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칼럼]코로나19 사태의 다섯 가지 사회적 코드Ⅱ

입력 2020. 5.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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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1일자 이 코너에 ‘코로나19 사태의 다섯 가지 사회적 코드’라는 칼럼을 썼다. 코로나 바이러스19가 중국 우한에서 처음 보고된 게 지난해12월31일이었으니 코로나19 사태가 시작한 지 70일쯤 지났을 때였다. 이후 유럽과 미국을 휩쓴 코로나 바이러스19가 최근 라틴아메리카를 강타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19 폭풍은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열고 있다. 이 사태가 일어난 지 150일을 앞둔 현재 시점에서 코로나19 사태의 선 자리와 갈 길을 다시금 숙고해 보려고 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첫째, 생태학적 관점. 생태학의 시각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문명의 성찰’을 요청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예견된 비극이다. 코로나19는 자연 파괴의 진행 과정에서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증가해 발생한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생물학자 최재천은 “예전 같으면 에피데믹(국지적 유행) 수준으로 끝났을 일을 사람이 팬데믹으로 만드는 거다”라고 일갈했다. 바이러스 전문가 네이선 울프는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는 살인자 바이러스들이 비규칙적 폭풍으로 몰아쳐 인류 생존을 위협할 것임을 경고했다. 자연과 공존하는 삶과 실천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생태학’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둘째, 정치학적 관점. 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정치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국가의 귀환’을 알렸다. 지구화된 위험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할 주체는 역시 일사불란한 관료제에 기반한 국가였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와 확진자 동선 공개 등을 앞세운 우리 정부의 방역 정책은 국가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히 증거한 사례다. 서구 일각에선 이런 국가의 귀환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나의 자유 못지않게 우리의 안전을 중시하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조화시키는 ‘공화주의적 상상력’이 새삼 소환되고 있다.

셋째, 경제학적 관점. 경제학적 측면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케인스주의의 복권’을 가져오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큰 정부로의 전환이 예견됐지만, 이미 공고화된 글로벌 가치 사슬에 일국적 케인스주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팬데믹이 낳고 있는 경제 위기는 전방위적 뉴딜을 요구하고, 이에 각국 정부는 재정 확대로 경제 살리기에 분투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전환(DT)이 가속화하는 제4차 산업혁명과 사회 양극화를 고려할 때, 케인스주의적 국가의 강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미래지향적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구조화된 빈부 격차를 완화하는 데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 ‘강하고 유능한 정부’라 할 수 있다.

넷째, 사회학적 관점. 사회적 차원에서 코로나19는 ‘언택트사회의 도래’를 열었다. 온라인 학습·쇼핑·문화생활 등 정보사회의 만개가 바이러스 폭풍을 통해 예기치 않게 이뤄진 것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비대면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대면과 비대면을 바탕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설정할 것인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던지는 중대한 사회적 과제다. 개인적 자율과 협력적 연대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들어 결합하는 ‘연대적 개인주의의 네트워크 문화’를 일구는 것이 그 방향일 것이다.

다섯째, 국제정치학적 관점. 지구적 차원에서 코로나19 사태는 ‘탈세계화의 촉진’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상호의존성의 증대로 경제적 세계화는 강화돼온 반면, 포퓰리즘의 분출로 정치적 세계화는 후퇴해 왔다. 코로나19 사태는 경제적 세계화에 제동을 걸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중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각국도생(各國圖生)은 글로벌 거버넌스를 더욱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화된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훼손된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구축’에 있다는 점이다.

문명의 성찰, 국가의 귀환, 케인스주의의 복권, 언택트사회의 도래, 탈세계화의 촉진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선 자리라면, 생존의 생태학, 공화주의적 상상력, 강하고 유능한 정부, 연대적 개인주의의 네트워크 문화,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구축은 그 갈 길일 것이다. 이 화두들을 붙들고 대안을 마련하는 데는 전문가들과 집단지성의 노력 모두 중요하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 날아오른다’라고 말한 이는 철학자 헤겔이다. 비록 황혼 무렵에야 난다고 하더라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탐구와 모색을 더욱 경주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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