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살아남은 자의 상처]③ 모든 사고는 충격을 남긴다…빠른 개입 필요

입력 2020.07.28 (22:20) 수정 2020.07.2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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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산재트라우마 기획보도 순섭니다.

산재사고 후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사연 어제 보도해드렸는데요. 

노동자 트라우마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정부는 2년 전 대구에 전국 최초로 직업 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해 시범 운영해왔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운영 결과는 어땠을까요?  

KBS는 이 실적자료를 입수해 산재트라우마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하선아, 곽선정 기자가 차례대로 보도합니다. 

[리포트]

2017년 5월 1일 노동절에 일어난 삼성중공업 크레인 전도사고.

현장에 있었던 김영환 씨는 지금도 당시의 끔찍한 장면들이 잔상으로 남아 고통스럽습니다. 

사고 당시의 사고음은 저장돼있다 재생되는듯 또렷합니다.  

[김영환/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목격 노동자 : "꿈같죠, 꿈. 뭔가 콰쾅 하면서 떨어지는... 그리고 와이어 소리, 그리고 직전에 사이렌이 울렸으니까요 계속... 와이어가 돌면서 기둥에 휘 감기면서 크레인이 옆으로 넘어가면서 부딪히면서 종소리 들렸을 때 노란 기둥 근처에 사람들이 기억이 나요, 공포에 질린 얼굴 있잖아요."]

이런 공포는 예기치않은 일상 생활에서 순간순간 밀려왔습니다. 

김씨의 고통은 어린 자녀에게로, 그리고 가족에게로 전염되듯 하나둘 번져갔습니다.

그 날 이후 김씨도, 가족도 고통은 일상이 됐습니다.  

[김영환/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목격 노동자 : "샤워를 하는데 뭐랄까... 샴푸가 눈에 있으니까 앞이 안보이잖아요. 중간에 숨 쉬기가 힘들어지는 거예요, 갑자기... 샤워도 제대로 못하고 뛰쳐나온 적도 있고... 날카롭고 시끄러운 소리에도 화가 나니까... 큰 애는 아직까지도 저를 무서워해요... 제 앞에서 덜덜덜 떨고 울더라고요."]

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는 지난 2년 동안 시범운영을 하면서 김씨 등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들을 비롯해 844명에게 심리상담을 지원했습니다.  

상담 자료를 분석해봤더니 사고 유형별로 충격을 주는 정도는 달랐습니다.  

화재와 폭발, 파열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 가운데 60%가 정신적 외상을 입어 충격도가 가장 컸고, 뒤이어 깔림사고와 물체에 맞는 사고, 끼임 사고 순이었습니다. 

정신적 외상을 크게 받는 사람은 예상과 달리 사고 재해자가 아니었습니다.  

직접 목격자이거나 구조 참여자인 사람이 재해자보다도 충격이 컸고, 입사 동기 등 재해를 입은 사람과 친밀감이 높을수록 충격의 강도는 더 컸습니다.  

[김미연/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 심리상담사 : "나 또한 산재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을 것이고, 직장이라고 하는 거는 내 가족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잖아요. 직접 목격을 하지 않았더라도, 뭔가 사내에서 친분관계를 돈독하게 가지셨던 분이라면 충격도가 높으실 수 있으세요."]

하나의 산재사고가 결국 사업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적 외상을 안겨주는 겁니다.  

사업장 전 직원들에 대상으로 한 트라우마 심리상담이 중요한 이윱니다.  

[김미연/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 심리상담사 : "적절한 시기에 들어가서 치료를 하게 된다면 이분들이 회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요. 회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우리가 보호받고 있다는 것. 우리 회사로부터, 우리나라로부터 보호받고 있구나(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죠.)”]

'모든 사고는 모두에게 충격을 남긴다.' 사고 당사자가 아니어도, 사고를 직접 목격하지 않아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에게 트라우마 치료는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  

▼ “빠르고 적극적인 치료 필요”

그런데, 산재 트라우마의 치료 시기도 중요합니다. 

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 상담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통해 시의적절한 상담과 치료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산재트라우마 인정 노동자들이 언제 다시 일터로 돌아갔는지 살펴봤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인정 노동자 105명 가운데 원직복귀와 재취업은 절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 심리상담과 사후관리를 통해 2018년엔 고위험군과 위험군 가운데 96%가 사업장에 복귀할 수 있었고, 지난해에도 90% 가까이가 복귀에 성공했습니다.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에선 2년 연속 응답자의 98%가 도움이 됐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나의 상태를 파악하고 힘든 감정을 토로할 수 있었다"는 것과  "현재의 반응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라는 걸 알게됐다",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상담 시간이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는 겁니다.  

산재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 건 '동료들과의 이야기'와 '상담', '고인 애도하기'라는 답변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개선점과 바라는 점입니다.  

