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단’뒤에 숨은 윤석열, ‘식물총장’ 전락하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9 14: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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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언유착 사건, 자문단에 맡겨 조국 수사 때와는 딴판

윤석열 검찰총장이 외우내환에 시달리고 있다. 밖에서는 윤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여당의 날 선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안으로는 검언유착 의혹 수사를 놓고 수사팀과의 갈등이 터져 나왔다. 특히, 윤 총장이 검언유착 수사에서 ‘제 식구 감싸기’식 행태를 보이면서 검찰 내 리더십은 물론 국민적 신뢰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을 비롯한 청와대 관련 사건에서 강력한 수사지휘권을 보여줬던 윤 총장이 자신의 최측근이 연루된 사건에서는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전문수사자문단'이라는 제도 뒤에 숨어 '지휘 회피'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는 7월, 검찰 정기인사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이 예고돼 윤 총장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이 자진사퇴하지 않더라도 ‘식물 검찰총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6월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6월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자문단 통해 제 식구 감싸기 ‘면죄부’ 받나

검언유착 의혹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다. 채널A 기자가 현직 검사장과 결탁해 신라젠 수사 상황을 논의하고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 측에 여당 실세의 비위 첩보를 내놓으라고 압박했다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 내용이다. 사실이라면 이는 ‘조국 사태’ 당시 여당과 진보진영이 주장했던 ‘적폐 검찰-적폐 언론’의 실체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검찰 개혁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언론 개혁 역시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고발로 시작된 검찰 수사를 통해, 채널A 기자와 해당 검사장이 취재 기간 동안 최소 5회 이상 통화한 사실이 밝혀졌다. 채널A 자체 진상조사에서는 유착관계를 의심하기에 충분한 녹취록이 나왔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해당 검사장의 휴대폰을 압수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채널A 기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 지휘부에서 일부 반대 의견이 나왔고, 윤 총장은 전격적으로 전문수사자문단 회부를 결정했다.

전문수사자문단은 고도의 지식이 필요한 첨단산업분야, 지식재산권, 국제금융, 보험범죄 등의 수사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자 도입됐다. 그러나 검찰은 전문수사자문단의 도입 취지와 달리 지휘부와 수사팀의 의견이 충돌했을 때 지휘부의 입장을 관철시키고,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의 방패막으로 삼기 위해 전문수사자문단을 활용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18년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 의혹이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관련 수사단은 “김우현 당시 대검 반부패부장이 핵심 피의자로 지목됐던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의 청탁을 받고 수사단의 안미현 검사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면서 김 부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하겠다는 뜻을 대검에 보고했다.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반대 의견이 있다며 전문자문단(전문수사자문단의 전신)을 소집했다.

강원랜드 수사 외압 의혹과 검언유착 사건은 검사장급 고위 간부가 연루돼 있다는 점과 대검 지휘부가 수사팀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판박이라 할 수 있다. 두 사건 모두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지휘부가 결정을 내리면 수사팀은 따라야 한다. 검찰 지휘부가 굳이 자문단을 끌어들인 이유는 그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전체 7명 중 대검이 추천한 위원이 5명을 차지한 강원랜드 외압 의혹 전문자문단은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어렵다’며 불기소 의견을 냈고, 이 의견은 그대로 적용됐다. 결국, 대검은 제 식구 감싸기 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면죄부를 자문단을 통해 획득한 셈이다.

 

윤석열의 ‘어긋난’ 후배 사랑이 갖는 위험성 

윤 총장은 그동안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왔다.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의 경우, 인사청문회를 기다리지 않고 강제수사에 착수하며 ‘국회의 시간’을 지워버렸다. 청문회 당일에는 조 전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전격 기소하기도 했다. 윤 총장은 국정감사장에서 “(조국 일가 수사는) 제 승인과 결심 없이는 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검찰은 조국 일가 수사에 신속히 착수한 이유로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 사안’과 ‘증거인멸 가능성’을 들었다. 검언유착 사건 역시 국민적 관심과 증거인멸 가능성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수사의 속도는 현저히 달랐다. 민언련은 “1차 고발 이후 당사자로 지목된 검사장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차 고발이 있었던 지난 6월15일 이후, 두 달 만에 해당 검사장에 대한 휴대폰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할 정도였다”고 비판했다.

기소를 둘러싼 판단의 신중함 역시 달랐다. 지난 1월, 검찰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과 관련해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백원우·박형철 전 비서관 등 여권 실세 13명을 무더기 기소할 당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반대하며 자문단 회부를 요청했지만 윤 총장은 이를 묵살했다.

윤 총장의 후배 사랑, 조직 사랑은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 사람은 끝까지 챙긴다. ‘윤석열 사단’이라는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조직 사랑이 지나쳐 ‘검찰 지상주의자’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 때문에 임명 당시부터 윤 총장이 자기 조직에 칼을 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당은 지난해 7월 청문회 때만 해도 ‘형님 리더십’이라고 치켜세우기 바빴다. 한 예로 청문회 당시 윤석열 후보자는 최측근 검사의 형에게 변호사를 소개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지만,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변호사를 소개했다”고 언급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거짓말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후배 검사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가 한 거다’라면서 자기가 덮어쓴 거다. 후배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보면 (윤 총장은) 참 대단한 인물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윤 총장의 ‘어긋난’ 후배 사랑은 검찰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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