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이해찬의 '검은 그림자', '하얀 그림자'

김광일 논설위원 2020. 5. 25. 14: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지난 주말 고 노무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에서 이런 추도사를 배포했다. "노무현 재단과 민주당을 향한 검은 그림자는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사전에 배포한 추도사에는 이 부분이 있었으나 이 대표는 실제 추도사를 읽을 때 이 부분을 건너뛰었다고 했다. 의구심 두 가지가 생긴다. 첫째, 난데없이 추도사에 등장한 ‘검은 그림자’란 무슨 뜻일까. ‘검다’는 것과 ‘그림자’는 이 경우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검은 그림자’라고 두 번이나 강조함으로써 매우 부정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 무엇을 암시하는 말일까. 두 번째 의구심은 배포한 추도사에는 ‘검은 그림자’를 넣었다가 막상 그걸 읽을 때는 왜 건너뛰었을까.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추도사를 읽기 직전에 민주당 지도부에서 만류했을까.

여기서 잠깐 달포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도 비슷한 정황이 있었다. 4·15 총선 직전이었는데, 방송인 김어준, 그리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서로 조율이나 한 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런 말을 쏟아냈다. "가짜 뉴스가 엄청나게 돌고 공작정치가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김어준, 유시민, 이해찬, 세 사람은 무엇이 공작정치라는 것인지 구체적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런 발언들을 보도하는 기자들도 조심스럽게 추측성 분석을 할 뿐 콕 집어서 이거다 저거다 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n번방’이라 불리는 성 착취물 동영상 사건으로 떠들썩했기 때문에 혹시 n번방 연루자 중에 민주당 인사가 있는 것 아니냐는 풍문이 돌았을 뿐이다.

그런데 총선 직후에 터져 나온 뉴스가 ‘오거돈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이었다. 가히 핵폭탄 급이라고 할 만큼 정치·사회적으로 충격이 컸다. 그런데 이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지난 4월7일이었다. 총선을 정확하게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만약 이 사건이 발생 즉시 세상에 알려졌다면, 총선에서 오거돈 시장이 속한 민주당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런데 오거돈 시장 측은 총선을 코앞에 둔 시기라는 점에서 4월15일 총선 이후 시장직에서 사퇴하기로 제안하고 피해자도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걸 원하지 않아서 21대 총선이 끝난 이후 밝히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더구나 오거돈 시장은 피해여성에게 "총선 이후에 꼭 사퇴하겠다"며 미리 사퇴서를 작성해 피해여성 측에 보냈고, 심지어 그걸 공증까지 받았다는 게 알려졌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해찬, 유시민, 김어준, 세 사람이 총선 직전에 미리 연막전술처럼 안개를 피워서 가려놓았던 것이 ‘n번방’ 연루가 아니라, ‘오거돈 사건’을 꾹꾹 눌러놓으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됐다. 오거돈 성추행 사건이 벌어진 4월7일에서 4월15일 총선 때까지 일주일 사이에 민주당은,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은 어디까지 알고 있었으며, 어디까지 입막음을 하려는 긴급 조치를 취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도둑이 경찰관을 향해 "도둑이야!"라고 먼저 ‘선빵’을 치면서 외치는 형국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해서 경찰관으로 하여금 잠시 할 말을 잃게 만들고, 동네 주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수법이었다고나 할까,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기시감이라고 할까, 데자뷔라고 해야 할까. 달포가 지난 시점인 5월23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또다시 "검은 그림자가 걷히지 않고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검은 그림자’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당연히 음모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이렇게 말했다. "정색하고 미리 초를 치는 것을 보니 노무현 재단과 관련해 곧 뭔가 터져나올 듯 하다. 유시민은 지난해부터 그 얘기를 해왔고, 이번에는 이해찬까지 그 얘기를 한다. (…) 뭘까? 변죽 그만 울리고 빨리 개봉하라. 우리도 좀 알자." 진중권 교수의 유쾌한 비유법, 그러면서도 따끔한 일침은 사태의 정곡을 꿰뚫고 있다. 정치 공작의 음습한 안개는 정작 당신들이 피워 올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인 것이다. 사실을 따져보면 진중권 교수가 이해찬 총리에게 "변죽 그만 울리고 빨리 개봉하라"고 했는데, 이해찬 대표의 목적은 ‘개봉’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변죽만 울리다 그만 두는 데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은 모른다. 그것이 ‘재단 비리 의혹’이 될지, 아니면 ‘라임 사태’나 ‘신라젠’ 같은 경제 범죄 사건에 민주당 인사가 깊숙이 얽혀 있다는 뜻인지 알 수 없다. 민주당이 지금 노심초사하고 있는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것인지 현재로서는 그야말로 ‘검은 그림자’에 가려 있을 뿐이다.

이해찬 대표가 ‘검은 그림자’를 걷어내고 ‘하얀 그림자’가 되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어두운 부분을 고백할 수도 있을 텐데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 이해찬 대표가 말한 ‘검은 그림자’,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말 국민의 이름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제2의 오거돈 사건’이 묻혀 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