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도 '개콘'처럼 뼈아픈 꼴 당하지 말란 법 없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0. 5. 2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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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겨워진 '1박2일', 살 길은 어디에 있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KBS2 <개그콘서트>가 폐지된다. 21년간 우리나라 공개 코미디의 중추였고 한때는 온 가족 콘텐츠로서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인기 예능이었다. <개콘>의 웃음은 주5일제의 긴 주말이 끝나는 아쉬움을 달래는 전 국민적 리추얼이기도 했다. 산업적으로 들여다봐도 스타 탄생부터 CF에 등장하는 유행어까지 우리나라 코미디산업과 예능의 정점이었다. 그런 영광과 추억, 수많은 코미디언들의 피, 땀, 눈물을 뒤로하고 폐지(정확히 말하면 폐지에 준하는 휴식)를 결정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오늘날 <개그콘서트>이 처한 상황은 재능과 노력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지상파의 소재 제약이나 트렌드의 변화와 같은 진단도 일부 맞는 말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공개코미디는 무성영화 시대의 슬랩스틱처럼 코미디 역사에서 이미 지나간 장르다. 전통적인 방식의 코미디가 위축된 건 세계적인 흐름이다. 본토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조차 스탠딩 코미디나 코미디영화 산업은 사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는 넷플릭스에 공개된 할리우드 코미디산업의 제왕 주드 아페토우의 스탠딩 코미디쇼나, 코미디 영화가 아닌 <조커>를 만든 이유를 밝힌 전직 코미디감독 토드 필립스의 인터뷰에서도 대략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비단 우리나라 문화적 토양의 까다로움이나 <개콘>에게만 일어난 가혹한 현실이 아니란 이야기다.

오늘날 시대의 의식과 감수성에 비춰볼 때 정통적인 코미디 작법은 누군가에게, 어떤 지점에서, 반드시 불편함을 초래하게 된다. 그런데도 공개 코미디를 고수해온 <개콘>은 온 가족 콘텐츠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처럼 수년간 지녀온 목표 자체가 비현실적인 어불성설이었으니 어려움을 겪는 건 당연했다. 그러는 사이 이미 대세인 대안 콘텐츠와 플랫폼이 융성했다. 오늘날 코미디 콘텐츠는 과거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커진 지탄을 감수할 수 있을 방법으로 보다 확실한 타깃 오디언스를 찾아 다양하되 마이너하고, 자극적이면서 보다 현실에 밀접한 가벼운 방식으로 시대에 적응했다. <개콘>의 폐지는 코미디 방법론부터 방송사가 콘텐츠와 플랫폼을 모두 장악하던 시대에 유용했던 코미디언 공채 시스템까지 과거 영광의 재현을 목표로 삼고 버텨온 관성을 끊은 셈이다.

그런 만큼, 이런 뼈아픈 결정이 학습효과가 되길 바란다. KBS 예능국은 최근 <해투>와 <개콘>이란 대표적인 장수 예능을 정리했다. 그럼에도 또 다른 장수 예능인 <1박2일>을 보면 앞서 언급한 두 프로그램의 그림자가 여전히 어른거린다. 특히 시대의 뒤안길로 접어든 장르의 법칙을 고수한다는 측면에서 <개콘>이 겪은 어려움을 반복할 공산이 가장 큰 다음 주자 후보기도 하다.

물론 앞서 폐지된 프로그램과 달리 <1박2일>은 믿을 구석은 있다. 급하게 편성된 시즌4도 기본 시청률 10%의 고정 시청자층이 탄탄하다. 최근에는 점점 더 '폼이 올라오고 있다'는 고무적인 평이 늘어나는 추세다. 백상예술대상 '남자 TV예능상' 후보에 오른 문세윤의 원맨쇼급 활약에, 김선호 등 새롭게 발굴한 신선한 인물 등 나름 캐릭터를 구축하고, 멤버들의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일명 '케미스트리'가 점점 무르익는 중이다. 덕분에 게임의 전개나 리액션 등 분위기가 초반에 비해 몰라볼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익숙함이 평온함을 넘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때가 있다.

<1박2일> 시즌4는 김종민을 빼면 주요 연출자와 출연자 모두 교체됐는데 큰 틀에서 변화는 없다. 새로운 볼거리나 창조가 아닌, 재현과 대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배우 출신의 큰형 연정훈의 이미지, 진행과 웃음을 모두 담당하는 문세윤과 까불거리면서 잔머리 쓰는 딘딘의 역할, 그리고 라비나 김선호 등의 새얼굴이 보여주는 활약 방식 등등 비교 대상이 존재하기에 기존의 공식에 비춰보게 된다.

그래서 시즌4가 받는 좋은 평가들은 대부분 과거의 모습을 얼마만큼 재현해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오늘날 달력의 날짜와 출연자, 연출자 전부 바뀌었지만 게임의 항목이나 이른바 '복불복'으로 상징되는 룰과 '왁자지껄'한 정서는 원형 그대로 수행한다. 음식을 걸고 게임을 하고, 마사지사가 등장하거나 페어글라이딩이나 출렁다리 같은 레저가 벌칙이 된다. '생고생'을 내세우면서 만들어진 제작진과의 대립구도 속에 겁 많은 캐릭터, 눈치 빠른 캐릭터, 순수한 캐릭터 등이 새로운 얼굴로 채워진다. 지난 시즌, 혹은 <신서유기>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계속 되는데 스케일이나 상상력 측면에서 진일보한 면이 없다. 너무 익숙한 게임과 긴장과 위기의 반복이다. 이른바 덜 자란 소년 같은 개구쟁이들의 세상이란 리얼 버라이어티의 세계관 속에서 답보다.

이제는 지겹다, 너무 똑같다는 비판을 받는 연예인가족의 관찰예능은 그래도 시대성이 있다. 시트콤의 변화된 버전으로 예능의 진화를 이뤄냈고, 출연자와 시청자의 정서적 교감 폭을 극대화한 지점, 부러움과 공감의 양단 모두를 오가는 폭 넓은 소재와 정서적 접근의 유연함은 롱런의 한 요인이다. 그런데 <1박2일>은 추구하는 재미와 볼거리를 프로그램의 역사 안에서 찾으려 한다. 세상은 변하고 시대는 흘러갔는데, 그때 그 세계관을 그리워한다. 목표도 과거 가장 잘나가던 시절의 퍼포먼스를 따라잡는데 둔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개콘>의 전철을 벗어날 길이 딱히 없다. 준수한 시청률에 비해 <1박2일> 시즌4의 화제성과 존재감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것은 트렌드에 뒤떨어진데다 그 안에서 새로움을 찾으려는 노력이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광 재현을 목표로, 그 시절 그대로를 보여주는 건 복고 콘텐츠의 역할이지 10여년 넘게 이어오는 장수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위기 신호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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