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 칼럼니스트의 눈] 정치인이 막말하는 이유는

이훈범 2020. 6. 3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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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익 우선인 기성 정치판에
청년 정치 지망생이 낄 자리 없어
정당은 지명도 낮은 청년 꺼리고
의원, 잠재적 경쟁자 사다리 차기


청년정치

그래픽=최종윤

사실 정치만큼 ‘공공선택이론(Public choice theory)’이 들어맞는 경우도 없다. 당위론적 정치에 대입하기란 무리가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현실정치는 딱 들어맞는다. 특히 정당이 그렇다.

주지하다시피 공공선택이론이란, 공공부문도 자유시장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고용자와 피고용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듯, 공공부문에서도 정치인과 관료, 이익집단, 유권자들이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뷰캐넌이 공공선택이론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지만, 이 이론의 창시자는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이다. 1896년에 이미 “공무원은 효율을 포기한 채 예산을 늘리고 자신들의 조직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등 자기 이익 극대화를 위해 일할 뿐”이라고 일갈했다.

어디 공무원뿐이랴. 국가나 정부, 정당이 모두 그렇다. 이들 모두 “스스로 인격을 가진 유기체가 아니라 개인의 총합일 뿐이며, 개인들은 경제행위만 아니라 정치행위를 할 때도 똑같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뷰캐넌 같은 이는 그래서 정치인과 관료들을 ‘정치적 기업가(political entrepreneur)’라 부른다.

청년들이 정치권에 진입하기 어려운 것도 공공선택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치인과 정당들이 내세우는 이념과 노선이 있고 정강과 공약이 있지만, 그들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모두 자기 이익이다. 모든 정당의 목표는 집권, 모든 집권 정당의 목표는 재집권이다. 모든 국회의원 후보자의 목표는 당선, 모든 국회의원의 목표는 재선인 것이다. (그다음 목표는 꼭 3선이 아니다. 이때부터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대통령을 꿈꾸기 시작한다. 물론 터무니없는 목표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공공선을 위해 봉사한다는 소명을 가진 정치인도 있을 터다. 하지만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선거에서 떨어지면 타인의 이익을 위해 일할 기회도 얻지 못하니 우선적 목표가 이기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자기들의 정강·정책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집권이 가장 먼저다.

그런데 젊고 참신한 정치 신인들이 대거 입당하는 것을 기존 정치인들이 반가워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활력 넘치고 유능한 청년 정치인들은 잠재적 경쟁자가 될 뿐이다. 기성 정치인들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시작되는 이유다. “지방선거에서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절대적 공천권을 행사하는데,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공천을 줄 때 잠재적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가장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 전직 국회의원은 고백한다.

온갖 비난에도 국회의원들의 막말 파동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다른 게 아니다. 한마디로 ‘남는 장사’인 까닭이다. 상대 진영에 대한 막말로 자기 진영 지지자들의 결집을 끌어낼 수 있고, 어쨌거나 지명도를 높이는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막말로서 대중의 정치혐오를 증폭시킴으로써 기득권의 성벽을 더욱 높게 쌓는 것이다.

정치혐오도가 높을수록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사라지므로 기성 정치인에게 유리하게 된다.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무관심 속에서 경쟁이 사라지고,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지역 인사들에게 공천권을 행사함으로써 자기 이익을 최대한 지키는 기득권을 누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 개혁을 생각하는 청년 정치인들이 끼어들 자리가 있을 리 없다.

정당의 경우는 새로운 피가 수혈되는 것 자체는 환영이지만, 총선 승리와 집권을 생각하면 지명도가 떨어지는 청년 정치인들의 공천을 꺼리기 쉽다. 따라서 정치적 열정으로 가지고 준비된 신인 청년 정치인보다는, 한방에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인생극장’ 후보들을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대선이나 총선 같은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젊은 이미지’가 필요해진 정당들은 저마다 청년조직을 재정비하고 공정과 탈권위, 소통 등 청년세대의 가치를 내세운다. 하지만 정작 청년 당원들은 청년 문제에 국한해 소비되고 말 뿐, 주요 정치 동력으로 발탁되지 못한다. 꿈을 품고 입당한 청년 정치인들은 그렇게 기회를 얻지 못하고 여의도 주변을 떠돌고, 청년조직 역시 점차 기성 정치권을 닮아가며 활력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내 세대 갈등까지 빚어진다. 청년 정치인들은 기회를 얻지 못하는 데 대해 반발하고, 기성 정치인들은 청년 정치인들에게 미숙과 치기의 딱지를 붙인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한 우리네 정치의 선순환 구조는 요원하다. 그것은 곧 국가공동체의 위기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문제에서 발생한 기성 정치권과 청년세대의 갈등은 그것의 작은 예에 불과하다. 야당은 이 사태를 이용하고 있지만 기본 인식은 여당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 청년세대가 가장 중시하는 가치인 ‘공정’ 이데올로기를 낡은 보수-진보 정치권에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주역은 청년세대임을 인정해야 한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부터다. 그들이 경험이 부족하고 자원이 모자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주역에서 배제할 게 아니라 그들이 부족한 것을 기성세대가 빌려주고 채워줘야 한다. 그렇게 청년세대와 공동체 시민들이 연대하는 새로운 정치세력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

■ 당 청년조직에 지방의회 공천권 줘야

「 필요한 일이긴 해도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급진적으로 이뤄지긴 어렵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이미 2004년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역풍으로 이른바 ‘탄돌이’들이 대거 입성한 경험이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얻은 152석 중 108석이 초선이었는데, 공천 문턱을 낮추는 바람에 (인재 흡수를 위한 게 아니라 분당으로 인해 불가피했던) 상당수가 품행과 자질 면에서 문제를 노출했다.

게다가 당시 국회에 대거 진출한 386 운동권들이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하면서 오히려 정당의 민주적 운영과 청년들의 정치권 입문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80년대 민주화 또는 노동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과시하고, “당신, 80년대 뭐 했어?”라는 물음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 앞에서 80년대를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청년들은 할 말을 잃고 마는 것이다.

급한 길도 돌아가야 한다. 공연히 청년 국회의원 몇 명으로 구색 갖추고 생색내려 하지 말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인재 양성에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청년 정치 지망생들이 지방의회에서부터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좋다.

기초·광역의원 공천권 일부를 정당 내 청년조직에 할당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청년 정치인들이 지방의회에서 쌓은 커리어를 토대로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에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년들은 정계 진출 문턱이 낮아져서 좋고, 현재 있으나 마나 한 정당 청년조직 역시 활성화돼 주요한 정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되며, 정당 또한 정치 엘리트를 충원하는데 ‘인생극장’ 같은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지방의원 공천은 현역 의원을 포함한 당협위원장이 전권을 쥐는 구조여서 이들을 설득하는 문제가 남아있긴 하다. 국회의원들로서는 자신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할당 인원 동원, 찬조금 대납까지 하는 기초의원들을 청년들에게 양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젊은층과 기성세대가 조화를 이루는 미래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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