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몰락한 판타지 제국, 우린 어떻게 기억하는가

배문규 기자

극장국가 대한제국

김기란 지음

현실문화 | 352쪽 | 2만2000원

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자로 조선에 온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잭 런던이 찍은 독립문 사진이다. 상단의 태극기가 눈에 띈다. 현실문화 제공

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자로 조선에 온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잭 런던이 찍은 독립문 사진이다. 상단의 태극기가 눈에 띈다. 현실문화 제공

“스펙터클의 효과를 극대화해 줄 제국의 상징들이 무대 위 오브제처럼 배치된 가운데 고종은 마치 공연의 리허설을 공개하듯 환구단으로 향했다. 공연의 리허설이 그러하듯 고종은 즉위식이라는 본공연에 앞서 공연의 구성 요소가 제대로 그 극적 효과를 끌어내고 있는가를 확인하고자 했을 것이었다. … 스펙터클은 늘 의도했던 그 이상의 효과를 끌어낸다.”

1897년부터 1910년까지 10여년 남짓 존재했던 대한제국은 우리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제국이었다. 치욕스러운 망국의 역사로 기억된다. 하지만 몰락한 제국의 남겨진 기억들은 오늘날까지 현실적 계기가 마련될 때마다 무의식 속 망령처럼 되살아나곤 한다. <명성황후> <덕혜옹주> <미스터 션샤인> 그리고 최근작 <더 킹: 영원의 군주> 등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복고적 향수부터 대체 역사의 욕망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무엇이 대한제국을 문제적으로 만들고, 대중들의 기억 속에 유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명성황후의 국장은 ‘비참’을 지우고
태극기는 자주독립국 신민의 상징
독립문은 자발적 수동성의 장치로
약소국 무력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고종이 연출한 황제 국가 프로젝트

‘덕혜옹주’ ‘미스터 션샤인’ ‘더킹’
영화·드라마로 소환된 망국의 기억
복고적 향수·대체 역사의 욕망까지
오늘날 대중의 유대감은 무엇일까

극장국가 효과, 길항 관계는 여전
과거의 성찰은 무엇 아닌 ‘어떻게’
무책임한 탈역사화에 경계심 주문

[책과 삶]몰락한 판타지 제국, 우린 어떻게 기억하는가

<극장국가 대한제국>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른 고종의 ‘대한제국 만들기 프로젝트’를 살펴보는 책이다. 대한제국 선포는 서구 제국들이 정복자의 야욕을 숨기지 않던 시대, 만국공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세계 질서 속에 편입되어 생존을 도모하려는 전략이었다. 약소국 군주인 고종은 현실 정치의 무력함을 과시적 극적 효과로 넘어서기 위해 유럽 제국에 비견할 만한 ‘제국’의 외양을 갖추는 한편, 황제권을 과시적으로 재현하는 국가 공식 행사를 기획했다. “정치적 ‘상징’을 통해 불안한 정치적 ‘현실’을 극복하려 한” 시도이다.

연극평론가인 저자는 연극학의 언어로 고종이 배우이자 연출가로서 한성이라는 무대에서 수행한 대한제국의 역사를 살펴보는 야심찬 기획을 선보인다. 책에선 고종이 현실적인 정치권력이 아니라 ‘극장국가(theater state)’의 효과를 통해 프로젝트를 성취했다고 설명한다. 미국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제안한 개념인 극장국가는 국가 의례를 통해 국가권력을 실질적으로 유지하는 국가 형태를 의미한다. 극장 안에서 창출되는 극적 효과가 그러하듯, 제국을 재현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환영처럼 제국을 믿게 만드는 것이 극장국가의 효력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그것을 체험하는 관객들의 반응이다. 각종 기념행사와 기념물 등 일련의 퍼포먼스가 어떻게 신민들이 대한제국을 감각적으로 승인하도록 했는지, 책에선 디오라마처럼 100여년 전 대한제국을 펼쳐놓는다.

미국 동양학자 윌리엄 그리피스가 촬영한 1897년 11월 명성황후 국장 사진이다. 대한제국이 치러 낸 첫 번째 국가의례로, 엄숙하고 장엄한 퍼포먼스로 구성됐다. 현실문화 제공

미국 동양학자 윌리엄 그리피스가 촬영한 1897년 11월 명성황후 국장 사진이다. 대한제국이 치러 낸 첫 번째 국가의례로, 엄숙하고 장엄한 퍼포먼스로 구성됐다. 현실문화 제공

무대는 한성. 아관파천 이후 불안한 정국 속에서 고종이 본궁으로 결정한 경운궁의 보수 공사보다 먼저 착수한 것은 1895년 시작된 한성도시개조사업이었다. “제국의 수도를 무대 삼아 고종황제라는 주연배우를 내세워 조선인을 제국의 신민으로 호명하는 극장국가의 ‘국가적 미장센’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경운궁의 대안문이 대한제국의 주요 건물을 연결하는 방사상 도로의 집결 장소가 된다. 동쪽에는 제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환구단이 배치되고, 북서쪽으로는 자주독립국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독립문과 독립관이 자리 잡는다. 광화문 육조거리와 종로 시전거리가 마주쳐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던 혜정교 앞에는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칭경기념비전(오늘날 교보빌딩 앞)이 세워졌다. 영조와 정조가 백성들의 어려움을 직접 듣는 상언(上言)을 받던 철물교 일대에는 탑골공원이 조성된다. 영·정조의 문민정치를 상징하는 장소를 대한제국의 것으로 재맥락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제국의 신민에게 이들 공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고종의 독살 소문에 분노한 신민들이 모인 곳이 경운궁 대한문(대안문) 앞 광장, 칭경기념비전 주변, 탑골공원 등 세 곳이었다. 3·1운동에 놀란 일제는 경운궁 앞 광장에 도로와 로터리를 설치해 기능을 잃게 했고, 종로 중심의 도시 구조를 경성부청(서울시청) 중심의 격자형으로 바꿨으며, 광화문사거리 정동 쪽을 막고 있던 황토현고개를 밀어내고 태평로(세종대로)를 뚫었다. 바뀐 도시의 축을 따라 일제의 공간이 배치된다. 여러모로 상징적인 전개다.

