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동성애 죄악" 말만 해도 잡혀간다? 차별금지법 살펴보니

박윤경 입력 2020. 7. 2. 05:06 수정 2020. 7. 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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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동성애 반대만 해도 처벌받는다' 주장
인권위안∙국회안 모두 '불이익 조치'만 처벌
"형사처벌 과하다" 인권위원 사이 이견도
인권위 "다른 법률도 불이익 조치 형사처벌"
'성별정체성' 적시, 외국인 포함..사회적 변화 발맞춰
퀴어문화축제 풍경. 한겨레 자료사진.

21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차별금지법 입법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이번주엔 연이어 국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지난달 29일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했고 30일엔 인권위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을 제정하라고 국회에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 등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계를 중심으로 ‘동성애를 반대만 해도 처벌받는다’,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는 성경을 읽거나 설교만 해도 잡혀간다’며 끊임없는 반발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요? 장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장혜영안)과 인권위가 발표한 시안(인권위안)은 이전에 나온 법안들과 견줘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두 법안의 구체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 혐오 발언만 해도 처벌받는다?

우선 ‘차별적인 발언만 해도 처벌받는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장혜영안과 인권위안 모두 성별, 성적지향, 장애 등을 이유로 상대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괴롭힘’ 행위를 차별로 정의하고 있는 건 맞습니다. 상대에게 적대적 환경을 조성하거나 멸시하는 발언으로 수치심, 모욕감 등을 줄 경우 ‘차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차별행위가 금지되는 영역도 교육, 고용 등 4가지로 명확하게 규정해놓았습니다. 해당 영역 밖에서 이뤄진 혐오 발언은 불법도 아니고 당연히 처벌도 안 받습니다. 가령 회사에서 부장님이 “동성애자는 싫다”고 얘기하는 건 불법이지만, 교회나 길거리에서 동일한 내용으로 설교‧전도를 하는 것까지 금지되지는 않습니다.

또 불법으로 규정된다고 해도 무조건 처벌을 받진 않습니다. 장혜영안, 인권위안은 모두 차별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만 형사 책임을 묻고, 그밖의 차별 행위에 대해선 민사상 손해배상책임만 묻도록 했습니다. 애당초 문제가 된 행위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다시 한번 차별을 가했다는 점에서 불이익 조처는 더욱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취지인데요. “동성애자는 싫다”는 부장님의 발언은 적어도 ‘보복행위’는 아니니 부장님이 피해자에게 손해액을 배상할 순 있어도, 형사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 징역∙벌금형은 과도하다?

다만 아무리 악질적이라 해도 형사처벌은 과도한 제재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불이익 조처에 대해 장혜영안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인권위안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인권위 내부에서도 이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0일 오전 국회 의견표명 기자회견 직전에 열린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선 일부 위원이 “(형사처벌 등은)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고, 세계적인 차별행위 비범죄화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소수의견을 밝히고 싶다”며 우려를 표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의견에 인권위는 “국내 여러 법률에도 ‘불이익’ 조처에 대한 형사 제재 규정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실제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공익신고자를 파면‧해임한 이에게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합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도 회사 내 성평등 감독관에게 불이익 조치를 취한 사업주는 500만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형사 제재는 인권위가 권고의 효력을 높이기 위해 택한 처방이기도 합니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차별행위에 대해 인권위가 시정 권고를 내릴 수 있도록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 조처가 담기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려고 이번 인권위안에선 불이익 조처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넣고 처벌 수위를 강화한 것입니다. 장혜영안은 형사 책임에 더해 정당한 이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이에게 인권위가 ‘시정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차별행위자가 시정명령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반복될 경우, 인권위의 주체적 판단이 아닌 법원의 판결로만 차별 구제가 이뤄지게 된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 다양성 확장, 외국인 적용…사회 변화 발 맞춰

이번 인권위안‧장혜영안은 다양성을 보다 폭넓게 보장하는 조항도 담았는데요. 우선 두 법안 모두 차별사유에 ‘성별’과 ‘성별정체성’을 따로 명시했습니다. 생물학적 성별 외에도 스스로의 성별에 대한 주체적 인식도 함께 존중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장혜영안은 ‘성별’은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으로, ‘성별정체성’은 ‘자신의 성별에 관한 인식 혹은 표현’으로 정의하며 ‘자신이 인지하는 성과 타인이 인지하는 성이 불일치하는 상황’도 언급했습니다.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다양한 조항들도 눈길을 끌었는데요. 두 법안은 모두 차별금지법이 대한민국 국민 외에 ‘대한민국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고 규정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을 의식한 듯 인권위안은 재난상황에서 국가‧지방자치단체의 평등 의무도 새롭게 추가했습니다. 재난으로 긴급 조처를 시행할 경우 성별, 장애 등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고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장혜영안은 인터넷, 소셜미디어 등 정보통신서비스와 생활기록부 작성 등 학교 교육 서비스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도 추가했습니다.

성별, 장애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규제하고 헌법상 평등권을 보장하는 차별금지법에 많은 국민들도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인권위가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선 성인 10명 중 9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기도 했죠. 이제 공은 국회로 돌아갔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차별금지법을 향한 염원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국민 정서’를 운운하며 또 다시 의원들이 법안을 철회하거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손 놓아버리는 일이 반복될까요? 14년 만에 나온 인권위안, 10명 의원을 모아 겨우 발의된 장혜영안이 이번엔 먼지 속에 묻히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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