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유발자는 지선우" 국민 욕받이 된 박해준의 엉뚱한 도발

고경석 2020. 4. 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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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준. JTBC 제공

◇분노유발 캐릭터가 지선우?... 이태오와 딴판인 허당 캐릭터

“‘부부의 세계’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분노유발 캐릭터’요? 저는 뭐 기왕 이렇게 된거, 욕받이가 될… 각오하고, 예, 지선우를 뽑겠습니다. 분노를 굉장히 유발하는, 이태오를 굉장히 괴롭히는… (김희애 폭소) 그런 인물로서 지선우를 고발합니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뻔뻔한 외도남 이태오를 연기해 시청자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박해준(44ㆍ본명 박상우)이 미세한 부산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갑자기 도발했다. 24일 온라인으로 열린 ‘부부의 세계’ 기자간담회에서였다. 누워서 뱉은 침을 스스로 맞고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그는 “예, 예예, 꿈에도 몰랐죠? 예, 예예, 예…”라며 진땀을 흘렸다. 이어지는 후회의 한마디. “이거 편집되는 거죠? (사회자: 온라인 생중계입니다만) 아, 예예, (안절부절못하며) 큰 실수를 했네요.”

2년간 이어진 외도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사랑에 빠진 게 죄야?”라고 외치고, 집안의 가장이자 자신이 하는 사업의 후원자인 아내 지선우를 내동댕이치던 이태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박해준은 극중 인물과 딴판인 허당 캐릭터로 드라마 못지 않은 반전을 보여줬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를 연기하는 박해준. JTBC 제공

지선우를 연기한 김희애가 급하게 수습에 나섰다. “사람들이 이태오 보고 욕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배우들이 극 중 캐릭터와 자신을 떨어트려놓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마치 자신이 욕먹는 것처럼 주눅들고 속상해 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혹시나 박해준씨가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해준씨가 지인한테 ‘네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전 국민의 욕받이가 돼 봐라’라는 내용의 카톡을 받았대요. 그래서 새겨 듣겠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감명을 받았어요. 욕받이가 되기 위해서 앞뒤 안 가리고 온몸에 폭탄을 싣고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태오 역, 너무 하고 싶은데 잘 못할 거 같아 도망가고 싶었죠”

박해준에게 ‘부부의 세계’는 13년 연기 인생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주연급으로 출연한 첫 작품은 아니지만 대중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작품은 없었다. 영화 ‘독전’의 마약조직 간부 박선창이 드라마 ‘미생’의 멀끔한 천관웅 과장이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선균 친구 겸덕 스님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는 지난해 남성지 아레나와의 인터뷰에서 “관객이 내 연기를 보고 배우 박해준이라고 인지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 하고 찾아보기를 원했고 그래서 늘 새로운 배우로 생각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박해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2007년 연극 무대로 데뷔했다. 주로 악역이 많았지만 선한 캐릭터도 적지 않았다. 말끔한 외모를 갖고 있지만 배우 자체의 인상이 뚜렷하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지만 출연 작품 수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는 스스로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드라마 '미생'의 박해준. tvN 제공

박해준은 지난달 드라마 방송을 앞두고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처음 출연 제의를 받고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그는 “원작을 보고 괜히 봤다 싶었다”면서 ‘너무’를 연신 반복하며 자신이 느꼈던 부담감을 강조했다. “원작이 너무 훌륭하고 이걸 잘해내면 너무너무 좋겠는데 너무 자신이 없고 너무 두려웠어요. 너무 하고 싶은데 내 능력이 모자랄 것 같은 생각이 너무 들어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생 경험할 수 있을까 하는 감정을 만나게 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희애는 그를 두고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분인지 몰랐다”며 “이 사람은 어떤 배우일까 궁금해서 영화 ‘독전’ 등 출연작을 찾아 봤는데 어머어마하더라. 앞으로 또 함께 연기하고 싶을 정도로 연기를 끌어내준다. 전환이 빨라서 (촬영을 마치면) 금세 장난치기도 하는데 배신감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괴물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영화 '독전'의 박해준

◇“국민 욕받이 됐지만 많은 관심에 감사”

‘부부의 세계’는 최근 전국 시청률 20%를 돌파했고 화제성 면에선 방송 첫 주부터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만큼 박해준을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는 “얼떨떨하다”며 “많이들 좋아해주신다. 축하 전화도 많이 해주시는데 도대체 뭘 축하해주신다는 건지.(웃음) 워낙 욕을 많이 먹어서. 그럴 줄 예상하긴 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실 줄은 몰라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분노를 독차지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만큼 이태오라는 인물에는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는 “처음 방송부터 흔들릴 거 같아서 아예 댓글을 안 봤다”고 말했다.

10년차 유부남으로서 이태오를 보는 그의 시선도 다른 시청자들과 다르지 않다. “대본에 있는 것이어서 하긴 하는데 어떤 순간은 ‘너무하잖아,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하고 생각하기도 하죠. 촬영이 끝나면 헛헛한 마음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래도 어쨌든 이태오를 변호할 사람은 저밖에 없으니 ‘이 사람 참 힘들게 산다’ 하면서 약간의 동정심도 갖고 있습니다.”

박해준은 최근 들어 영화 ‘독전’ ‘유열의 음악앨범 ‘시동’ 등에서 주로 악인이나 조직폭력배, 불량하거나 비열한 캐릭터를 다수 연기했다. 그는 “작품이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제가 했던 캐릭터들을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 얼핏 보일 때가 많다”며 “제가 대단한 캐릭터를 연구해서 개발하는 놈은 아니어서, 그런 모습이 어우러진 게 힘이 됐을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출연한 박해준. tvN 제공

◇“‘부부의 세계’ 2막 키워드는 ‘그럼 안돼’”

박해준은 ‘부부의 세계’가 부부 간의 솔직한 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방송 전엔 드라마가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며 “부부가 함께 보면서 맥주 한잔하며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면 좋겠다. 또 여럿이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며 솔직히 이야기를 하게 되면 좋은 영향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

16부작 ‘부부의 세계’는 영국 원작 드라마 ‘닥터 포스터’ 시즌1 부분을 마치고 시즌2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한창 펼쳐 보이고 있다. 25일 10부가 방송된다. 시즌1에 대한 키워드를 ‘설마’라고 제시했던 그는 후반부에 대해 ‘그럼 안돼’라고 말했다.

박해준은 ‘부부의 세계’에서 시청자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를 연기한 탓에 다음 작품이 고민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여기서 풀어놓은 모습들이 너무 많아서, 표현한 감정이 너무 많아서 다음에는 진짜 뭘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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