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난 여전히 화형대의 마녀, 박원순 고소인 손 잡아주고 싶어"
안희정 전(前) 충남지사 성범죄 피해자인 김지은씨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혐의 피해자 A씨를 향해 “긴 말보다 손을 잡아드리고 싶다”며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김씨는 2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을 보면서 내 경험이 떠올라 괴로웠다”며 “여전히 나는 온라인에서 화형대에 사로잡힌 마녀다.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미투가 일어나면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모두가 말하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여전히 조직 내 범죄 사각지대에 피해자가 방치된 것”이라고 했다.
◇김지은 “2년 전과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수도꼭지처럼 종일 눈물”
그는 박 전 시장 성추행 혐의 고소인 A씨를 둘러싸고 2차 가해가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가해자의 범죄 행위부터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악플까지 일련의 상황이 (나와) 비슷했다. 가해자의 범죄 패턴이 유사한 것만으로도 괴로웠는데 2차 가해까지 같은 유형이었다”며 “피해자는 부당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뿐인데 가해자가 지닌 위력만큼이나 피해자가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의 크기는 여전히 커 보인다”고 했다.
김씨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까지 10여차례에 걸쳐 안 전 충남지사가 자신을 수차례 성폭행하고 강제 추행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비서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는 지난해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현재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김씨는 자신이 미투를 제기했을 당시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선 긋기에 바빴다. 권력형 성범죄 사건의 본질이나 해결에 집중하지도 않았다. 위력을 만든 조직 구조 문제를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2년 전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듣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며 “이제는 말라비틀어져서 더 흘러나올 눈물도 없을 것 같았는데 하루 종일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며칠을 몸살에 시달렸다”고 했다.
김씨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철저한 진실규명을 촉구했다. 그는 “어떤 죽음이 애도되어야 한다면, 어떤 생존도 존중되어야 한다”며 “사건의 실체 규명은 필요하다. 더 이상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피해자를 향한 일부 대중의 가혹한 공격을 막기 위해서라도 수사기관의 공정한 수사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희정 모친상에 文 공식 조의에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 호흡곤란으로 병원”
김씨는 지난 4일 치러진 안 전 지사 모친상에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여권 관계자들이 공식적으로 조의를 표했을 때는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호흡 곤란이 와서 병원을 찾기도 했다”며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그는 “유죄 판결 뒤에도 변함없는 (안 전 지사의) 위세와 권력의 카르텔 앞에서 두려움과 무기력함을 새삼 다시 느꼈다”며 “여전히 나는 온라인에서 화형대 위에 사로잡힌 마녀였다. 불은 꺼지지 않고 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씨는 “그렇지만 (안 전 지사에 대한) 민사소송과 2차 가해에 대한 고발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자가 혼자만 고통받고 피해 당해야 하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꿔나가고 싶다. 피해자의 온전한 일상 회복까지가 진정한 싸움의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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