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퍼거슨.. 게이치, 대형 사고를 치다

김종수 입력 2020. 5. 11. 17:21 수정 2020. 5.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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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하빕-퍼거슨 양강구도 깨트려버린 게이치

[오마이뉴스 김종수 기자]

화끈함이 보장된 경기 내용으로 인해 '더 하이라이트(The Highlight)'라는 별명까지 얻은 UFC 라이트급 파이터 저스틴 게이치(31·미국)가 대형사고를 쳤다. 라이트급 최강자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던 '엘쿠쿠이(El Cucuy)' 토니 퍼거슨(36·미국)을 잡아버린 것. 해당 승리에는 여러 가지 스토리와 배경까지 얽혀있는지라 단순히 빅네임을 이긴 것을 넘어서 격투 역사에 남을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다.

게이치는 1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 비스타 베테랑스 메모리얼 아레나서 열린 UFC 249 메인이벤트 UFC 라이트급 잠정 타이틀전에서 퍼거슨을 5라운드 TKO로 무너뜨렸다. 12연승을 달리며 절대 질 것 같지 않았던 포스를 풍기고 있던 퍼거슨임을 감안했을 때 충격적 결과다.

최근 몇 년간 라이트급은 절대강자 '독수리(The Eagle)' 하빕 누르마고메도프(32·러시아) 천하였다. 압도적 그래플링 파워를 앞세운 누르마고메도프의 압박은 누구도 견디어내지 못했고 최정상은 챔피언의 독주체제로 굳어진지 오래다.

그런 상황에서 퍼거슨은 누르마고메도프의 유일한 대항마로 불렸다. 격돌시 누르마고메도프의 우세가 예상되면서도 도깨비 같은 파이팅 스타일상 '혹시 퍼거슨이라면…'이라는 기대가 컷다. 만약 누군가 누르마고메도프를 꺾는다면 퍼거슨이 될 것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때문에 누르마고메도프와 퍼거슨의 경기는 라이트급은 물론 UFC 전 체급을 통틀어 최고의 드림매치로 기대를 모았다. 전혀 다른 캐릭터, 파이팅 스타일의 격돌인지라 경량급 표도르-크로캅이 될 것이다는 얘기까지 터져 나왔다. 안타깝게도 둘의 맞대결은 여지껏 단 한번도 성사되지 못했다.

둘은 지금까지 무려 5차례나 대진이 잡혔음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겹치며 매치업이 취소됐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예약해놓은 경기가 날아간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이전 4번은 부상 및 감량 과정에서의 건강 이상 등이 원인이었다. 라이벌(?)답게 서로 두 번씩 경기 취소의 원인을 제공했다.

반면 이번 취소는 코로나19로 누르마고메도프가 러시아에서 출국 길이 막히는 바람에 치러질 수 없었다. '둘이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경기가 성사되는 것 아니냐'는 말과 함께 이를 풍자하는 합성사진이 돌아다녔을 정도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전 4번과 겹쳐 더더욱 아쉬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

강약조절+전략, 게이치라는 탱크는 진화했다!

 
 '엘쿠쿠이(El Cucuy)' 토니 퍼거슨(사진 왼쪽)과 '더 하이라이트(The Highlight)' 저스틴 게이치
ⓒ UFC
 
사실 퍼거슨과 게이치의 시합은 열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주최측에서는 일정에 차질이 온데다 누르마고메도프까지 빠져버린 UFC 249를 살리기 위해 게이치를 긴급 투입했다. 그런 사정을 퍼거슨 역시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실 상당수 파이터들 같았으면 이를 거절하고 이후를 기약했을 공산도 크다.

