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의 맛 세상] "잠깐! 반찬에 그 젓가락 대지 마세요"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0. 4. 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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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한국식 공유형 상차림' 문화 퇴출될 가능성 높아
지금 식문화 100여 년 전 등장.. 최초 조선 요리점 '명월관'이 효시
먹고 싶은 메뉴 골라 먹고 음식 쓰레기 문제 해결 기회 될 수도
/일러스트=이철원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대부분의 모임이 연기되거나 취소된 가운데 드물게 남은 저녁 식사 자리였다. 본 요리에 앞서 반찬이 나오기 시작했다. 남도식 한식당답게 갈치속젓, 갓김치, 물김치, 꼬막무침 등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반찬 7~8가지가 흐뭇하게 딸려 나와 식탁을 덮었다.

갈치속젓을 조금 집어 먹으려는 순간, 함께 자리한 여성 한 분이 수저통에서 숟가락을 반찬 가짓수대로 꺼내더니 반찬 그릇마다 올렸다. 흡사 미니 한식 뷔페 같은 광경이 식탁 위에 펼쳐졌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반찬에 개인 젓가락 갖다 대지 말고 이 숟가락으로 개인 앞접시에 덜어 먹으라'는 뜻이었다. 평소 "뭘 그렇게 유난 떨고 그러냐"며 찌개마저 국자 대신 숟가락으로 떠먹던 남성조차 군소리 없이 반찬들을 공용 숟가락으로 앞접시에 옮겨 담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 사회의 식문화와 식사 에티켓은 엄청난 변화를 맞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을 통해서 전파된다고 확인됐으니, 상에 올라온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식습관은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서양도 가정에서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마른반찬은 물론이고 찌개나 전골 같은 국물 음식까지 각자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 함께 먹는 '한국식 공유형 상차림'은 외국인들에게 낯설고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이미 한국인 중에서도 위생적이지 못하다며 꺼리는 이가 상당수이나 '한국 고유의 전통' '나눠 먹지 않으면 정(情)이 생기지 않는다' 운운하며 부정적으로 보는 이도 많아 바꾸기 어려웠다. 코로나 사태는 공유형 상차림 반대파가 판세를 뒤집을 결정적 기회를 제공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모든 음식이 커다란 상 하나에 차려져 나오는 '공간 전개형 상차림'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 전통 잔치 상차림은 독상(獨床) 차림이었다. 궁궐에서 열렸던 각종 연회를 기록한 그림을 보면 모든 참석자 앞에 각종 음식이 1인분씩 담긴 소반이 하나씩 놓여 있다.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커다란 교자상에 음식을 모두 담아 내는 한정식(韓定食)은 1900년대 초 '명월관(明月館)'에서 유행시켰다. 명월관은 우리나라 최초 조선 요리점. 대한제국 황실 궁내부(宮內府)에서 잔치와 여기 필요한 기구를 관리하던 주임관(奏任官) 안순환이 1909년쯤 서울 광화문 지금의 동아일보사 자리에 문을 열었다. 명월관은 '임금이 자시는 음식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며 대단한 화제가 됐고, 명월관에서 규격화한 한정식은 전국적으로 확산하며 한식 서빙의 전범(典範)으로 굳어졌다. 이것이 요즘 한국의 공유형 상차림이 됐으니, 그 역사가 길어봐야 110여 년에 불과한 것이다.

한식 상차림이 공유형으로 바뀐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거의 같은 시기 유럽에서 나타났다. 과거 프랑스에서는 요즘 국내 한정식집처럼 여러 요리를 한 상에 차려 냈다. 이를 '프랑스식(式) 서비스'라고 한다.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잔치일수록 이런 상이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러다 1890년대 음식이 순서대로 1인분씩 제공되는 '러시아식 서비스'로 바뀌었다. 겨울이 혹독하게 추운 러시아에서 음식이 식어 맛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식사 제공 방식. 이것이 프랑스에서 유행하면서 러시아식 서비스가 서양 고급 레스토랑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전통이란 건 의외로 오래되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이며, 쉽게 사라지거나 바뀌기도 한다. 코로나처럼 엄청난 재난 앞에서 상차림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게 바뀔 수 있다.

고급 한식당에서는 1인분씩 담아 내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지만, 손이 많이 가고 그만큼 인건비가 더 들기 때문에 대중 식당에서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앞서 저녁 모임처럼 음식마다 작은 숟가락이나 집게를 딸려 내는 방식이 더 현실적일까. 함께 먹되 각자 1인상을 받는 구조가 대세가 된다면, 먹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반찬을 주문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어차피 요즘은 식사비를 각자 '더치페이'하는 경우가 흔하니, 자기가 먹기 싫은 반찬에 대해서는 돈 내지 않고 먹은 반찬만 지불하는 방식을 손님들이 더 선호할 수도 있다. 한식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음식 쓰레기와 재사용을 없애는 기회일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이건 코로나 사태는 한국 외식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초대형 변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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