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고 싶은 여자 어린이, 이렇게 많았구나

김은경 기자 2020. 6. 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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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 두 잇][4] 여자 유치원생 초등생 모인 완주군FC
학교 단위 팀은 선수 부족으로 해체
지역 단위 팀 창단해 성공 모델로
여학생 축구교실 지원 신청 해마다 늘어
"평생 즐길 수 있게 돕는 시스템 필요"

지난 2월 전북 완주군에서 만난 초등학교 5학년 김희나양은 ‘축구 잘하는 화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장래희망은 화가이지만, 일주일에 세 번 언니·여동생들과 공 차는 것도 재미있다. “친구들이랑 패스 주고받으면서 골을 만드는 게 좋아요. 패스가 부드럽고 정확한 파울로 디발라(유벤투스)를 닮고 싶어요.”

2020년 2월 전북 완주군의 완주군FC 소속 여자 어린이들이 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김영근 기자

희나양은 유치원에서 남자 친구들과 같이 공놀이하며 축구를 알게 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남자 친구들은 방과후 봉고차 타고 축구교실에 가는데 희나양은 축구할 장소도, 친구도 없었다. 부모님을 졸라대던 희나양은 3년 전 여자 어린이 축구단(완주군FC)이 생기면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설 수 있었다. 어머니 이경란(42)씨는 “희나가 집에서 남동생 세 명을 모아놓고 훈련을 시켜요. 덕분에 두 살짜리 막내가 스쿼트를 해요”라며 웃었다.

거친 몸싸움과 강한 체력이 필요한 축구는 여전히 여성에게 진입장벽이 높은 스포츠다. 축구를 하고 싶어하는 여자 어린이가 늘고는 있지만, 팀이나 프로그램을 찾기가 아직도 쉽지는 않다.

완주군은 학교가 아닌 지역 단위로 접근해 성과를 거둔 사례다. 지역 내 유일한 여자 어린이팀이었던 삼례중앙초 축구부가 5년 전 선수 부족 문제로 인해 해체됐다. 남학생 유소년클럽을 운영하던 방희철 감독은 대한축구협회가 여학생 축구교실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2017년 여학생팀 완주군FC를 꾸렸다.

남학생클럽에 공지했더니 누나들과 여동생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3년이 지난 현재 완주 지역의 여자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80여명이 완주군FC를 비롯한 축구교실에 다닌다. 지역 유소년 리그를 열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커졌다.

다함께 모여 화이팅을 외치는 완주군FC 여자 어린이 선수들./김영근 기자

협회 지원만으로는 여자 어린이 축구교실을 운영하기에 부족해 방 감독은 삼성꿈장학재단, 전북체육회 등을 통해 장비와 차량, 인건비를 추가로 지원받는다. 지난해부터 학교팀이 아닌 팀도 전국소년체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뀐 덕분에 완주군FC는 학교 단위가 아닌 팀으로는 유일하게 출전했다. 6학년 최유빈양은 “큰 대회에 나가 잘하는 친구들을 상대해보니 다음 번엔 우리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대회가 끝난 뒤로 더욱 열심히 훈련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북 현대를 열렬히 응원하는 가족의 영향을 받아 축구선수가 되는 꿈을 갖게 됐다는 6학년 유연우양은 “최철순(전북) 선수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완주군FC 김익수 코치는 “여자 아이들은 언니·동생과 재미있는 공놀이를 한다는 생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가 규칙과 기술을 터득하고 승부를 해보면서 축구에 깊이 빠져든다”고 말했다.

완주군FC 소속 여자 어린이 선수가 축구 훈련을 하고 있다./김영근 기자

대한축구협회 여학생 축구교실 지원을 신청한 초·중·고팀은 2018년 61곳에서 올해 76곳으로 매년 늘고 있다. ‘축구하는 딸’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도 많아졌다. 연우양 어머니 고은아(46)씨는 “축구는 몸싸움을 해야 하니 걱정이 되지만, 연우는 훈련하다가 다쳐도 축구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며 “여자 축구 환경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 국내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더라”고 했다.

방 감독은 여자 어린이들이 취학 전에 운동을 시작해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 들어가고 나이가 들수록 여자끼리, 남자끼리 어울리면서 여학생이 스포츠와 가까워질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는 “취미로 스포츠를 시작한 여자 아이가 엘리트 선수로 성장해나갈 수 있게 뒷받침하는 육성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일생 동안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꾸준히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전국 학교가 휴교하기 전인 2020년 2월 작성됐습니다.

2020년 2월 전북 완주군의 완주군FC 소속 여자 어린이들이 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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