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을 소비한다

김광호 기획에디터 겸 문화부장

과거 ‘세계관’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이 기묘한 세상 속에서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궁구하기 위해선 필연적 질문이었다. 그것은 백과사전의 ‘철학·사회학적 세계관’을 의미했다. 바지 뒷주머니에 꽂힌 타임지처럼 한 세대의 고급스러운 유행과도 같았다. 이 세계의 진로와 같은 거대담론과 이어져야 했기에 하나의 구호이기도 했다.

[편집국에서]‘세계관’을 소비한다

부쩍 ‘세계관’이란 단어가 주변을 헤집는다. 내 기억 속 코드와는 다른 이질감에 낯섦마저 느낀다. 마치 편견을 비추는 거울 같아서 가시에 손톱 밑을 찔린 것처럼 놀란다.

“영화나 연극, 스핀오프 드라마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지금처럼 <킹덤>의 세계관을 어느 정도 뻗어나가다가, 갑자기 훅 시대를 점프해도 재밌지 않을까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김은희 작가 인터뷰다. 드라마와 세계관이라니…. 이 좀비서사극을 홀린 듯 정주행하면서 한 번도 떠올려보지 못한 단어였다. 즉자적으로 소비하는 대중문화 상품은 세계관과는 뭔가 어색한 줄긋기였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한류의 상징처럼 된 방탄소년단(BTS)은 아예 ‘세계관’과 분리조차 어렵다. 세계관은 그들의 가장 강력한 마케팅 상품이자 무기다. ‘BTS의 세계관을 다룬 웹툰’이 지난해 7개국에서 연재됐으며, 출판 매체들은 ‘BTS 세계관을 알 수 있는 책’으로 <데미안>과 <융의 영혼의 지도> 등 6권을 꼽기도 했다. 소속사 대표는 “BTS의 세계관을 담은 드라마”를 올해 공개하겠다고 예고해 놓고 있다.

세계관을 소비하는 시대다. 그 단어는 더 이상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소비의 대상이며 주체다. <터미네이터>는 제임스 캐머런의 세계관이 구현된 무대이며, 일본 애니메이션들엔 많은 거장들의 독자적 세계가 지어져 있다. 세계관은 하나의 무대이면서 창조물이다. 대중들은 실재하지 않는 그 세계를 소비하며 열광한다.

이 새로운 ‘세계’를 더듬다보면 ‘설정’이란 단어와 마주하게 된다. 실재하지 않는 세계는 ‘나만의 세계’를 ‘구축’함을 의미한다. 곧 ‘시나리오를 이루는 시간적·공간적·사상적 배경’(게임적 세계관)을 설정하는 일이다. 세계는 이처럼 나를 통해 설정되고 구축된다. 대중문화 세계관의 기원에는 ‘반지의 세계관’(판타지 문학)이 있으며 ‘배그(배틀 그라운드)의 세계관’이 존재한다.

실재하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것과 실재하지 않는 세상을 통해 실존하는 세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두 세계관의 차이다.

새로운 세계관의 소비는 더 이상 지금 세상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작가 옌롄커는 이를 “진실하지 않은 진실과 존재하지 않는 존재, 가능하지 않은 가능”이라고 정의한다. 구치소 세면대에서 죄수가 익사하는 황당한 초현실의 현실화가 그러하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이 무력한 세계 또한 ‘현대문명’의 세계관 속에선 현실이 아니었을 터다. 이처럼 ‘존재하지 않는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지금 인류가 목도하는 진실이다. 그 점에서 대중문화에서 중요하게 소비되는 가상의 세계관 또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킹덤>이 그린 ‘역병’ 설정과 ‘코로나19 세계’의 놀라운 유사성을 생각하면 이는 실감으로 다가온다. 그 모든 설정이 지난해 방영된 ‘시즌1’부터임을 감안하면 <킹덤>은 거의 예언적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세계관의 소비는 기술의 산물이다. 기술의 역사는 끊임없이 가상현실의 지평을 넓혔고, 그 방향 또한 현실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었다. 결코 가상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다. 만명이 있으면 만개의 세계관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이전 세계관의 탐지선 밖 인간의 부조리한 진실들을 예언한다.

코로나19는 ‘고립’과 ‘연대’의 미래 세계를 성큼 우리 앞으로 데려왔다. 그 세계가 인류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참혹할 수 있음을 ‘현실 증명’으로 보여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관’은 어떤 모습을 그려낼까. 코로나 이후 세계를 이해하고 만들어가는 키워드일 것이다. 모두가 각자 세계의 ‘구축’이 가능한 새 세계는 인간에게 또 다른 자유와 독자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어느 것도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지금 시점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이 세계는 알던 것보다 더욱 내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며, 안전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세계관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 말이다.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현실’인 코로나19의 세계가 전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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