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FA] 코트 떠나는 박성진, "기억 남는 건 챔프전 진출"

이재범 2020. 5. 29.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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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재범 기자] 2009년 KBL 국내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에 지명되었던 박성진은 2019~2020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박성진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2018~2019시즌 챔피언결정전 진출로 꼽았다.

박성진은 어쩌면 불운하게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는지도 모른다. KBL은 2009년부터 귀화혼혈선수 제도를 도입했다. 문제는 이들을 선발하는 팀은 국내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권을 박탈했다. 전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법이라고 해도 국내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겐 더 주목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전태풍과 이승준, 문태영은 외국선수 못지 않은 기량을 펼친 건 분명하다. 원하준과 박태양은 1순위에 뽑힌 선수와 동일한 보수 1억 원을 받을 기량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국내선수 드래프트 1순위에 지명된 박성진보다 원하준과 박태양이 더 주목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국내선수 드래프트도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 결과에 영향을 받아 하루 늦게 열렸다. 이 때문에 1순위에 지명된 박성진은 실질적으론 6순위에 뽑힌 선수 같았다.

KBL은 2009~2010시즌을 앞두고 신인왕 규정을 손질했다. 해외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를 신인상 대상에서 배제한 것. 박성진은 2009~2010시즌 신인상(8.0점 2.0리바운드 3.6어시스트)을 받았지만, 21.9점(8.5리바운드)으로 득점왕에 오른 문태영, KCC를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끈 전태풍(14.4점 4.7어시스트), 15.3점 7.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화려한 농구를 펼친 이승준과 비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성진은 2010~2011시즌 전신 구단 포함 전자랜드 최초로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맛본 뒤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다. 제대 후 전자랜드로 복귀해 2013~2014시즌부터 꾸준하게 주전급 선수로 출전한 박성진은 전환기를 맞이한다.

박성진은 2016년 첫 번째 자유계약 선수 자격을 얻었다. 다만, 보수 순위 30위 이내였기에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경우 보상(보상선수 1명+전년 보수의 50% 또는 전년 보수의 200%)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이적이 여의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박성진은 전자랜드와 첫 협상에서 합의를 하지 못했다. 보상 FA였기 때문에 다른 구단의 영입 제안도 없었다. 박성진은 결국 전자랜드로 돌아와 재계약했다. 다만 보수가 47.8%나 삭감되었다.

박성진은 데뷔 후 5시즌 동안 매번 50경기 이상 출전했다. 그렇지만, FA 이후 4시즌 동안 36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6~2017시즌부터 박찬희가 합류한데다 김낙현까지 가세하자 출전기회를 좀처럼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전자랜드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2018~2019시즌 팀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지켜봤다.

박성진은 지난해 두 번째 FA 자격을 얻어 KCC로 이적했다. 새로운 팀에서 새롭게 시작하려고 했던 박성진은 유현준뿐 아니라 이대성이 시즌 중 합류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22일 은퇴를 결정했다.

박성진은 28일 전화통화에서 드래프트를 언급하자 “그 때 당시에는 안 좋았던 거 같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때 드래프트를 따로 분리해서 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희미한 기억을 떠올렸다.

신인상을 받은 박성진은 데뷔 후 두 번째였던 2010~2011시즌 신기성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서장훈과 문태종까지 버티고 있어 정규경기에서 2위를 차지해 4강 플레이오프까지 직행했다.

박성진은 “신기성 형이 있어서 많이 배웠다. 성적도 좋았다. 2위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게 처음이었다”며 “그 때는 포스트에 엔트리 패스를 넣는 거나 제가 모르는 걸 배웠다. 기성이 형에게 경기 운영이나 경기를 관리하는 방법도 익혔다”고 했다.

박성진은 FA 이후 출전 기회가 급격하게 줄었다고 하자 “제가 선택을 잘못해서 그런 거 같다. 욕심이 과했다”고 아쉬워했다. 전자랜드도 5시즌 동안 키우려고 했던 선수가 팀을 떠나려고 한데다 박찬희, 김지완, 김낙현 등 그 자리를 채워줄 선수가 충분했기에 박성진을 이전과 달리 크게 중용하지 않았을 듯 하다.

박성진은 지난해 KCC로 이적한 뒤 점프볼과 인터뷰에서 ‘지난 세 시즌 동안 거의 경기에서 나오지 못했다. 또 출전했을 때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더 많은 기회를 바랐고, 그게 이적의 계기가 됐다. 어쩌면 선수 인생에 있어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며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이겨내야만 많은 시간을 받을 수 있다. 힘이 닿는 데까지 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2019~2020시즌 초반에는 기회를 받는 듯 했다. KCC 전창진 감독은 전자랜드에게 승리한 뒤 ‘최현민, 박성진같이 그 동안 많이 뛰지 못하던 선수들이 몸을 만들고 준비를 잘 하고 있던 점이 고무적이다. 두 선수에게 고마운 부분이 많다’고 박성진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도 잠시였다. 박성진은 KCC에서 6경기 평균 10분 1초 출전에 그쳤다. 박성진은 “KCC에서 나쁘지 않았다. 시즌 초반에는 경기를 뛰고 했는데 트레이드(이대성, 라건아 영입) 이후 팀이 어수선한 뒤 입지도, 출전 기회도 줄었다”고 했다. 박성진은 결국 2019~2020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박성진은 선수 생활 내내 다른 드래프트 1순위와 비교할 때 활약이 부족한 선수로 평가 받았다. 박성진은 “그런 평가가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제가 좀 더 잘 했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다. 제가 부족한 탓이다”고 했다.

박성진은 드래프트 당시만 하면 이 정도로 저평가를 받을 선수가 아니었다. 중앙대의 52연승 주역은 윤호영, 강병현, 오세근 등이지만, 가드 역할을 제대로 해준 박성진의 공헌도 무시하지 못한다. 김해가야고 시절 30점 이상 득점을 손쉽게 올렸던 선수였다. 대학 무대에서 주춤하긴 했어도 졸업을 앞두고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력을 선보였으며, 승부처에서도 강했다. 경기 운영 능력도, 2대2 플레이도, 수비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선수였다.

박성진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제가 경기를 안 뛰었지만 한 번은 챔피언결정전에 간 게 좋았다. 그 때가 좋았다. 제가 프로에 있는 동안 챔피언결정전에 나간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서 기억에 남는다”고 2018~2019시즌을 꼽았다. 박성진은 당시 정규경기 1경기에 출전했다. 자신은 출전 기회를 전혀 받지 못했음에도 팀의 최고 성적을 가장 기쁜 순간으로 꼽았다.

박성진은 “농구를 시작해서 프로 무대에서 11년 정도 생활을 했으니까 자부심이 있다. 후회는 많이 남는다. 그래도 그 당시 선택을 후회해봤자 늦었고, 신경을 써봐야 지난 일을 되돌릴 수 없다”며 “앞으로가 중요하다. 제 삶이기에 더 열심히, 다른 걸 알아가면서 살아야 한다. 쉬면서 생각을 해보고, 지도자를 고민하고 있다. 천천히 준비하려고 한다”고 자신의 선수생활을 되돌아봤다.

정규경기 통산 299경기 평균 18분 27초 출전해 1637점(5.5점) 405리바운드(1.4개) 699어시스트(2.3개) 3점슛 성공률 33.9%(262/774)를 기록한 박성진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지금까지 잘 해서 인터뷰를 많이 한 적이 거의 없다. 저를 좋아해주신 팬들께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거니까 계속 응원을 부탁 드린다.”

#사진_ 점프볼 DB(유용우, 홍기웅 기자)

점프볼 / 이재범 기자 sinae@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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