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16집..그 소리는 변함이 없다

김경욱 2020. 6. 2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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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6년 '작은 거인'의
한결같음과 인기 비결은?
이선희.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소녀는 숲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결혼해 가정을 꾸린 승려(대처승)였고, 산속 절이 그의 집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집에 다녀간 뒤 학교에서 ‘왕따’가 시작됐다. 친구들은 “쟤네 아빠 스님이야”라며 놀려댔다. 유독 몸집이 작았던 아이는 점점 말을 잃어갔고, 혼자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친구의 빈자리를 대신한 것은 숲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는 숲에서 혼자 놀았다. 나뭇가지로 동아줄을 만들어 타잔 흉내를 내고, 재잘대는 새들을 향해 노래했다. 숲이 친구를 대신했다면, 그의 유일한 언어는 노래였다. 학교에서 노래할 때만큼은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노래해 보라’며 다가와 말을 거는 아이도 하나둘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노래가 주는 즐거움과 기쁨이 어린 시절 그의 감각에 깊게 새겨졌다.

고교(상명여고) 시절 그룹사운드 보컬을 맡았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강변가요제’(1984·문화방송)에 나갔다. 무명의 작곡가(이세건)가 1년 전 쓰레기통에 버린 곡으로 대상을 받으며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았다. ‘작은 거인’ 이선희의 시작이었다.

이선희 1~4집 앨범
이선희 5~8집 앨범

지난 세월, 그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맑고 깨끗한 음색으로 데뷔 때와 다름없이 노래해왔다. 사랑과 이별의 아픔 등이 그의 노래 속 주된 주제였지만, 이번엔 세상에 위로를 건네는 노래로 돌아왔다. 2014년 15집 <세렌디피티> 이후 6년 만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담아 <안부>라는 이름을 달았다. 지난 15일 공개된 이번 앨범의 ‘파트1’에는 타이틀곡 ‘안부’를 비롯해 ‘동백꽃’ ‘봄날은’ ‘연애하듯’ ‘청춘’ ‘낭랑 18세’ 등 모두 여섯 곡이 담겼다. 전곡을 스스로 작사·작곡했고, 프로듀싱까지 직접 맡았다. ‘파트2’는 올가을께 발표될 예정이다.

이선희.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는 ‘삶과 일상의 연대’다. “저의 지난 역사와 제가 새롭게 하는 음악의 연대이자, 저의 오랜 팬들과 저를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의 연대를 표방했어요.” 이선희가 앨범을 내놓으며 밝힌 말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일상을 잃어버린 이들을 향해 나지막이 속삭인다. “오늘 하루 어떤가요/ 밤새 안녕하신가요/ 하루가 멀다 일들이 있어/ 그대 안위에 맘이 쓰였소.”(‘안부’)

이선희는 올해로 데뷔 36주년을 맞았다. 소속사인 후크엔터테인먼트는 “여성 가수 가운데 정규(앨범) 16집을 발표한 것은 이선희가 유일하다”고 밝혔다.

그 ‘한결같음’의 비결은 무엇일까.

이선희와 오랫동안 작업한 이들은 노래에 대한 그의 애착과 관심을 꼽는다. 그 점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86년 8월1일 밤,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던 이선희는 ‘강변가요제’에 참가한 무명의 대학생과 마주앉아 밤새 이야기를 나눈다. 경기도 가평 남이섬의 방갈로에서였고, 이곳에서 치러질 가요제 본선 경연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선희는 이문세와 함께 사회를 볼 예정이었다. 이선희와 대학생은 수박 한 통을 앞에 두고 동이 틀 때까지 음악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았다. 대학생이 중2 때부터 만든 곡을 들려주면 이선희는 그 곡에 관해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나 항상 그대를’ ‘사랑이 지는 이 자리’ ‘한바탕 웃음으로’ 등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노래가 대학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21살의 그 대학생은 훗날 유명 작곡가이자 가수가 된 송시현이었다.

“이선희씨를 만나기 전, 저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노래는 잘하지만 ‘음악성보단 기획사의 힘 때문에 스타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밤새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선입견이 모두 깨져버렸어요.” 지난 24일 <한겨레>와 만난 작곡가 송시현이 말했다. ‘제이(J)에게’로 화려하게 데뷔한 스타가 무명 대학생의 노래에 귀 기울이고 밤을 지새우며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과 고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선희는 그 대학생의 노래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 1988년부터 그의 노래로 앨범을 채워 나갔다. ‘사랑이 지는 이 자리’, ‘나 항상 그대를’(4집·1988년), ‘한바탕 웃음으로’, ‘겨울애상’(5집·1989년),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그리운 나라’(6집·1990년), ‘그대가 떠나신 후에’(7집·1991년)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선희씨는 곡을 쓴 나보다 그 곡을 더 사랑하고 끊임없이 연구했어요. 노래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송시현의 말이다.

이선희.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선희의 한결같음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철저한 ‘자기관리’다. 이선희는 데뷔 때와 지금의 목소리가 다르지 않다. 음역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1984년 ‘강변가요제’ 심사위원이자 이선희의 1~3집 음반을 기획한 임석호 작곡가는 “순수하면서도 파워풀한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듣자마자 대형 가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소리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이선희는 데뷔 때나 지금이나 저음·중음·고음 어느 음역대에서도 흔들림이 없고, 소리 자체가 견고하면서 깨끗하고 맑다”며 “여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진 감성으로 노래에 호소력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평소 절제된 생활로 목을 최대한 아끼기 때문이다. 이선희의 소속사 관계자는 “그는 불필요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콘서트나 중요한 녹음을 앞두면 말보다는 문자메시지나 필담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송시현도 “이선희씨는 말할 때나 웃을 때 절대 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한다”며 “무대 밖에서 체력을 비축해 무대에서 모든 에너지를 활화산처럼 터트린다. 삶과 생활이 철저하게 노래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이선희 9~12집 앨범
이선희 13~16집 앨범

이선희의 노래가 특정 장르나 스타일에 고착되지 않는다는 점도 여러 세대의 지지를 받는 까닭이다. 2001년 12집 <마이 라이프>에서는 박진영, 유영석, 김종서와 협업했으며, 2009년 14집 <사랑아…>에서는 래퍼 타이거 제이케이(JK)와 호흡을 맞췄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타이틀곡 ‘안부’는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찬열이 피처링했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과 ‘연대’라는 이선희의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박성서 평론가는 “30여년 전 노래뿐 아니라 ‘인연’이나 ‘그중에 그대를 만나’ 등 비교적 최근의 곡까지 널리 사랑받는 것은 그가 전성기 때의 노래만 되풀이하지 않고, 현세대와 소통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곡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선희의 노래에는 한없는 개방성과 다양성이 녹아 있다. 그의 노래가 흘러간 옛 추억이 아닌 이유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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