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에도 "폰 봐" 웃으며 폭행, 영상속 그들 다 여중생이었다

진창일 2020. 5. 2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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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어두컴컴한 상가에서 폭행, 촬영
눈물 흘리고 비명 질러도 조롱 "휴대전화 봐라"
광주 동부경찰서, 가해 학생 2명 조사 중

무릎 꿇은 여학생이 비명을 지르자 조롱하듯 웃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피해자에게 촬영 중인 휴대전화를 바라보라고 강요한다. 자신을 '쳐다봤다'는 것이 폭행과 욕설을 견뎌야 했던 이유였다.


"미안해? 죄송하다고 해"

지난 18일 오후 6시쯤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의 빈 상가에서 촬영된 한 영상. 어두컴컴한 상가에서 무릎 꿇은 여학생의 머리채를 또 다른 여학생이 붙잡고 "사과하라"고 말한다. 피해 학생이 "(머리를 잡은) 손을 놓아달라"고 부탁하자 "사과 먼저 하라"며 놓칠 않는다.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의 빈 상가에서 벌어진 집단폭행을 촬영한 영상. 페이스북 캡처

피해 학생이 "반말했던 것 미안해요"라고 말하자 가해 학생은 "죄송하다"고 안 했다며 언성을 높인다. 가해 학생은 더 사과하라며 머리채를 강하게 쥐어 튼다. 고통을 참지 못한 피해 학생이 비명을 지르자 가해 학생들은 걱정은커녕 웃으며 조롱한다.


눈물 흘리는 피해자 찍으며 조롱

가해 학생 2명은 피해 학생이 고통 속에 눈물을 흘려도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 학생을 향해 "격투기를 배웠다"며 위협한다. 피해 학생이 눈물을 훔치고 휴대전화를 피해 등을 돌리자 욕설을 하고 "웃기냐"며 때리다가 "여길 보라"며 강요한다.

지난 18일 오후 6시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의 빈 상가에서 한 여중생이 동급생의 머리채를 쥐어잡으며 폭행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쳐


가해 학생들은 폭행 동영상을 친구들에게 공유하며 2차 손해도 입혔다. 피해 학생은 폭행을 당한 날 가해 학생이 친구들에게 보낸 영상을 또 다른 경로를 통해 전달받아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장면을 재차 확인해야 했다.

피해 학생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폭행 영상을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공개했고 폭행으로부터 5~6시간 뒤인 19일 오전 0시 40분께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가해 학생 2명 수사 중

광주 동부경찰서는 25일 폭행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중학교 3학년 A양 등 2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다. 가해 학생들이 반말했다며 폭행한 피해 학생과 같은 나이였다.

경찰이 수사한 이 날 폭행의 발단은 "피해 학생이 쳐다봐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에게 시비를 건 뒤 인근 빈 상가로 끌고 들어간 뒤 뺨을 때리고 발로 차는 등 과정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가해 학생 2명 중 1명은 피해 학생과 아는 사이로 같은 나이 또래라는 것도 알았지만, 함께 폭행에 가담하고 영상을 촬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끊이지 않는 동영상 촬영 범죄 왜?

청소년 집단폭행 영상 촬영과 유포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경기도 수원의 한 노래방에서 한 초등학교 여학생이 중학생들에게 집단 폭행당한 영상이 SNS를 통해 퍼져 공분을 샀었다. 이 사건은 가해자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져 25만명이 참여했다.

지난해 10월 대전에서도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동급생을 집단 폭행한 영상을 촬영하고 단체 대화방에 공유하는 사건이 있었다. 전북 익산에서는 지난해 11월 고등학생 3명이 여중생을 집단폭행하고 영상을 촬영해 경찰에 붙잡혔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집단폭행 영상 촬영과 공유가 잘못 습득된 디지털 인식이 계속되기 때문이라고 경고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 "10대 아이들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인 모욕과 같은 잔인한 영상을 접하다 보면 죄의식이나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재미있는 놀이라는 관념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세계에서 습득한 잘못된 관념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가상세계에 올려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일종의 쾌감을 얻는 과정"이라며 "가상 세계에서 배운 반 도덕·반 규범적인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강화된 제도나 법률적 근거, 교육 등 대처가 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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