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은 의·거룩·선·사랑.. 회복할 때 삶에 변화

2020. 4. 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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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재 목사의 형상회복 <1> 형상회복으로의 초청
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가 지난 2월 아르헨티나 시나이산교회에서 열린 성경적 형상회복 세미나에서 현지 목회자들에게 성령충만을 통한 내면의 치유와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신앙한다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실로 엄청난 대축복의 사건이다. 영적으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세상에 속해 세상의 가치로 살던 자가 이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져 하나님의 진리로 살게 된다. 내가 주인이 돼 나를 위해 살던 자가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큰 은총의 삶을 산다.

삶의 여러 영역에서 내가 추구하던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려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옛 본성을 보고 절망하게 된다. 이는 모든 죄의 근원이며 삶의 환경과 여러 요인으로 인해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형상 회복 최대의 복병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해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다.

그런데 아담의 죄로 우리는 그 형상을 잃어버렸다. 다스리고 누리며 살아야 할 우리가 오히려 우상(롬 1:23)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된 삶을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칭의적인 회복의 믿음은 소유했으나 우리 삶에서 행함으로 얻어지는 열매 맺음은 오직 자기 부인으로 가능하다.(마 16:24)

성령 체험을 하고 여러 가지 은사가 임하고 쏟아지는 은혜로 세상을 소유한 듯 부족함이 없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날도 기도를 통해 만나는 주님이 너무 좋아 밤을 새워 기도했는데 주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셨다.

강대상 앞으로 두꺼운 유리 길이 넓게 펼쳐지고 주님은 어쩐 일인지 무거운 쇠망치로 그 두꺼운 유리 길을 사정없이 내리치셨다. 그 유리 길은 금방 산산조각이 났고 주님은 맨발로 그 유리 길 위를 걸어가셨다. 유리 조각에 찔리신 주님의 발은 금방 피투성이가 됐다. 나는 어찌할 바 몰라 울고만 있었다.

그때 피범벅이 된 발걸음을 멈추시고 돌아서서 주님은 낮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나의 도구로 사용하기를 원한단다. 하지만 너를 그냥 사용할 수는 없고 자아를 깨뜨려 사용해야 한다. 자아가 유리처럼 이렇게 깨어져선 영혼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기 때문에 고운 가루가 돼야 한단다.”

그리고 밀가루처럼 고운 가루가 된 유리 길을 보이시고 그 길을 걸어가셨다. 고운 유릿가루가 먼지처럼 날리고 주님의 발은 사뿐사뿐 구름 위를 걸으시듯 가벼워 보였다.

다시 주님은 뒤돌아서 허리를 굽혀 엄지와 검지로 유릿가루를 비비시며 “이렇게 가루가 돼야 하는데 네가 할 수 있겠느냐. 이 길은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희생의 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길의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무조건 “네, 주님 제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눈물로 대답했다.

그 후로 본격적인 주님의 간섭이 시작되었고 많은 사건 속에서 관점과 가치관이 바뀌고 변화돼 갔다. 나(자아)는 죽어야 한다. 죽음 없는 헌신은 나를 위한 것이고 나를 위한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인생의 주인이 돼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았다면 신앙은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존재로 사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쉼 없이 내가 부인돼야 한다.

미약하고 부족한 종을 하나님께서는 “내 사랑하는 자라, 내 사랑하는 자라, 내 사랑하는 자라, 내 사랑하는 자라”며 네 번의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강하게 만나 주셨다. 그리고 다메섹에서 변화된 바울같이 제2의 바울을 찾아 훈련하실 목적으로 다메섹교회를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교회로 세우시고 성도들의 연합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빚어 가신다.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형상 회복 집회를 통해 많은 자가 영적·육적 질병이 치료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있어 감사하다. 국내 집회뿐만 아니라 아시아, 미국, 남미를 비롯한 해외까지 집회를 열어 주시고 ‘형상 회복’이라는 책으로, 기독교방송으로 형상 회복의 복음을 전하며 많은 영혼을 회복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의 형상은 의·거룩·선·사랑의 하나님의 속성을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될 때 비로소 내면의 변화와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창조의 목적대로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며 아름다운 신부로 준비될 것이다.


