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 "파수꾼 이후 또 청년 이야기 도전한 이유는.."

이서현 기자 2020. 4. 2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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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현 감독.
영화 ‘사냥의 시간’의 윤성현 감독은 당초 지난달 첫 주에 인터뷰하기로 했다.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주목받은 신인 감독이던 그는 9년 만에 내놓은 이 영화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스페셜 갈라 섹션에 다녀온 뒤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 2월 말 언론 배급 시사회 직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폭증했고 개봉은 전면 보류됐다. 이후 해외 세일즈사와 배급사의 법정 공방 끝에 이 영화는 23일 넷플릭스로 세계 190개국에서 동시 공개됐다.

27일 화상인터뷰로 만난 윤 감독은 “어떤 분들은 저에게 정신병 안 걸리고 잘 버틴다 하더라”며 웃었다. “제가 원래 컵에 물이 절반만 있어도 ‘반이나 있네’ 하는 성격이에요. 30년 뒤에 돌아보면 인생에서 큰 자양분이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겠죠.”

그를 2011년 ‘최고의 신인 감독’ 자리에 올린 파수꾼은 사춘기 남학생들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파수꾼이 인물의 감정 변화와 내러티브에 집중했다면 사냥의 시간은 영화라는 장르가 가진 또 다른 매력, 사운드와 비주얼에 초점을 맞췄다.

“젊은 세대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한국영화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에요. 소설도 아이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파리대왕’ 같은. 투철한 철학이 있는 건 아닌데 청년세대의 삶과 고민에 관심을 갖다 보니 두 번째 영화도 자연스럽게 청년 이야기로 만들게 됐네요.”

‘사냥의 시간’ 포스터 © 뉴스1

시점과 장소가 불분명한 가까운 미래, 사회시스템이 무너지고 부랑자와 시위대가 넘쳐나는 도시에서 갓 출소한 준석(이제훈)과 친구들이 ‘미래를 위해’ 카지노를 터는 한탕을 기획한다. 작전이 손쉽게 성공한 것 같은 그때 정체불명의 존재 한(박해수)이 이들을 쫓기 시작하면서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2016년 시나리오를 쓸 때 한국사회를 지옥에 빗댄 말들이 나왔어요. 청년의 사회적 박탈감, 지옥 같은 세상에서의 탈출을 소재로 한 장르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젊은이들이 희생돼야 하는 사회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려 했어요.”

그가 상상한 지옥도는 영화에서 시청각적으로는 제대로 구현됐다. 실제 유럽이나 남미의 슬럼화한 도시 이미지를 빌려와 무너진 콘크리트와 그래피티(낙서)로 뒤덮인 삭막한 도시를 만들어냈고 강렬한 붉은색 조명으로 불안과 공포를 더했다고 한다. 스산한 배경을 두고 펼쳐지는 추격전과 긴장감 넘치는 음악은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했더라면…’이라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파수꾼에서 좋은 연기를 펼친 배우 이제훈과 박정민은 이번 작품에서 다시 만났다. 최우식 안재홍 박해수 등 최근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배우도 함께했다. “최우식 배우는 동물적이고 직관적으로 연기하는데, 굉장히 영민해요. 안재홍 배우는 연기의 폭이 굉장히 넓어서 테이크마다 다른 연기를 펼치는 배우고요. 미스터리한 인물 한을 배우의 표정에서 드러나게 하고 싶었는데, 박해수 배우는 캐릭터가 살아왔을 삶을 얼굴에 담아내서 첫 촬영 때 놀라고 감격했던 기억이 납니다.”

윤 감독은 “박수 받는다고 감동하는 성격이 아닌데, 배우들과 함께한 베를린영화제에서 관객 1600명으로부터 박수를 받았을 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했다.

“‘베를린영화제 관객은 예의상 박수 안친다’ ‘영화가 재미없으면 중간에 나간다’는 말을 숱하게 들어 공포에 질려서 갔거든요. 배우들 앞에서 관객이 나가고 박수도 못 받으면 악몽 같은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격한) 배우들이 눈물을 흘리니 감정이 묘하더라고요. 영화를 처음 만들 때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는데 현지 관객이 그걸 조금이라도 알아주셨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어요.”

기대가 커서였을까. 넷플릭스 공개 이후 국내 관객의 평은 엇갈린다.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음악이 있음에도 빈약한 서사는 아쉽다는 관람평이 송곳으로 꽂힐 법도 하다.

“파수꾼과 달리 사냥의 시간은 서사보다는 영화의 시청각적인 본질에 충실한 작품으로 만들자는 목표로 시도했어요. 그러다 보니 내러티브나 반전을 기대하는 국내 관객에게는 아쉬움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영화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이 아이들이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에서 순간순간 즐기신다면 그것만으로도 바랄게 없어요.”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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