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 4년.. 여성들 불안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박지원 2020. 5. 1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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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도 지금도 저는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직장인 여성 A씨(27)는 4년 전 강남역 10번 출구를 빼곡히 덮었던 포스트잇 물결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발언에 나선 한 참가자는 "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오늘까지 지난 4년간 끊임없이 안전을 위해 싸워왔음에도 여성들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범죄 이후 일상으로 복귀하고 삶을 영유하는 일이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어려운 일이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모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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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4주기.. 피해자 추모 열기 / 10번 출구 '애도 포스트잇' 수십개 / 시민단체서 'n번방' 규탄 행사도 / "그때도 지금도 우연히 살아남아 / 폭력에 무방비 노출 현실 여전" / 여성 57%가 "범죄 우려로 공포" / 정 총리 "여성의 안전 지켜줘야"

“4년 전에도 지금도 저는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직장인 여성 A씨(27)는 4년 전 강남역 10번 출구를 빼곡히 덮었던 포스트잇 물결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2016년 5월17일 새벽 서초구 서초동의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스물세살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30대 남성에게 살해당한 지 며칠 뒤의 일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A씨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피해자는 그와 동갑이었고 강남역은 A씨가 자주 찾던 곳이었다. ‘그날 피해자가 되는 게 나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길을 갈 때, 모르는 남성과 한 공간에 있게 됐을 때, 남녀공용 화장실을 쓸 때 막연히 느껴온 공포감이 실체를 갖게 된 느낌이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피해자에 대한 추모 메시지가 붙어있다. 뉴스1
그로부터 4년이 지났지만 A씨는 여성 안전과 관련해 크게 달라진 점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불과 얼마 전에도 고깃집에서 일하던 여성이 친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다는 뉴스를 봤다. 비슷한 일들이 한 해에도 여러 건씩 터지고 또 쉽게 잊혀지는 것을 보면 사회가 여성들의 불안에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인 17일 당시 추모공간이 마련됐던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다시 포스트잇이 붙었다. “오늘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어떤 여성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서는 안 된다” 등의 문구를 담은 수십개의 포스트잇이 열 송이의 흰 국화와 함께 강남역 10번 출구를 장식했다. 인근에서는 이날 오후 1시부터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단체에서 주관한 여성 대상 범죄 규탄 발언 행사가 열렸다. 검은 옷을 입은 20여명의 참가자들은 번갈아 마이크를 잡고 규탄 발언을 이어갔다.
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인 17일 희생자 추모식이 열린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 메모가 붙어 있다. 이제원 기자
발언에 나선 한 참가자는 “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오늘까지 지난 4년간 끊임없이 안전을 위해 싸워왔음에도 여성들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범죄 이후 일상으로 복귀하고 삶을 영유하는 일이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어려운 일이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모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발언에 귀를 기울이던 시민 박모(30·여)씨는 “사람들이 사건이 터질 때마다 냄비처럼 끓었던 관심도 금방 식는 것 같다. 아직까지 사회 전반에서 여성 문제가 후순위로 다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이 각자의 삶에서 느껴온 불안과 공포를 털어놓으며 안전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지 4년이 지났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범죄 피해의 공포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이 사회 안전이 불안하다고 느끼는 원인은 ‘범죄 발생’이라는 응답이 57%로 가장 많았다. 반면 남성은 44.5%만 범죄를 불안의 원인으로 꼽아 전체 불안 요소 중 성별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이 늘어 큰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유의미하게 개선된 것은 많지 않다”며 “여성 안전은 경찰뿐 아니라 사법부와 정계 등 사회 전반이 함께 노력해야만 개선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페이스북 캡처
정세균 국무총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부는 여성이 안심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어느 한쪽 성에 불리한 정책과 제도가 있다면 과감히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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