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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회계전문가 "시민단체, 왜 후원자 안보고 국가만 보나"

송고시간2020-05-2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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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기준 현실과 맞지 않지만 '국세청 홈택스'에만 의존하는 단체들도 문제"

"후원자, '나는 좋은 일 했다'에서 멈추지 말고 단체와 적극 소통해야"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지난 7일 대구에서 연 기자회견은 피해 당사자와 운동단체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간의 관계, 한일 미래세대 교육의 문제 등 다양한 고민거리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지적과 의혹이 제기된 부분은 정의연의 부실한 회계관리다.

연일 정의연 관련 의혹 보도가 쏟아지고 국세청과 검찰까지 나서면서 비영리단체 전반의 회계 문제에 관심이 쏠린다. 자체적으로 과거 몇 년 치 회계자료를 다시 점검하는 단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는 25일 비영리단체 감사 분야에 30여년 종사한 최호윤 회계사의 의견을 들어봤다. 그는 쳇바퀴 돌듯 반복돼 온 문제를 개선하려면 비영리단체와 정부, 후원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하는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하는 이용수 할머니

[연합뉴스 자료사진]

◇ 수혜자가 999명, 9천999명?…"현실과 동떨어진 회계기준 탓"

비영리단체의 회계 역량은 단체 규모에 따라 차이가 큰 편이다. 회계사에게 맡기거나 아예 전문인력을 단체 내부에 두는 곳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작은 단체는 '아마추어' 수준의 구성원이 짬을 내 결산서류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숫자가 결산서에 표기되는 일도 있다. 정의연 등이 국세청 공시자료에서 기부금 수혜 인원을 '99명', '999명', '9천999명' 등으로 기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 회계사는 "국세청 양식의 문제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직접 기부금을 나눠주는 사업일 경우 수혜자 정보만 관리하면 되지만, 현재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비영리단체가 설립 목적에 맞게 일상적으로 하는 활동 하나하나를 사업자등록번호별로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령 수혜자에게 물품을 지급하려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교통수단 사업주의 번호를 관리해야 하고, 수혜자와 만나서 대화하기 위해 간식을 사면 슈퍼마켓 사업자등록번호까지 일일이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기준이 비영리단체의 여러 유형 중 구호단체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시각도 있다.

최 회계사는 "국세청 양식은 '단체가 돈을 나눠주는 것'과 '단체의 활동'의 속성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다"며 "단체들은 바쁘니까 그때그때 얼마를 썼는지만 영수증을 챙겨뒀다가 3월 말이 되면 서류 제출은 해야 하니 궁여지책으로 무의미한 숫자를 기록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최호윤 회계사[오른쪽]
최호윤 회계사[오른쪽]

[연합뉴스 자료사진]

◇ "국가 회계기준 맞추기 급급해 후원자와는 소통 못 한다"

물론 이것이 회계가 부실하다는 그간의 문제제기를 전부 해명하지는 못한다. 최 회계사는 "10년 넘게 주장해온 이야기"라며 비영리단체와 정부, 후원자의 관계 설정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17년 기획재정부에서 공익법인 회계기준이 나오기 전까지 비영리단체들은 '회계기준이 없으니 우리가 중구난방으로 회계를 한다'며 국가에 문제를 돌렸다"면서 "그런데 회계기준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현장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게 아니라 학자 등 몇 사람이 모여 만들고는 '이렇게 하라'고 툭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작 회계정보를 봐야 하는 건 후원자인데 어째서 후원자와는 소통하지 않고 국가만 쳐다보는가, 문제는 여기에 있다"며 "양식도 맞지 않은 국세청 홈택스에만 결산서를 공개할 것이 아니라 비영리단체들이 각자 홈페이지에 실질적 회계정보를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 회계사는 문제가 터졌으니 정부가 개입하면 된다는 일각의 주장도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인세든 부가세든 '더 걷을 것'이 있는 기업과 달리 비영리단체는 세무조사를 한다 해도 세수 추가가 얼마 안 된다"며 "국세청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여기에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비영리 부문을 아는 세무공무원이 거의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최 회계사는 "국가 감독이 실제로 적용 가능한 방안이냐에 대해 먼저 고민을 하지 않고 '개입하라'고만 하면 지금 상황에서는 비영리단체 모두 문 닫으라는 이야기밖에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좋은 일 했다'로 그쳐선 안 돼…후원하는 단체와 함께 고민해야"

지난해 국책연구기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나눔실태 조사에 따르면 기부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자 가운데 49.1%가 기부 이유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서'를 꼽았다. '보람을 느껴서'라는 응답(15.9%)까지 더하면 기부자 3명 중 2명은 '선의'를 기부의 가장 중요한 동기로 꼽은 셈이 된다.

'지인이나 모금기관, 관련 조직, 종교단체 등의 요청을 받아서' 기부했다는 응답자가 20.4%였던 반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지갑을 열었다는 능동적 기부자는 14.0%에 그쳤다.

최 회계사는 이런 기부 문화가 회계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는 "정부 보조금 집행이 어떻게 되는지 감독하는 국가와 달리 소액 후원자들은 분산돼 있다"며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끝까지 함께 고민하는 기부자가 별로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회계사는 "기부한 사람이 '나는 좋은 일을 했다'는 도덕적 만족감을 얻고 소득세 공제를 받는 데서 그치는 지금 구조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며 일종의 '기부자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왕 기부를 한 이상 자신이 낸 돈으로 이 단체와 소통하고 함께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계속 고민하는 운동이 나와야 한다"며 "결국 비영리단체가 움직이려면 회비를 내는 사람들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후원했는데 왜 이러냐. 후원금 돌려달라'는 건 정말 무책임한 태도"라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미래 전망에는 희망도 섞였다.

"결국에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점이 터지고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비영리문화, 기부문화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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