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의 병영톡톡] 주한미군·미국 국방부, 코로나19 살얼음판
원자력 항공모함서 확진자 발생..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도 '비상'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주한미군 기지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계속 침투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일찍부터 기지 밖 통행 제한과 다른 기지간 방문을 통제하고 있음에도 코로나19 감염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급기야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강력한 건강지침(군 보건 방호태세·HPCON) 발동에 이어 공중보건 비상사태까지 선포하면서 집안 단속을 하고 있지만,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외국의 다른 기지보다 한국 근무 생활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더욱 강한 조치가 시행되지 않는 한 감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주한미군 기지 내에서는 12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평택기지에서만 최근 3명이 확진됐다. 더욱이 평택기지에서 지난 21일과 22일 여군 일병과 남자 상병이 잇따라 숨진 채로 발견되어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하다. 이들의 사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주한미군 못지않게 미국 국방부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필리핀해에서 활동 중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CVN-71)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비상이 걸렸다. 한반도 출동 전진기지인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서도 코로나19 검사가 시행됐다.
◇ 화난 에이브럼스 사령관,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평택기지 통행제한 조치
주한미군 기지에서 잇단 확진자가 발생하지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25일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에 이어 27일에는 평택기지 통행을 제한했다. 사실상 기지 밖 통행금지와 같다.
그는 이런 조치에도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자 최근 미군 장병과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통해 격앙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확진자들이 가지 말도록 권고된 지역(핫스팟·hotspot)을 방문하고도 안 갔다고 거짓말하는 사례가 발각되자 심기는 더욱 불편해졌다. 주한미군은 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나온 지역을 핫스팟으로 지정,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25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편지에서 "대다수 인원이 보건 조치(HPCON)를 이행하고 있지만, 일부는 강력한 권고와 조치를 무시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기적이고 고의로 대다수를 위험에 빠뜨리는 소수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일부가 자신의 동선 등에 대해 거짓 보고를 한 사실이 들통난 데 따른 것이다. 미군 일부 장병도 평택 시내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등 건강지침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보고가 사령관에게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미군 라디오방송인 'AFN 360'에 출연해 "진실하고 정직하게 대답할 의무가 모두에게 있다"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주한미군 한국인 계약직 근로자는 정직하지 않았고, 그는 모든 기지 출입이 영구적으로 금지됐다"고 말한 바 있다.
HPCON 등 준수사항을 따르지 않으면 미군 시설에 대해 최소 2년간 출입이 금지될 수 있다.
그는 27일 'AFN 360'과 인터뷰에서 노골적인 불만을 토해냈다.
"구성원들이 유난히 규칙을 잘 지키지 않았고, 최근 그런 5가지 사례가 발견됐다"며 "한 달간 고민하다가 더는 참을 수 없어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조치는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와 평택기지 통행 제한 조치 등을 지칭한 것이다. 비상사태는 사령관이 연장하거나 조기 종료하지 않는 한 다음 달 23일까지 효력을 유지한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10번째 확진자(주한미군 근로자)가 나온 계약 업체는 미군의 건강지침을 정확히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지난 몇 주간 공공 비상사태에 대한 강력한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은 집과 기지 내 막사에 머물고, 불필요하게 외출하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주한미군은 미국 국방부가 최근 HPCON를 두 번째로 높은 단계인 '찰리'로 격상한 지침에 따른다. '찰리' 격상에 따라 대규모 모임 제한 및 추가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 등이 시행되고 있다. 본국에 귀환하거나 해외에 파견되는 모든 미군 병력의 이동은 60일간 금지됐다.
◇ 코로나19 '바다에 떠다니는 군사기지'도 멈출 수 있어…가데나 기지도 비상
바다에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리는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도 코로나19가 멈춰 세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24일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CVN-71)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3명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CNN은 현재 25명으로 늘었고, 전염성이 강해 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루스벨트호는 이달 초 베트남 다낭 항을 방문했고, 승조원들이 배에 내려 육상에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토마스 모들리 해군 장관 대행은 26일(현지시간) 국방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 항공모함의 승무원 전원을 대상으로 검사가 진행 중"이라며 "이를 통해 항공모함에서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항공모함 승조원은 5천여명이다. 일본의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집단 감염자가 나온 사례를 보듯 함정은 집단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에어컨 등 환기 공조시스템이 배 전체로 연결되어 있어 환기구를 통해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퍼질 수 있다.
루스벨트호는 현재 필리핀 근해를 항해하고 있다. 전시 또는 국지전 등의 상황에서 집단 감염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전투는 고사하고 인근 항구 또는 모항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다. 웬만한 국가의 전투력과 맞먹는 항공모함일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도 비상이다. 미국의 해외 공군기지 중 규모가 가장 큰 오키나와 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B-1B 폭격기와 F-22 스텔스 전투기 등 미군 전략무기가 출동하는 전진기지다. 함정을 제외하곤 태평양 괌이나 일본에서 출동하는 항공 전략무기가 한반도로 전개되는 데는 최소 2시간, 최대 6시간가량이다.
미군은 가데나 기지 등에서 남중국해로 해상초계기 등 정찰기를 정기적으로 출동 시켜 감시하고 있다. 최근 가데나 기지에서 코로나19 검사가 대대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지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확진자 발생 시 가공할 위력의 미군 전략무기도 세울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감염병이 새로운 안보위협 이슈가 됐다고 주장한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25일 '코로나19를 통해 본 '신안보'와 국제질서'란 글에서 "사이버 테러를 통한 공포의 조장, 생물학 테러의 위험성 등을 고려해 '신안보' 관련 대응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외교·안보 부처에 '신안보' 분야를 전담할 수 있는 인력 및 조직을 구비하고, 각 부처의 '신안보' 대응 관련 업무를 협의·조정할 협의 체계 역시 동시에 정립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thre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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