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일주일에 와인 한 병 즐긴 여성, 담배 10개비 피운 만큼 해롭다

박정렬 2020. 6. 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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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분해 효소 남성의 30~50%
간 크기도 작아 장기 손상 위험 커
다이어트 하며 술 마시면 더 나빠

직장인 이모(35·여)씨는 퇴근 후 ‘혼술(혼자 술 마시기)’을 즐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출이 줄면서 집에서 ‘혼술’하는 시간이 더 늘었다. 이씨는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실 뿐 과음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주량이 늘긴 했어도 건강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음주 문화가 달라지면서 술을 가까이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여성 가운데 한 달에 한 번 이상 술을 마신다고 응답한 비율(월간 음주율)은 2007년 42%에서 2017년 51%로 급증했다. 한 번에 많이, 자주 술을 마시는 ‘고위험 음주’도 최근 10년 새 두 배 이상(3.5%→7.2%) 늘었다. 같은 기간 남성의 월간·고위험 음주율이 제자리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위험 음주 여성 10년 새 2배 이상

전문가들은 증가하는 여성 음주가 건강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술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첫째, 여성의 알코올 분해 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져서다. 알코올은 간에서 분비되는 효소를 통해 아세트산과 물로 분해된다. 이 과정에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발암·독성 물질이 만들어지는데, 간 기능이 약할수록 체내 아세트알데히드가 많이 쌓여 암을 비롯해 심장·뇌 등 장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커진다.

간 기능은 몸집에 비례한다. 남성보다 왜소한 여성은 간의 크기도 작다. 선천적으로 분비되는 알코올 분해 효소의 양은 남성의 30~50%에 불과하다.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간이 받는 부담이 크고, 아세트알데히드가 축적돼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BMC 공중 보건’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일주일에 와인 한 병을 마시는 여성은 암 발생 위험도가 1.4% 올라 남성(1%)보다 상승 폭이 컸다. 연구팀은 “흡연과 비교하면 여성은 일주일에 담배 10개비, 남성은 5개비를 피우는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암 위험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은 ‘침묵의 장기’다. 간세포가 죽어 딱딱해지는 섬유화가 진행되고 간 경변·간암으로 악화해야 황달·체중감소 등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강동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김태완 교수는 “한번 망가진 간은 자연히 회복되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알코올성 간 질환을 비롯한 심장병·암 위험이 커지게 된다”며 “간 손상 징후가 없어도 속 쓰림이 심해졌거나, 전에 없던 치질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을 찾아 간과 소화기계 건강을 확인해 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둘째, 호르몬의 영향 때문이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은 알코올 분해 효소의 활동을 방해한다. 생리 전 분비량이 증가하는데, 이때는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몸이 받는 부담이 훨씬 커진다. 음주 시 호르몬 분비가 교란되는 것도 문제다. 알코올은 임신할 때 나오는 프로락틴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몸이 임신 상태인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이로 인해 프로게스테론 등 다른 여성호르몬의 분비량이 변화하면서 생리통·생리불순이나 난임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가임기 여성의 음주는 본인은 물론 아이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임신 중 음주는 발달 과정에 태아의 뇌 손상, 영양결핍을 불러 조산·유산, 기형아 출산 위험을 높인다.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김영식 교수는 “설령 아이가 건강히 태어났어도 성장하는 도중에 집중력 저하나 과잉행동 등 뇌 손상으로 인한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성 음주 예방 첫걸음은 '혼술 금지'

셋째, 여성은 상대적으로 알코올 의존도가 높다. 습관적인 음주가 알코올중독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기간이 남성은 평균 7~8년이지만 여성은 5년이다. 태생적으로 술에 취약해 적은 양의 술에도 내성이 생기기 쉽다. 음주 동기가 다른 것도 영향을 미친다.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산 원장은 “남성은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반면에 여성은 스트레스·외로움·우울감 등 심리적인 문제로 술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술이 정서적인 문제를 악화하고 이로 인해 술을 더 많이 찾는 악순환을 초래하기 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 음주로 인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공통으로 ‘혼술’ 금지를 강조한다. 혼자,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가장 나쁜 음주 형태이기 때문이다. 김석산 원장은 “혼자 술을 마시면 음주량을 파악하기 어렵고 본인은 물론 가족도 알코올 의존을 눈치채기 힘들다”며 “알코올중독 환자도 처음에는 음주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완 교수는 “매일같이 술을 마시면 간세포가 회복되지 못해 아무리 적은 술도 독이 될 수 있다”며 “특히 다이어트 중이거나 땀을 많이 흘린 뒤에는 체내 수분량이 줄어 알코올성 손상이 심해지는 만큼 금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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