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혜원 검사, 안희정 판례 두고 "여성은 성적 자기결정 무능력자가 돼버렸다"

현화영 2020. 7. 1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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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팔짱 끼고 찍은 사진에 "권력형 성범죄 자수" 멘트 달아 논란 / 또 다른 글에선 "남성 상사와 진정으로 사랑해도 성폭력 피해자일 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팔짱을 낀 진혜원 검사(가운데). 페이스북 갈무리.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과 팔짱 끼고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권력형 성범죄”라는 조롱 가까운 멘트를 달아 논란이 일었다.

이후에도 그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을 두고 “갑자기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 무능력자가 돼버렸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에 일각에서는 현직 검사가 박 시장을 고소한 여성(전 비서)에 대한 2차 가해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진 검사는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원순 시장과 팔짱 낀 사진을 올리며 “권력형 성범죄를 자수한다. 추행했다”고 적었다. 이날은 박 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여성과 여성단체들이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연 날이기도 했다.

진 검사는 “팔짱 끼는 것도 추행이에요?”, “여자가 추행이라고 주장하면 추행이라니까!”라며 자문자답하기도 했다. 또 “님 여자예요?”라고 물은 뒤 “머시라? 젠더 감수성 침해! 빼애애애애”라고도 적었다. 

진 검사는 “현 상태에서 (고소인) 본인이 주장하는 내용의 실체적 진술을 확인받는 방법은 ‘여론재판’이 아니라 유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해서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고소인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민사재판도 기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진행하면 2차 가해니, 3차 가해니 하는 것도 없다”라며 “‘여론재판’은 ‘고소장만 내주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해요’라는 집단이 두루 연맹을 맺고 있어 자기 비용이 전혀 안 들고, 진실일 필요도 없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런데, 고소장 접수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고인의 발인일에 기자회견을 하고, 선정적 증거가 있다고 암시하면서 2차 회견을 또 열겠다고 예고하는 등 넷플릭스 드라마 같은 시리즈물로 만들어 ‘흥행몰이’와 ‘여론재판’으로 진행하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은 부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면, 해당 분야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는 회의와 의심을 가지게 만드는 패턴으로 판단될 여지가 높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실을 확인받는 것이 중요한지, 존경받는 공직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여론재판이 중요한지 본인의 선택은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고 시민들은 그것을 비언어적 신호로 삼아 스스로 진실을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친상으로 인한 형집행정지로 임시 출소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9일 오후 광주교도소에 다시 입소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 진 검사 “빌 게이츠를 성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신공”

진 검사는 같은 날 올린 또 다른 글에서 여러 문학작품과 드라마, 현실 속 인물들의 ‘불륜’이야기를 열거하며 “(이들은) 형사 고소되지 않았고, 민사소송도 제기되지 않았다. 남녀 모두 자신의 선택에 가정적인 책임을 부담했을 뿐”이라고 적었다.

이어 그는 안 전 지사 사건을 언급하며 “우리는 갑자기, 남성이 업무상 상사일 경우 여성은 성적 자기결정 무능력자가 돼 버리는 대법원 판례가 성립되는 것을 보게 됐다”라며 “남성 상사와 진정으로 사랑해도 성폭력 피해자일 뿐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없는 성적 자기결정 무능력자가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진 검사는 “(자기 비서였던 멜린다와 연애하고 결혼까지 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를 성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신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1990년대 말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청춘의 덫’을 언급하며 “상급자들에 의한 성폭력이 난무한 몹쓸 드라마였는데, 전 국민의 50%가 빠져들었던 것”이라고 했다.

진 검사는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이자, 법률가의 한 사람인 입장에서 개인적으로는, 위와 같은 대법원 판례는 ‘성 인지 감수성’의 공감대 형성을 한참 넘어 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의미에 대한, 법률상 심각한 후퇴라고 생각한다”라고 적었다.

다음은 진 검사의 페이스북 글 전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인생의 베일, 알랭드보통, 청춘의 덫, 빌 게이츠]
 
2009. 11. 26. 헌법재판소는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을 선언했습니다.
그 전까지 여자는 남자가 '결혼하자'고 꼬시면서 성관계를 시도할 경우 꼴라당 넘어가기 쉬운, '성적 자기결정 무능력자'로 간주됐습니다. 아울러, 여자는 '결혼에 목 매다는 존재'로 간주됐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여성들도 성욕이 있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성적 행위의 파트너를 선택해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법률적으로도 진실로 확립됐습니다.
 