본인의 일생일대 커리어가 달린 경기를 앞두고 자칫 발목이라도 잡히게 된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퍼거슨은 계속된 일정 변경으로 캠프가 너무 오래지속된 것을 비롯 감량문제까지 겪으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이기면 본전, 지면 나락'이 될 수도 있는 가성비 떨어지는 승부를 구태여 치러야하냐는 의견도 많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뼛속까지 싸움꾼 퍼거슨은 개의치 않았다. 결국 상성에서 조차 좋지 않아보였던 게이치와의 매치업을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최악의 악수가 되고 말았다.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한 누르마고메도프가 돌아오더라도 퍼거슨은 당장 싸울 수 없게 됐다. 적지 않은 나이를 감안했을 때 더더욱 아쉬움이 크다. 역대 최악의 수면제로 꼽히는 조르주 생 피에르처럼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계산기를 두드려대는 모습도 보기 싫지만 '이번만큼은 쉬어가는게 어땠을까'라는 한숨 섞인 목소리가 팬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어쨌거나 게이치는 이번 대결을 통해 새로운 주인공으로 급부상했다. 많은 나이, 훈련캠프 일정 등에서 퍼거슨이 어려움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게이치 역시 대타로 들어왔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박수받을만하다. 에디 알바레즈, 더스틴 포이리에 등에 패배를 기록할 때만 해도 '한계가 명확한 파이터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이후 거침없는 연승행진을 달리며 벽을 스스로 깨트리고 있다.

지난 도널드 전에서 드러났다시피 게이치는 파이팅 스타일면에서 한층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른바 압박형에서 지능형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것. 본래 게이치를 대표하는 플레이는 전진기어만 바꿔가면서 압박 또 압박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상대에게 위험한 공격을 자주 허용하기도 한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 것을 넘어 같이 뼈를 깎아나가는 듯 한 느낌까지 받는다. 이를 입증하듯 게이치는 승리한 경기에서조차 데미지를 만만치 않게 받는 편이다. 때론 누가 이긴건지 모를 정도로 본인 역시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다. 그야말로 엄청나게 치고받는 소모전을 즐기는 유형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매력 때문에 많은 팬들은 게이치에게 열광한다. 그의 경기는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열성 팬들 사이에서 골병(?) 들겠다는 걱정 어린 목소리도 흘러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게이치는 자신의 이러한 색깔을 바꿀 생각이 없음을 여러 차례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게이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도 맞고, 너도 맞고'가 아닌 '나만 때리고, 나는 안 맞고'로 바뀌어가고 있다. 게이치와 경기를 가지는 대다수 선수들은 외곽을 돌며 케이지를 넓게 쓰는 경우가 많다. 게이치가 스탭이 좋은 편이 아닌지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싸우는 쪽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게이치가 펀치만 쓰는 선수라면 분명 그러한 대응법에 어려움을 겪었을 수도 있다. 게이치는 효과적으로 상대의 기동력에 균열을 만들어낼 확실한 무기를 하나 장착하고 있다. 다름 아닌 로우킥이다. 게이치에게 있어 로우킥은 옵션 중 하나가 아니다. 대표적 주무기다. 쟁쟁한 로우킥 테크니션들과 비교해도 사용 빈도와 위력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로우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게이치의 차별화된 점이었다. 대부분 맷집, 근성으로 압박하는 터프가이들은 펀치를 휘두르며 그냥 밀고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이치는 압박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하체를 때려주며 상대의 기동력을 둔화시킨다. 이후 상대의 체력이 떨어지고 데미지가 쌓여갈 즈음 진흙탕 싸움을 통해 승부를 마무리 짓는 그림을 많이 만들어낸다.

게이치는 이른바 새로운 파이팅 스타일에 눈을 뜬 모습이다. 공격적인 성향은 여전하지만 예전처럼 무작정 들어가서 치고받는 것이 아닌 전략적 움직임과 강약조절을 통해 자신은 덜 맞고 상대는 많이 때리는 패턴에 완성도를 더해가고 있다.

퍼거슨과의 경기 역시 그랬다. 퍼거슨은 언제나처럼 거침없이 전진 스탭을 밟으며 진흙탕 싸움을 걸었다. 반면 게이치는 자신의 거리를 지키면서 카운터 위주로 공격하며 퍼거슨을 당황시켰다. 정타를 맞추고 더 깊이 들어갈 만한 상황서도 냉정함을 유지했다.

유효타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자 마음이 급해진 것은 퍼거슨 쪽이었고 게이치는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나간 끝에 5라운드 TKO로 승부를 끝냈다. 2라운드 막판 크로스 어퍼컷 상황서 충격을 입은 것 외에는 위기도 많지 않았다. '그동안의 게이치가 맞나'싶을 정도로 전략적이고 냉철했다. 대형 사고를 친 게이치가 챔피언 누르마고메도프까지 잡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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