"가장 힘들때 와줘야 정말 더 큰 도움이 된다, 심리상담을 조금 더 빨리 개입하면 좋곘다"  "심리상담을 당연히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2회 정도로 짧은 심리상담 횟수를 늘려달라"는 답변을 끌었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에 대한 상담프로그램의 조기 개입 필요성과 함께 사업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고 여유있게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중요한 셈입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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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살아남은 자의 상처]③ 모든 사고는 충격을 남긴다…빠른 개입 필요
    • 입력 2020-07-28 22:20:56
    • 수정2020-07-28 22:31:27
    뉴스9(광주)
[앵커] 산재트라우마 기획보도 순섭니다. 산재사고 후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사연 어제 보도해드렸는데요.  노동자 트라우마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정부는 2년 전 대구에 전국 최초로 직업 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해 시범 운영해왔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운영 결과는 어땠을까요?   KBS는 이 실적자료를 입수해 산재트라우마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하선아, 곽선정 기자가 차례대로 보도합니다.  [리포트] 2017년 5월 1일 노동절에 일어난 삼성중공업 크레인 전도사고. 현장에 있었던 김영환 씨는 지금도 당시의 끔찍한 장면들이 잔상으로 남아 고통스럽습니다.  사고 당시의 사고음은 저장돼있다 재생되는듯 또렷합니다.   [김영환/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목격 노동자 : "꿈같죠, 꿈. 뭔가 콰쾅 하면서 떨어지는... 그리고 와이어 소리, 그리고 직전에 사이렌이 울렸으니까요 계속... 와이어가 돌면서 기둥에 휘 감기면서 크레인이 옆으로 넘어가면서 부딪히면서 종소리 들렸을 때 노란 기둥 근처에 사람들이 기억이 나요, 공포에 질린 얼굴 있잖아요."] 이런 공포는 예기치않은 일상 생활에서 순간순간 밀려왔습니다.  김씨의 고통은 어린 자녀에게로, 그리고 가족에게로 전염되듯 하나둘 번져갔습니다. 그 날 이후 김씨도, 가족도 고통은 일상이 됐습니다.   [김영환/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목격 노동자 : "샤워를 하는데 뭐랄까... 샴푸가 눈에 있으니까 앞이 안보이잖아요. 중간에 숨 쉬기가 힘들어지는 거예요, 갑자기... 샤워도 제대로 못하고 뛰쳐나온 적도 있고... 날카롭고 시끄러운 소리에도 화가 나니까... 큰 애는 아직까지도 저를 무서워해요... 제 앞에서 덜덜덜 떨고 울더라고요."] 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는 지난 2년 동안 시범운영을 하면서 김씨 등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들을 비롯해 844명에게 심리상담을 지원했습니다.   상담 자료를 분석해봤더니 사고 유형별로 충격을 주는 정도는 달랐습니다.   화재와 폭발, 파열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 가운데 60%가 정신적 외상을 입어 충격도가 가장 컸고, 뒤이어 깔림사고와 물체에 맞는 사고, 끼임 사고 순이었습니다.  정신적 외상을 크게 받는 사람은 예상과 달리 사고 재해자가 아니었습니다.   직접 목격자이거나 구조 참여자인 사람이 재해자보다도 충격이 컸고, 입사 동기 등 재해를 입은 사람과 친밀감이 높을수록 충격의 강도는 더 컸습니다.   [김미연/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 심리상담사 : "나 또한 산재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을 것이고, 직장이라고 하는 거는 내 가족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잖아요. 직접 목격을 하지 않았더라도, 뭔가 사내에서 친분관계를 돈독하게 가지셨던 분이라면 충격도가 높으실 수 있으세요."] 하나의 산재사고가 결국 사업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적 외상을 안겨주는 겁니다.   사업장 전 직원들에 대상으로 한 트라우마 심리상담이 중요한 이윱니다.   [김미연/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 심리상담사 : "적절한 시기에 들어가서 치료를 하게 된다면 이분들이 회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요. 회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우리가 보호받고 있다는 것. 우리 회사로부터, 우리나라로부터 보호받고 있구나(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죠.)”] '모든 사고는 모두에게 충격을 남긴다.' 사고 당사자가 아니어도, 사고를 직접 목격하지 않아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에게 트라우마 치료는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   ▼ “빠르고 적극적인 치료 필요” 그런데, 산재 트라우마의 치료 시기도 중요합니다.  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 상담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통해 시의적절한 상담과 치료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산재트라우마 인정 노동자들이 언제 다시 일터로 돌아갔는지 살펴봤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인정 노동자 105명 가운데 원직복귀와 재취업은 절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 심리상담과 사후관리를 통해 2018년엔 고위험군과 위험군 가운데 96%가 사업장에 복귀할 수 있었고, 지난해에도 90% 가까이가 복귀에 성공했습니다.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에선 2년 연속 응답자의 98%가 도움이 됐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나의 상태를 파악하고 힘든 감정을 토로할 수 있었다"는 것과  "현재의 반응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라는 걸 알게됐다",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상담 시간이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는 겁니다.   산재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 건 '동료들과의 이야기'와 '상담', '고인 애도하기'라는 답변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개선점과 바라는 점입니다.   "가장 힘들때 와줘야 정말 더 큰 도움이 된다, 심리상담을 조금 더 빨리 개입하면 좋곘다"  "심리상담을 당연히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2회 정도로 짧은 심리상담 횟수를 늘려달라"는 답변을 끌었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에 대한 상담프로그램의 조기 개입 필요성과 함께 사업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고 여유있게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중요한 셈입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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