면서 제한적인 검찰권 행사를 당부했습니다.

이주형 신임 의정부지검장도 "검찰 탄생의 배경은 수사 과정에서 사법경찰에 의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는지 여부를 감시해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함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수권 신임 울산지검장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줄 우려가 있다"라면서 "국민 인권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추 장관이 3일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검찰은 국민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탄생한 기관이고, 검사는 인권 옹호의 최고 보루"라고 했던 말과 일맥상통한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 대 인간"부터 "조서 버려라" 파격까지...각개 처방전

비슷한 취지의 취임사 속에서 신임 고·지검장들이 내놓은 '국민 신뢰받기' 처방전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고흥 신임 인천지검장은 '인간'을 내세웠습니다. 고 지검장은 "검찰 신뢰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 검찰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한다"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건 관계인들을 형사 절차의 대상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처방을 내놨습니다.

가장 파격적인 처방전은 여환섭 신임 광주지검장이 썼습니다. "조서를 버리자"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검찰 구조를 '공판 준비' 체제로 개편하자는 목소리입니다. 여 지검장은 "진술증거는 조서가 아닌 공판정에서 직접 신문해 현출시켜야 한다"면서 "물증 확보 위주의 수사 시스템을 확립하고, 필요하면 조사자 증언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여 지검장의 취임사는 윤 총장이 '인권수사'에 이어 두 번째로 당부했던 '공판 중심 수사'에 대한 구체적 방안으로 풀이됩니다.

■취임사에 숨은 뼈 있는 말?

'해석'의 영역도 있었습니다. 취임사 속에서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현실을 에둘러 비판한 내용을 찾아봤습니다.

먼저 '자성 속 책임론'입니다. 검찰 조직이 겪는 혼란이 외부가 아닌 검찰 내부에 그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로 해석되는 말들입니다.

배용원 신임 전주지검장은 "1948년 검찰청법이 제정된 이래 지금처럼 검찰 제도 자체에 대한 위기가 있었는지 자문해 본다"면서 "연유를 불문하고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결과를 자성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쇄신을 강조했습니다.

구본선 신임 광주고검장도 "검찰이 그동안 실체적 진실 발견에 매몰돼 인권 보호를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 검찰 안팎에서 일부 사건과 인사 등을 두고 격해지는 언행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조상철 신임 서울고검장은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타인에게 무례하고,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며, 자기 책임에는 눈 감은 채 다른 사람만 마구 힐책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공동체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는 자격 미달"이라고 했습니다.

조 고검장은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과 수사팀인 정진웅 부장검사의 '몸싸움'을 감찰 중인 서울고검의 수장입니다. 양 측의 '몸싸움'이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에 대한 언급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종합해보면, 이번에 취임한 17명 고·지검장 대부분은 현재 검찰이 혼란 속에 있다는 현실 인식을 취임사에 담았습니다. 검찰개혁은 일부 잡음 속에서도 정부가 그 작업을 밟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개혁의 수행은 일선 고·지검장이 맡게 될 겁니다. 각자 다른 '취임 일성'을 내놓은 고·지검장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김진호 기자 (hit@kbs.co.kr)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