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칼럼] '아름다운 시절'을 위하여

2020. 4. 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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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어할 때 나는 메리 매콜리프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 3부작을 읽었다. 미국의 사학자가 쓴 책을 불문학자 최애리가 옮긴 이 책은 1871년 파리코뮌이 끝나면서부터 30년 후의 19세기 말까지, 그리고 20세기의 시작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 그로부터 10년 후 세계가 대공황으로 헤매기까지 모두 1600쪽이 넘는 3부작이다. 제1권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는 마네와 모네, 졸라와 드뷔시가 고전주의를 정리하며 인상파 등 새로운 예술을 만들기 시작했던 이야기들, 제2권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은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프루스트, 퀴리가 주역으로 20세기를 열어가던 역사이고 제3권 <파리는 언제나 축제>는 헤밍웨이, 샤넬, 만 레이, 르코르뷔지에가 만들기 시작한 현대의 문화적 삶을 점묘법으로 재현하고 있다.

세상은 수선스러운 가운데 역병을 피해 모인 중세 귀족들의 <데카메론>을 연상하며 한가롭게도 나는 한 세기 전의 파리 풍경을 통해 세계의 현대화 과정을 구경한 것이다. 대학 시절 어디에선가 보불전쟁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까지의 이 시절이 서구 열강이 가장 낙관적인 세계관을 펴던 시대였다는 대목을 읽은 기억이 떠오르면서 부르주아 사회와 제도, 의식과 실제가 익기 시작한 이 시절의 구체적인 삶과 문화는 어땠는지 자주 궁금히 여겨왔었다. 세기 전환에 걸친 이 40여년의 서구는 전쟁도 없었고 식민지들에서 재물과 노동력이 마구 들어와 생활은 풍요롭고 과학은 발달하고 있었다. 그때 쌓인 모순이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을 폭발시켰겠지만 그 시대는 고전적 전통과 기존의 권위주의를 깨뜨리며 새로운 세계 인식과 현대적 전망을 열고 있었다. 다윈과 프로이트에 의해 인간의 존재와 존엄은 붕괴되고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세계관을 바꾸었으며 이를 예고하듯 인상파 화가들은 미학의 목표를 전달에서 표현으로 바꾸고 위고와 졸라는 문학의 정치적 도전을 감행했으며 조이스와 프루스트는 소설을 ‘모험의 언어’로부터 ‘언어의 모험’으로 전복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아름다웠던 것도, 아니 내 눈에는 그 시대 자체가 아름다웠던 것도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더 심해진 빈부 격차로 고통스러웠고 상류층은 한량이었으며 사랑은 으레 불륜이었고 예술가들은 부르주아의 푼돈을 바라며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유대인 드레퓌스가 스파이로 몰려 유배되면서 프랑스 전국이 찬/반파로 갈려 싸웠고 드디어 인류사상 초유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 분방한 변화 속에서 그게 자유였는지, 창조였는지, 여자들의 치마는 짧아지고 남자들은 카레이스에 매혹되었으며 하늘에서 비행기가 날고 혁명 100주년을 맞아 에펠이 세운 강철탑은 파리의 경관을 해친다는 비난 속에서도 새로운 삶의 방식, 20세기 ‘에스프리 누보’(새로운 정신)의 낯선 풍경들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훗날 ‘아름다운 시절’로 부르게 될 혁신적 창조와 예술의 풍요가 가지각색의 행색으로 제멋대로 신명 나게 피어나고 있었다.

파리의 문화 사회를 들여다보고 쓴 매콜리프의 서술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우선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무용, 건축에 패션과 요리까지 갖가지 미적인 것들이 함께 어울려 하나의 예술 사회 집단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가 정치인들을 밀치고 전면으로 나서 현실참여를 한다거나 댜길레프의 공연에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는 등 각 분야 예술가들의 교류, 월경, 합작은 으레 벌어지는 행사였다. 그 못지않은 일은 당대의 예술가들이 파리로 몰려들었다는 점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러시아와 독일, 그리고 20세기에는 에즈라 파운드와 헤밍웨이 등 미국의 문인들이 프랑스의 수도로 모여들었다. 파리는 과연 불나방들을 불러들이는 ‘세계의 빛’이었다. 가난하면서도 낯가림 없는 예술가들의 방자한 어울림에서 현대 예술의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술을 귀족계급에서 부르주아 것으로 하방했으며 모두가 즐길 대중예술로 시장화했다.

그 많은 일들 가운데 내게 가장 ‘웃픈’ 이야기의 하나로 다가온 것은 화가 모딜리아니다. 그는 그림 한 점을 팔고는 신이 나 한턱내겠다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그 손님들 중에는 그들의 단골 술집 ‘지붕 위의 황소’ 주인도 끼어 있었다. 그를 본 모딜리아니는 갑자기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술집 주인은 방 안을 쓱 훑더니 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분위기가 좀 뒤숭숭하던 중에 나갔던 술집 주인이 술병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여기 술잔, 스푼, 테이블, 의자까지 모두 우리 집 건데 술만 아니어서” 자기가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모딜리아니가 술집에서 슬쩍해온 것들이다. 그런 그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를 휩쓸며 5천만명을 죽인 스페인 독감에 희생되어 서른다섯 나이로 죽는다. 그의 성대한 장례식에는 그러나 그의 여인 에뷔테른이 없었다. 슬픔에 젖은 그녀는 7층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태중의 아기와 함께.

이 정겨운 풍경들이 낯익어 보이는 것은 당시의 파리와 같은 인구로 <서울은 만원이다>라고 탄식한 이호철의 1960년대나 고은 이문구 박태순이 유신체제에 저항한 우리의 1970년대가 연상된 때문이다. 당시의 젊은이들이 공부나 취업뿐 아니라 글을 쓰겠다고, 그림 그리겠다고 서울로, 종로로 몰려들었고 명동과 무교동을 헤매며 젊은 열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김승옥, 이청준, 김현이 ‘제3세대의 감수성’으로 한글세대의 문학을 일으키고 황석영 최인호는 송창식 양희은과 청년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 예술가들이 세계로 뻗어 나간 활기로 보면 우리의 그 아름다운 시절은 디지털 문명권으로 진입한 2020년 안팎의 오늘일 수도 있겠다. 조성진의 쇼팽 피아노경연 금메달, 방탄소년단의 유엔본부 공연, 한강의 맨부커상, 봉준호의 아카데미상 석권, 그리고…

어느 시대나 추억하며 기념하고 싶은 장면이 있고 감추고 지우고 싶은 기억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이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시대가 세계의 문화지도를 파리의 풍경으로 아우르며 삶의 어긋남과 창조의 고통을 축복의 회상으로 되살리고 세기말과 초의 지구를 예술 세계의 ‘둥근 지붕’으로 모두어 그 아름다움들을 사랑하고 자랑스레 여긴 때문이리라. 어느 역사인들 배신과 허위가 없었을까. 그 험난하고 안타까운 역사 속에서도 그것이 안아 넘겨준 시대적 의미와 보편적 가치를 보듬어 키운다면 그것이 ‘벨 에포크’로 회상되지 않을까. 아름다움이란 그 대상의 아름다움보다 대상에 대한 인식의 아름다움에서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김병익 l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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