근대서화가 해강 김규진이 1905년 덕수궁 중명전에서 촬영한 고종황제의 어사진이다. 고종은 사진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현실문화 제공

근대서화가 해강 김규진이 1905년 덕수궁 중명전에서 촬영한 고종황제의 어사진이다. 고종은 사진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현실문화 제공

고종은 신민들을 관객으로 호명한 극장국가의 연출가이자 배우였다.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고종의 황제 즉위식 ‘리허설’과 지연된 명성황후의 국장이다. 황제 즉위식에 앞선 1897년 10월11일 오후 2시, 고종의 어가는 경운궁을 나서 환구단으로 향했다. 고종은 황제에게만 허락되던 금색의 황룡포를 입었고, 어가 역시 황금색으로 채색되었다. 앞에는 근대국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세워졌다. 시위대 군사들의 총 끝에는 창이 꽂혀 있었는데 그것이 석양빛을 받아 장엄하게 빛났다고 당시 신문기사는 전한다. 원래 황제 즉위식은 전통적 방식에 따라 새벽 2~4시경 시작되어야 했다. “즉위식 전날의 대낮, 고종이 점검을 핑계로 직접 참여하는 장엄한 어가 행렬을 신민들 앞에 노출시킨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제국의 신민으로 호명된 조선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그들로부터 대한제국의 승인을 공개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당시 신문에 기록된, 자발적으로 태극기를 걸어 달고 색등을 내다 거는 신민들의 행동은 11일 고종 어가 행렬의 효과를 증명한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고종은 민 왕후의 국장을 가장 먼저 지시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으로 체험했듯이 “국가 의례는 참여자들이 집단체험을 공유하고 기억하는 데 기여하는 한편, 국민이나 민족과 같은 집단적 동질성의 역사를 구성하는 데 일조”한다. 고종의 정치적 속셈은 조선을 황제국으로 선포한 뒤 국장을 치러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명성황후로 격상된 민 왕후의 장례식은 상여를 따라간 수행원이 4800명, 서양 외교관이 60명, 병사와 노동꾼이 9000명에 달하는 성대한 장례식이었다고 한다. 당시 장례식의 발인 행렬을 그린 ‘명성황후발인반차도’는 모두 78면으로, 정조의 화성 행차 반차도 63면을 뛰어넘는다. 시선이 머무는 지점은 행렬 뒤에서 펄럭이는 태극기이다. “대한제국의 국기가 국장 행렬 바로 뒤에 배치됨으로써, 조선의 비참한 국모라는 기억은 의도적으로 망각되고, 민 왕후는 대한제국의 황후로 기억될 수 있었다.”

당시 행렬에는 악령을 혼동하게 만들기 위해 관을 두 개 사용했다고 한다. “두 개의 관, 그중 어느 것이 황후의 유체를 담고 있는 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명성황후의 국장은 신민들에게 매우 특별한 것으로 기억될 수 있다. … 두 개의 관(신체)을 허락받은 명성황후 역시 인간적 육체는 소멸했으나 정치적으로는 불멸의 국모라는 신화로 기억될 수 있었다.”

책에선 당대의 정치적 기획을 다양한 연극적 요소로 설명한다. 직접 접할 수 없는 왕의 신체를 시각적으로 재현해 왕의 권력을 보여주는 ‘어진’은 ‘어사진’으로 대체되어 유통되면서 충군애국의 정서를 환기하게 된다. 태극기는 대한제국을 표상하는 대표적 오브제로서 자주독립의 상징이 된다. 독립문은 신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능동적 수동성’이라는 극장국가의 메커니즘을 잘 보여준다. 황실의 미담은 자애로운 군주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민영환의 극적인 자결은 신민들의 정서적 공명을 일으킨다.

이러한 연극은 실제 무대에서 끝장났다. 저자가 주목하는 상징은 1907년 망국의 길로 접어든 대한제국의 암담한 현실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드러낸 이인직의 <은세계>다. “원각사에서 공연된 <은세계>가 그려낸 것은 현실과 닮은 허구가 아니라, 극장국가의 판타지를 대체한 실제 대한제국의 현실이었다. … 공연이 대한제국의 현실을 무대 위로 소환했을 때, 대한제국을 지탱하던 극장국가의 효과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나면 무대 위 모든 것이 사라지듯, 대한제국의 몰락과 함께 극장국가의 효력은 사라졌다.

저자는 “극장국가를 작동시킨 대한제국의 집단기억은 지금, 여기의 문화적 기억과 여전한 길항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이유다. “과거를 무책임하게 탈역사화하는 일이 없도록 역사의식의 주체성을 성찰하는 것, 이 글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궁극적 논점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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