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장비 쟁탈전서 맹활약하는 이스라엘 모사드

이스라엘 정부가 유대교 축제인 '유월절'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전국적인 이동제한령을 발포한 여파로 지난 8일 텔아비브를 통과하는 고속도로가 텅 비어 있다.  AP=연합뉴스

이달 초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야코프 리츠만 이스라엘 보건부 장관의 밀접 접촉자 명단이 공개됐을 때 한 사람의 고위공직자 이름이 주목을 받았다. 다름 아닌 요시 코헨 모사드 국장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국익 수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해외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첩보작전을 총괄하는 정보기관장이 도대체 왜 보건장관과 같은 공간에 있었던 걸까. 세간의 호기심은 증폭됐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모사드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해외에서 의료장비와 제조기술을 확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이스라엘 의료·정보 당국자들 말을 빌려 전했다. 지난달 말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에 이어 해외 유력지가 잇달아 모사드의 의료장비 쟁탈전 관여설을 보도하고 나선 것이다.

NYT에 따르면 모사드가 해외에서 확보한 첫 번째 물량은 지난달 19일 특별기편으로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당시 특별기에는 10만개의 코로나19 진단키트가 실려 있었다고 이스라엘 총리실 관계자가 전했다. 두 번째 화물에는 더 많은 진단키트와 150만개의 수술용 마스크, 수만개의 N95 마스크, 긴급요원용 보호복, 보호 고글, 약 등이 실려 있었다. 특히 모사드는 이스라엘에서 코로나19 관련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해외 기술 확보에도 크게 기여했으며, 인공호흡기 등 생산 노하우를 들여오기도 했다. 이스라엘 고위 안보당국자는 모사드가 확보한 전문기술을 활용해 한 달에 2500만개의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지 당국자들 말을 종합하면, 코헨 국장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이란이 가파른 확산세에 대응하느라 더는 이스라엘의 현존 안보위협이 안 된다고 보고 보건 긴급사태에 대응하는 쪽으로 모사드 활동의 무게중심을 일찌감치 옮겼다. 지난 2월 초 이스라엘의 최대 병원 시설인 쉐바 메디컬 센터의 이츠하크 크라이스 이사장은 사적 모임에서 코헨 국장을 만나 인공호흡기 등 장비 확보가 시급하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그때 이미 코헨 국장은 모사드가 이스라엘 보건 체계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평가하고 있었고 필요한 의료장비를 찾기 위해 모사드의 국제 네트워크를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이스라엘 전역의 의료장비 분배 문제를 다루기 위한 지휘통제센터가 모사드, 국방부 구매부서, 첨단 스파이장비 개발 등을 담당하는 군 정보당국의 참여 속에 지난달 초 설치됐다. 크라이스 이사장은 필수 의료장비와 전문지식을 해외에서 입수하는 데 모사드가 중추적 역할을 했다면서 “(미국 뉴욕의) 마운트 시나이 병원이 CIA(미 중앙정보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셰바 병원이 모사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이니까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모사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과정에 개입했는지, 어느 나라와 접촉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밝히기를 꺼렸다. 다만 모사드는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해 의료장비 쟁탈전에 뛰어들었다고 NYT는 전했다. 특히 모사드는 의료장비 부족 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언젠가는 수입이 거절될 것이라고 판단, 정보기관의 영향력이 큰 비민주국가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정보기관 사이에 쌓여온 신뢰관계와 친밀도 등을 활용해 해당 국가의 통치자를 설득하기가 더욱 쉬웠다는 설명이다. 일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코헨 국장이 상대국 정보기관장을 직접 상대하거나 해당국 통치자와 접촉하기도 했다. 한 소식통은 NYT에 “일부(의료장비)는 중국에서 왔으며, 이스라엘 국방부가 무기를 구입하는 데 쓰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의료장비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모사드의 코로나19 대응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공장에서 물건을 실으려다 독일 정부에 제지당하는 일도 있었고, 인도에서는 세정제 통관 절차가 지체돼 수입을 포기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모사드의 발 빠른 대처는 그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보건당국과 비교되면서 이스라엘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부기관인 모사드의 명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한국시간으로 13일 오후 2시 현재 이스라엘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만1145명에 달하지만, 누적 사망자는 103명으로 비교적 사태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