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처럼 쌈박할 수 없다면? 오직 무대를 지킬 것
'시카고' '고스트' 등서 종횡무진 "환갑 넘어서도 무대 설 거예요"
인기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12년 동안 주인공 도나 역을 맡아 모든 회차를 빠지지 않고 섰다. 지난해 12월 8일 공연이 1000회째 출연이었다. 겹치기 출연을 한 적도 없다. 그것이 관객에 대한 예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러브콜을 받아도 "'부부의 세계' 김희애처럼 쌈박하게 할 수 없다면? 오로지 무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뮤지컬 배우 최정원(51)이 트레이드마크인 '토끼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서울의 한 공연장에서 신나게 '댄싱 퀸'을 부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터졌고 공연은 멈췄다. 뮤지컬 전선에 뛰어든 지 30년 만에 '백수'가 됐다.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도 관객이 없다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관객의 사랑만이 내 무대가 갈구하는 목표거든요."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했다. 역할은 '아가씨 6번'. 두 시간 동안 주어진 대사는 "가자, 아들레이드!" 한 마디뿐이었다. 일곱 글자를 수천 번 연습했다. 이 배역 하나로 팬클럽까지 몰고 다니며 인기를 끌었다. 뮤지컬 '시카고'에도 18년 동안 빠짐없이 출연,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가 됐다. '맘마미아!'를 연출한 폴 개링턴은 "수많은 도나를 만났지만 절정은 최정원"이라고 극찬했다.
빛나는 이력 뒤엔 공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받쳐준 친정엄마가 있다. 서울 안암동 산동네에 살며 아이스링크 건설 노동자들을 위해 함바집(건설 현장 식당)을 하던 엄마를 도와 그는 밥을 날랐다. 엄마를 웃게 해주려고 심수봉과 윤시내를 흉내 내 노래를 하면 엄마는 "진짜 잘한다!"며 그를 안아줬다. 뮤지컬 '고스트'를 할 때다. 관객들은 웃느라 빵빵 터지는데 객석의 엄마는 딸이 안쓰러워 내내 울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중간 휴식. "화장실에 숨어서 '최정원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대요."
1999년 딸 수아를 낳을 때 그는 수중분만을 했다. 따뜻한 물 안에서 머리를 쏙 내민 딸과 눈이 마주쳤을 때 '경이로움'이란 단어의 뜻을 절감했다. 수아가 중2 때 첫 생리를 했다. 가족들 다 모여 분만 당시 영상을 보는데 수아가 엉엉 울면서 외할머니를 껴안았다. "모두가 자기한테 집중하는데 할머니는 엄마만 보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라는 거예요."
2000년부터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1년에 한두 편은 쉬지 않고 했다. 후배 아이비는 "연습실에 늘 가장 먼저 나와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사람은 최정원"이라고 했다. "좋으니까. 거울 앞에 앉는 순간 누구의 엄마·아내에서 벗어나 오늘은 도나, 내일은 벨마가 될 수 있잖아요."
연습을 많이 하는 건 "오래오래 하기 위해서"다. "오전 7시에 일어나 물 500㏄를 마시고 유산균을 먹고 일주일에 두 번 수영하고 날마다 만 보를 걷고 하루에 한 권 오디오북을 들어요. 최선을 다하는 오늘이 쌓여 10년 뒤 예순한 살이 됐을 때 '이렇게 오래 하실 줄 몰랐어요!'란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난 비욘세도 부럽지 않아요."
올 초 대학 등록금을 못 내는 연극인 자녀들을 위해 1000만원을 기부했다.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도 멋있지만 언젠가 '최정원재단'을 만들어 남을 돕는 어시스트도 되는 게 꿈"이라서다. "모든 게 멈춘 요즘이지만, 저 자신은 스톱하지 않고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더 찾아내 알아가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바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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