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특성화고를 졸업한 최주은씨는 한 회사에 취업한 지 두 달 만에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집에는 ‘출근한다’고 말하고 나와,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최주은씨(19·가명)는 사람인, 잡코리아 등 구인·구직 사이트를 몇 번씩 들락날락했다. ‘학교에서 책으로만 배웠던 것들이 아닌, 입사 선배들이 하시는 일을 도와드리면서 실무를 빠르게 익히고, 잘 활용할 수 있는 직원이 되겠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수정하다가 해가 저물면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 4월 초 회사로부터 권고사직 통보를 받은 뒤 최씨는 한동안 이렇게 지냈다. “부모님이 속상해하실 것 같아서” 다시 일을 구한 다음 말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는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지난 1월, 특성화고를 졸업한 최씨는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세법인에 취직했다. 관세사 업무를 보조하는 1년 계약직 사무원이었다. 대학 진학보다 취업을 선택한 건 일을 먼저 배워보라는 부모 영향이 컸다. “물류나 유통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최연소 수습 직원인 최주은씨는 서류 정리 등 허드렛일을 비롯해 수출입 신고 업무에 투입됐다. 직무교육이 따로 없었지만 “경력도 없는데 뽑아준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었다. 첫 달 받은 월급은 100만원 남짓이었다. 수습 기간이라면서 60%만 지급했다.

2월 초 최씨는 회사로부터 무급휴직을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월급을 줘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수출입이 감소하면서) 일 자체가 들어오지 않는다고요.” 한 달 만에 복직했지만 회사 분위기가 여전히 좋지 않았다. 3월 말이 되자 회사는 최씨에게 권고사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의 업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일한 기간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휴직 기간도 있어서 업무 성과를 거론하기엔 이른 것 같았다. ‘수습이니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하다가도 ‘왜 하필 나였을까’ 하는 속상함이 교차했다. “실무가 처음이라 미숙한 건 사실이지만 정식으로 입사한 회사였는데….”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브레이크가 걸렸다.

잔혹한 4월이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4월 고용통계에 따르면 4월 취업자 수는 2656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7만6000명 줄었다. 외환위기가 휩쓸고 간 뒤인 1999년 2월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다. 고용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건 청년들이었다.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24만5000명이 감소하면서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4월 한 달 ‘쉬었다’라고 응답한 인구 역시 청년층이 가장 크게 늘었다(46만6000명). 전년에 비해 35.5%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19로 인해 채용 일정은 무기한 연기되고, 아르바이트 일자리는 대폭 줄어들었다. 코로나19는 ‘청년 비정규직’이라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가장 세게 때렸다. 특히 비진학 고졸 청년의 피해가 크다.

실업으로 인한 책임은 고스란히 최씨 개인 몫으로 돌아왔다. 4월 내내 관세사무소와 관세법인 등 서른 곳 넘게 이력서를 보냈지만 연락이 온 곳이 거의 없다. 설상가상으로 자격증 시험도 코로나19로 인해 줄줄이 연기되면서 불안한 시간들이 쌓이고 있다. “나름 계획한 것들이 있는데 이렇게 쉬게 될 줄 알았겠어요?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최씨는 아직 어려서, 경력이 없어서,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건 이게 시작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졸업하기 전에 취업을 못하면 졸업 후엔 ‘나 홀로’ 생존해야 한다. 최씨 역시 학교의 도움 없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취업난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대졸자 중심으로만 이야기되는 것 같아요. 경력도 없고, 그렇다고 대졸도 아닌 우리로서는 소외감을 많이 느껴요.”

ⓒ시사IN 신선영고졸자 이지영씨는 ‘알바 고수’이지만코로나19로 인해 생계에 직격탄을 맞았다.

‘대학 안 나와도 잘살 수 있다’던 자신감이…

청년 중에서도 고졸 청년이 겪는 어려움은 수치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청년층’으로 뭉뚱그려지면서 청년 세대 내 여러 격차들은 납작해졌다. 이들은 코로나19 이전부터 비정규직, 단기직, 서비스직 등 불안정한 노동 여건에 노출된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고용위기가 파고들기 쉬운 ‘취약점’이기도 하다.

‘코로나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할까요?’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온라인 고민상담소 ‘hi, there’는 코로나19가 청년의 삶을 어떻게 타격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장이다. 비진학 사실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개중에는 특성화고, 마이스터고를 졸업했다고 밝힌 이들도 종종 있다. 고졸 청년 A씨의 경우 합격한 회사로부터 입사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19 여파였다. 입사만을 고대하며 군 복무를 마쳤던 터였다. 위기는 도미도처럼 왔다. 입사를 기다리며 아르바이트했던 카페에서도 A씨를 해고했다. 구직 시장에서 A씨는 자신감이 사라진다고 느낀다. 손에 남은 건 고등학교 때 땄던 자격증 몇 개 뿐이었다.

