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가 날 죽이려.." 코로나의 또 다른 고통, 환각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0. 6. 3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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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코로나 환자들 환각 망상 기억상실 등 섬망 증세 호소
산채로 불타고, 쥐가 돼 고양이에 먹히는 환각에 몸부림

‘끝없이 흡혈귀나 악마에게 쫓기는 환각에 시달린다.’ ‘사람 머리가 둥둥 떠다니고 누군가 거기에 못을 박아대는 것 같다.’

치매 환자나 정신 질환자들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겪는 일종의 합병증이다. 악몽과 같은 망상, 환각과 기억상실증 등을 포함하는 일명 ‘코로나 섬망(delirium)’이 코로나의 또다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9일(현지시각) ‘몸이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는 동안, 정신은 산산이 부서진다’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코로나 환자들이 호흡기 질환인 코로나 자체 뿐 아니라 섬망 증세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섬망은 노인성 치매와 비슷하게 망상으로 횡설수설하거나,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종의 급성 인지 기능 장애다.

30일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집중치료실에서 몇 주간 치료를 받은 코로나 환자 10명중 6~7명이 크고 작은 섬망을 겪는다는 임상 보고가 있다. 퇴원 후에도 우울증과 불면증 등으로 후유증이 이어지는 사례가 보고된다. 섬망 증상 자체가 뇌기능 손상의 시작이기 때문에 장기적 인지 장애로 이어질 수 있고, 이로 인해 빨리 사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코로나 환자들이 섬망을 앓는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우선 장시간 호흡치료기를 부착한 상태에서 프로포폴 등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투여받고, 낯선 병원 환경에서 낮밤을 구분하지 못하고 수면 부족을 겪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등 외부와 철저히 고립되면서 겪는 쇼크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일반 환자들도 중환자실 치료 중 섬망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가 뇌에 대한 산소 공급을 막거나 뇌 자체에 침투해 기능 저하를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전한 ‘코로나 섬망’ 실태는 끔찍하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한 60대 남성 환자는 입원 중 가족과 영상통화 중 ‘AK-47(소총 종류)’란 글씨를 휘갈겨 써보이더니 자기 목을 가리키며 쏴달라는 듯한 요구를 했다. 또 “자꾸 사람 머리가 내 위에 떠돌아다니고, 누군가 거기에 못을 자꾸 박는다”는 말을 했다.

매사추세츠주의 한 50대 남성은 집중치료실에 들어간 지 나흘만에 “왜 병실 바닥에 시신들이 널부러져 있느냐” “벰파이어 같이 생긴 여자가 날 죽이려 든다”면서, 의사에게 “병실 밖에 총 든 사람들이 날 쏘려고 하는데 방탄문이 맞느냐”고 자꾸 물었다고 한다.

통상 ‘입원 섬망’ 증세는 치매 같은 인지기능 저하를 겪던 중장년층에게 주로 나타난다. 그러나 ‘코로나 섬망’은 젊은층도 가리지 않고 덮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테네시에 사는 31세 여성의 섬망 증세를 소개했다. 킴 빅토리라는 이 여성은 집중치료실에서 자신이 “산채로 불태워졌다가, 크루즈 뷔페의 얼음 조각이 됐다가, 갑자기 일본 실험실의 쥐가 됐다가, 고양이에 물려죽는” 망상에 시달렸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그는 호흡치료기를 떼버리기도 했고, 병상에서 굴러떨어져 죽을 뻔했다고 한다.

코로나 환자가 섬망으로 고통받아도, 현장 의료진들은 코로나 치료에 급급해 MRI 같은 뇌 정밀 검사를 시도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한다. 또 섬망을 겪다 사망한 코로나 환자의 뇌 해부 등 후속 연구도 감염 우려 때문에 시도되지 못하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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