아울러, 2015. 2. 26. 간통죄도 위헌결정됨으로써, 유부남, 유부녀가 서로 배우자가 아닌 사람을 성적 상대방으로 선택할 수 있는 형사적 권한도 확보됐습니다(이제는 가사 또는 민사 사안입니다.).
 
성인 남녀간(또는 동성간)의 관계는 대단히 다양하고 많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굴레'로 유명한 작가 서머셋 몸의 작품 '인생의 베일(Painted Veil)'은 홍콩 총독부에서 의사로 근무하는 남편을 둔 여성 키티가 매력적인 부총독 찰스 타운젠트와 불륜 관계를 맺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남편이 집에 왔다가 그 장면을 보고 알게 되지만 모르는 척 하면서 콜레라가 창궐한 내륙 지방 근무를 자원하고, 키티를 데리고 갑니다.
 
키티는 잘 생기고, 매너 좋으면서 부유한 찰스와의 불륜 관계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남편을 따라 콜레라 지역으로 들어가, 헌신적인 간호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남편은 전염돼서 죽습니다.
 
찰스가 영웅적으로 사망한 남편을 기리면서 한 편으로는 불륜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키티에게 자기 집에 와서 살자고 권유하고, 찰스의 교양있고 아름다우며 친절한 배우자도 키티에게 함께 살자고 해서 키티는 부총독 관저에서 잠시 머물지만, 찰스와 다시 바람을 피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품위있는 타운젠트 부인에게 어떤 잘못을 했는지 갑작스럽게 깨닫고 과거의 자신과 단절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 법관인 아버지 옆에서 살기로 결심합니다.
 
알랭 드 보통의 '사랑' 연작 중 최근작인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The Course of Love)'은 남자 주인공이 멋진 여성을 만나 낭만적 연애 후 결혼을 한 뒤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다가 직장에서 젊은 여성을 만나 잠깐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입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도 20년 넘게 자기 집 피고용자인 가정부와 바람을 피우다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이혼했습니다.
 
1979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포위 사건을 영화화한 ‘Argo’로 2013년도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휩쓴 영화감독 겸 배우 벤 애플렉도 자기 집에서 아이를 봐 주는 여성과 성관계를 하고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이혼했고, 지금은 내니였던 여성과 만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마이크로소프트사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자기 비서였던 멜린다와 연애하고 나서 결혼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형사 고소되지 않았고, 민사소송도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남녀 모두 자신의 선택에 가정적인 책임을 부담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갑자기, 남성이 업무상 상사일 경우(안희정 도지사 사건의 경우 등) 여성은 성적 자기결정 무능력자가 되어 버리는 대법원 판례가 성립되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남성 상사와 진정으로 사랑해도 성폭력 피해자일 뿐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없는 성적 자기결정 무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설령 상사가 배우자와 이혼하고 하급자와 결혼하려고 한다 해도, 이미 업무상 위력에 의해 외포된 상태이므로 자유롭게 결혼하겠다는 의사결정조차 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범죄자와 결혼하게 되는 것입니다!
 
갑자기 빌 게이츠를 성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신공입니다.
 
1990년대 말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청춘의 덫'에서도 회장 직위를 승계하는 조카(전광렬)가 비서(심은하)의 양 어깨를 붙잡고 "내가 사랑한다니까!"라고 소리치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심각한 성폭력이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같은 드라마에서는 회장의 조카(유호정)가 회사의 대리(이종원)와 사귀고, 동침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조카가 업무상 우위에 있으므로 이 또한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대리(이종원)는 조카(유호정)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대로라면 계획이고 뭐고 업무상 상하관계면 무조건 상사에 의한 성폭력이 성립됩니다.
 
결국, '청춘의 덫'은 상급자들에 의한 성폭력이 난무한 몹쓸 드라마였는데, 전 국민의 50%가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이자, 법률가의 한 사람인 입장에서 개인적으로는, 위와 같은 대법원 판례는 '성 인지 감수성'의 공감대 형성을 한참 넘어 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의미에 대한, 법률상 심각한 후퇴라고 생각합니다.
 
상사와 성적 관계가 발생하는 사람이, 어떤 시점에서 위력에 의해 외포되었고, 어떤 시점에서는 자기의 감정이나 계획으로 임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불륜 또는 연애였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희롱 또는 위력이었는지, 아니면 진지한 연애였는지, 외도였는지, 행위와 시기별로 구별해서 판단해 주는 것이 법률가의 역할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여성 또는 하급자가, 성적 자기결정의 무능력자임을 호소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성적 의지와 욕구를 주장할 수 있는 배경을 형성해 주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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