같은 바람에도 넘어진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와 서울시 청년청 등에 따르면 비슷한 사례를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제조 물품들이 안 나가서 4월 한 달간 다니던 공장 휴무랍니다. 코로나19가 언제까지 갈까요?” “다니던 회사가 코로나19로 직원들 반 정도가 그만두게 됐어요. 당장 급하게 면접 가능한 데가 콜센터뿐인데 면접 보면 합격률은 어느 정도인가요?” 서울시 청년청이 운영하는 ‘코로나19 청년 피해사례 청취’ 온라인 페이지에도 지난 한 달간 100건이 넘는 불만 사항이 접수됐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관계자는 "많은 청년들이 실직 또는 출근 지연의 위기에서 불안감과 막막함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고졸 청년의 경우 더욱 앞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취업할 수 있는 기업이 비교적 제한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불투명해진 미래를 책임져야 할 것은 개개인 몫으로 남았다.

이지영씨(가명, 23) 이력서에도 6개월 이하 단기 알바 경력이 줄줄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영화관 매표소, 의류 매장, 요식업, 드라마 보조출연, 행사 진행요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는 ‘알바 고수’다. 인문계고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기로 했다. 가고 싶은 학과나 학교가 없었다. 비싼 등록금으로 대학에 갈 바엔 기술을 배우는 게 낫겠다 싶었다. 부모 반대가 컸다. “무슨 일을 해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말에 저는 동의할 수 없었어요.” 그 후로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알바 자리를 찾아다녔다. 취업시장에서 20대를 환영하는 알바 자리는 많았지만 대부분 쉽고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인력을 찾았다. “가장 바쁜 점심시간대만 파트타임을 구한다거나, 야근수당을 안 주고 월급도 제때 주지 않는 곳이 많았어요.” 지난 4년간 단기 알바 15곳을 전전한 이유였다.

프리터족(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으로 살아온 이지영씨에게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서비스직 일자리 대부분이 직격탄을 맞았다.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알바 1명 뽑는 데 60명이 지원했다’ ‘하루에 지원서 30~40통 넣어도 연락이 안 온다’는 식의 하소연이 심심찮게 보였다. 알바 면접이라면 자신 있었던 이씨 역시 다섯 달째 수입이 없는 상태다. 상반기에 합격했던 영화제 일자리도 코로나19 때문에 일정이 하반기로 연기되었다. 하는 수 없이 부모 지원을 다시 받게 되었다. “캥거루족이 되는 건 한순간이더라고요.”

인문계고 출신인 그는 요즘 들어 대학을 가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행사장 안내 업무도 2~3년제 대졸자를 찾는 데가 많다. 구인 공고를 볼 때마다 ‘대학 안 나와도 잘살 수 있다’고 했던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많다. 모아둔 돈이 동이 난 4월에는 한 달 내내 거의 집에만 있었다. 좋아하던 취미생활과 약속을 모두 중단하면서 우울감도 커졌다. “대학 가서 취업한 친구들은 쉬어도 유급휴직을 받아 쉬던데 저는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어요.” 지금이라도 다시 수능을 볼까 하는 생각이 이씨를 힘들게 한다.

ⓒ연합뉴스5월4일 서울의 한 실업급여 설명회장에서 구직자들이 급여 수급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취약한 곳은 회복도 오래 걸려”

지난 4월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대응 고용안정 특별대책’을 발표하면서 3조6000억원을 투입해 공공 및 청년 일자리 55만 개를 창출한다고 밝혔다. 긴급 청년수당, 청년 기본소득 등 지자체별로 긴급 지원을 하고 있지만 최씨와 이씨 모두 관련 정보를 찾아보거나 신청해본 적이 없다. 청년 지원정책이 자신을 향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대부분 각개전투하고 있는 탓에 진로 고민을 나눌 관계망이 부족했다. 이지영씨가 가장 힘든 건 고립감이다. “어디에도 낄 데가 없어요. 소속 집단이 없는 게 제일 외로워요.” 같은 재난이라도 고졸 청년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유다. 이씨는 당장 일주일 일정을 비워두기로 했다. 언제 면접 자리가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언이퀄 보이스(Unequal Voices) 프로젝트:고졸 취업자 정책 발굴을 위한 FGI’를 진행한 청년오늘연구소 송명숙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청년 전체가 다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고졸 청년들의 위기가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만 고용 한파가 장기화되면서 중장기적으로 후유증이 나타날 것이다. 취약한 곳은 회복하는 데도 오래 걸린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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