정광재 다메섹교회 목사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교도소서 기도 중에 음성… “제2의 바울 되라”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나는 청송교도소에서 보호감호로 7년, 실형으로 3년 6개월을 복역했다. 교도소, 고아원, 형제복지원 단체생활까지 포함하면 총 22년을 살았다.

그러던 중인 1995년 6월 19일 하나님을 만났다. 당시 교도소는 오후 8시가 되면 취침을 했다. 교도소 안에서는 불을 끄고 잘 수 없다. 24시간 감시를 하므로 항상 불을 켜고 잔다.

그날 저녁은 무더웠다. 방에는 선풍기 한 대 없고 바람 한 점 없었다. 8명의 수형자가 나란히 누웠는데 내 옆에 성경책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힘에 이끌려 무릎을 꿇고 머리는 베개를 향해 엎드렸다. 그리고 기도가 5분 정도 터져 나왔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예수님, 도와주세요.” 호흡이 계속 가빠졌고 천식 환자처럼 헉헉거리며 성령에 이끌렸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예수님, 도와주세요.” “성령님, 인도해 주세요.” 이렇게 15분 정도 계속 성령님을 찾았다.

그러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가 흘렀다. 비슷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몇만 볼트가 흐르는 전기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너무 강력했다. 입에서는 여러 가지 방언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자’라는 음성이 네 번씩이나 들려왔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계속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다. “내가 사랑하는 자라.” 네 번의 음성이 들렸다. 아주 온유한 음성이었다. 세상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음성을 지닌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눈앞에 환상이 펼쳐지는데 영사기가 돌아가듯이 너무나 선명한 장면이 영화처럼 보였다. 옛날에 내가 지었던 죄도 하나하나 비쳤다. 초등학교 때 노점에서 떡볶이 2개 값만 내고 4개를 집어먹었을 때 일이었다. 주인아저씨가 엄한 얼굴로 말했다. “너, 다 먹었잖아.” “무슨 소리세요. 아직 한 개 남았어요.” 한 개를 더 집어 먹고 도망쳤는데, 그 일까지 보여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죄를 일일이 따지기보다 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 보여주셨던 것 같다.

이때 나는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임을 인정했다. 눈물 콧물이 뒤범벅돼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명령하시면 달려가면서 전하겠습니다”라고 서원 기도를 했다. 그 후 하루 3시간 이상 방언 기도를 하면서 울었다.

새벽기도 시간이 되면 교도관이 조용히 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참다 못한 교도관이 비상벨을 눌러 20여명의 경비교도대가 수갑과 끈을 가지고 나를 묶으러 왔다. 새벽부터 난동을 부리는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강력하게 체험하는 중이었다. 당시 당직 계장도 함께 왔는데 마침 그는 신우회 회장이었다. 당직 계장이 옆에 있던 수형자에게 “저 사람 혹시 새벽기도 했느냐”고 물었다. 수형자가 “네, 새벽부터 기도한다면서 저러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당직 계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내버려 둬라. 저 친구 기도를 하다가 방언을 받은 것이다.” 교도대는 모두 철수했다. 그렇게 당직 계장이 지켜줌으로써 아침저녁으로 하나님을 마음껏 만났다. 이 세상에서 받아보지 못한 참 평안이 임했다. 그 평안은 형언할 수가 없다.

당시 8년이란 실형이 남아있었다. 내 나이 25살 때 일이다. 정말 암담하고 캄캄한 적막이 흐르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임했다. 그때부터 바늘구멍 같은 곳에서 빛이 임하기 시작했다.

성령님의 음성은 인자하시고 온유했다. 지금도 내 마음과 귀에 쟁쟁하게 들린다. 그 여운은 지금도 남아 있다. “다메섹에서 변화된 바울처럼 제2의 바울이 되어라. 네가 나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 후로 내 삶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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