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기차 시대도 늦추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코로나 사태로 유례없는 불황에 진입하면서다. 전기차 생태계 중심으로 환경규제를 강화하던 각국 정부가 다시 기업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할 수 있어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 환경 규제가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유럽자동차제조업체협회(ACEA), 유럽자동차부품공업협회, 유럽딜러협회 등 3개 단체는 유럽연합(EU)에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했다.

EU는 올해부터 자동차 이산화탄소(CO2) 배출 허용량을 기존 130g/km에서 95g/km으로 낮췄다. 허용량을 초과할 경우 내년부터 1대당 1g/km마다 95유로의 벌금을 물린다. 2023년에는 62g/km, 2050년 10g/km으로 지속 강화된다.

EU 규제를 충족하려면 전기차 전환이 필수적이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로 공장이 멈추며 대량 실업이 발생했고, 소비자들의 소비력도 떨어진 탓이다. 유럽 내 자동차 공장들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부분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이동제한으로 차량 판매도 멈췄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로 수백만명의 실직자 발생이 우려되자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는 1000억 유로(약 132조원) 규모의 실업지원대책을 내놨다.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면 국가별로 정부가 임금의 60~80%를 보전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EU가 자동차 업계에 전기차 전환을 강제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우선 제조사들이 추가적인 기술 개발과 시설 변경을 감당할 체력을 갖춰야 한다. 유동성 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전기차 전환은 완성차 업계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전기차 전환이 자동차 업계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가격이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비싸 수요가 제한적이라는 문제도 있다.

일본자동차부품공업협회에 따르면 내연기관 자동차는 약 3만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전기차는 약 1만9000개에 그쳐 필요 부품이 내연기관 자동차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의 공정과 일자리 감소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전기차는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높은 탓에 비슷한 성능의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차값이 비싸다. 때문에 각국 정부는 전기차 구매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구매를 장려했지만, 실직 등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줄어든다면 전기차 수요는 더욱 감소할 전망이다.


미국은 이미 배출가스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미 교통부는 이달 1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달성해야 할 연비 수준을 2025년까지 갤런당 54.5마일(23.2km/L)에서 2026년까지 갤런당 40.4마일(17.2km/L)로 낮췄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걸었던 공약에 따른 조치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자동차 회사라면 내 제안으로 인해 더 안전한 차를 만들면서 평균 자동차 가격을 3500달러 이상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 가정은 이제 더 안전하고 저렴하며 환경 친화적인 자동차를 살 것이다. 고물차는 버려라"라고 말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유지비용이 저렴해진 점도 전기차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국제유가는 올해 초 배럴당 60달러선에서 최근 2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국내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1월 첫째주 L당 1558.7원에서 4월 둘째주 L당 1357.3원으로 하락했다. 휘발유 가격이 저렴해지면 그만큼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의 친환경차를 선택할 유인이 줄어들게 된다.

주민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세계 자동차 수요 둔화에 따라 유럽 내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완화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며 "독일 자동차 협회 대변인도 상황이 심각해지면 배출규제 완화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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