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마스크 세계대전'
[경향신문] ㆍ미국·유럽 ‘착용’ 선회, 품귀 현상 심화에 쟁탈전
ㆍ독·프 “미국이 가로챘다”
ㆍ캐나다에 마스크 판 3M에 트럼프 “보복”…양국 갈등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마스크를 둘러싼 각국의 쟁탈전이 한창이다. 전략적 우방이나 동맹국 사이에서도 마스크 ‘가로채기’와 ‘빼돌리기’가 횡행하면서 “현대판 해적질”이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며 비난하던 서구 주요국의 구매업자들은 중국의 마스크 공장 앞으로 달려가 줄을 섰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까지 동원됐다.
특히 마스크 착용에 대한 문화적 터부가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 당초 지침을 변경해 잇따라 마스크 착용 권고를 하면서 ‘마스크 세계대전’은 가열되고 있다.
폴리티코는 4일(현지시간) 마스크가 미국과 캐나다의 소원한 관계를 더 벌어지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해 캐나다에 대한 의료용 N95 마스크 수출을 중단하라고 3M에 지시한 것이 발단이 됐다. 3M은 “반인도주의”라며 반발했고,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3일 “핵심 물자가 국경을 넘나드는 것을 방해하면 캐나다만큼이나 미국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서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다면 ‘보복’이라 할 만큼 매우 거칠게 대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3M에 매우 실망했다. 그들은 우리 나라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도 했다. 다급해진 캐나다는 서둘러 중국에서 마스크를 수입하기로 하고 미국과는 수출 재개를 위해 계속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일간 타게스슈피겔은 지난 3일 베를린 주정부가 최근 중국 생산공장에 주문한 마스크가 미국에 의해 가로채기당했다고 보도했다. 주정부는 병원 의료진 등을 위한 마스크 20만개를 제조사 3M 중국 공장에 수입 의뢰했다. 그런데 중국 상하이에서 물품을 실은 항공기는 태국 방콕에서 돌연 행선지가 변경돼 미국으로 날아가 버린 것으로 전해졌다. 베를린 주의회 안드레아스 가이젤 의원은 “이것은 현대판 해적행위”라면서 “비인간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독일 연방정부가 미국에 정식 항의해야 한다”고 강력 반발했다.
프랑스에서도 미국에 마스크 가로채기를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의 수도권인 일드프랑스지방 등 지방정부가 중국에 주문한 마스크 수천만장 가운데 약 200만장이 3배의 가격을 제시한 ‘미국 구매자들’에게 넘어갔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AFP통신에 “미국 정부가 마스크를 중간에 가로챈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간 구매업자가 연방정부나 주정부를 대리했을 가능성은 여전하다.
미국에 가로채기를 당했다는 프랑스도 웃돈을 주고 다른 나라가 선(先) 주문한 물량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프랑스 정부가 스웨덴의 한 마스크 제조업체에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해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으로 갈 물건을 중간에 빼내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웨덴 외무부는 “프랑스는 의료용품 징발을 즉각 중단하고 공급망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발원지라며 중국을 비난하던 각국에서 앞다퉈 중국의 마스크 공장으로 달려가는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안드레이 모토비로베츠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이른바 ‘중국 공장 견학기’를 올렸다. 그는 페이스북에 “우리 영사들과 함께 마스크를 구하려고 중국의 공장에 갔더니, 러시아·미국·프랑스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이 더 높은 금액을 현찰로 제시하며 끼어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선금을 보내고 주문 계약까지 했는데도, 주문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고 밝혔다.
민간업자뿐 아니라 국가 최고 정보기관도 쟁탈전에 투입됐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최근 이스라엘 모사드가 코로나19 진단키트를 확보하기 위해 활약하고 있다고 전했고, 이스라엘 현지 언론들은 모사드가 이른바 이스라엘의 ‘적국’에서 장비를 수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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