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제안 한국에 적용하면..연금·건보료 면제 효과 94조

김도년 입력 2020. 3. 23. 05:01 수정 2020. 3. 23. 18: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의회를 직접 찾아 급여세 인하 등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경기부양책을 논의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 수당' 이전에 제안한 경기 부양책은 '급여세(payroll tax) 면제'였다. 미국의 급여세는 한국 근로자가 내는 근로소득세와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를 포괄한 개념이다. 미국도 사회보험료를 한국처럼 근로자·회사가 절반씩 부담한다. 자영업자는 전액 부담한다. 트럼프 대통령 제안은 회사·자영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 등을 올 연말까지 면제하는 것이었다. 트럼프 제안 직후인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4% 이상 반등했다. 그러나 미 의회는 이 제도가 코로나19 영향을 받지 않은 기업에도 혜택을 준다고 지적해 잠시 주춤한 상태다.

트럼프식 제안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한국납세자연맹은 22일 국내 기업·근로자·자영업자가 내는 국민연금·건강보험료를 1년간 면제하면 94조7364억원(2018년 납부액 기준) 규모의 소득 증대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회사·근로자 등 사업장 가입자는 82조8176억원,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는 11조9188억원의 지원 효과를 얻는다는 계산이다. 이는 트럼프 안보다 면제 범위를 넓혀 계산한 결과다. 트럼프는 근로자가 내는 사회보험료는 면제하지 않고 면제 기간도 올 연말까지로 정했다. 그러나 납세자연맹은 근로자도 사회보험료를 면제하고, 면제 기간도 1년 동안 늘리자고 제안한다. 기업의 비용 압박과 자영업자 도산에 따른 실업자 급증을 막으려면, 임대료·대출이자처럼 사회보험료도 깎아주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재정 건전성 영향은?
전문가들도 이 같은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우선 사회보험료를 면제하면 소득 증대 효과를 내고도 당장은 재정 건전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씩 지급하는 '재난 기본소득'은 총 51조원의 재정 지출이 발생한다. 재원 마련을 위해 나랏빚을 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5% 안팎에 달할 수 있다. '코로나 추가경정예산(추경)' 만 반영할 때(41.2%)에 비해 급격히 나라 빚이 늘어난다. 유럽 복지국가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기준으로 추정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스위스 39%, 스웨덴 37%, 노르웨이 40% 등이다. 이렇게 빚은 확 늘어 날 판이지만, 코로나발 경기 침체로 향후 국세수입은 급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724조원 규모의 적립금을 보유한 국민연금 등을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것이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사업자 매출이 급감할 때 면제한 사회보험료는 기업·자영업자엔 고정비 감소, 근로자에는 소득 증가로 이어진다"며 "추산 결과, 연봉 5832만원 이하 근로자는 임금이 8.18% 상승하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1년간 1가구 월 33만원 기본소득 효과?
보험료 납부를 잠시 멈추는 것으로도 '납부자 한 가구당 33만원'씩의 기본소득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준(準) 조세 성격의 사회보험료 부담이 줄면 소비에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늘기 때문에 일종의 '음(-)의 기본소득'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음의 기본소득이란 국가가 걷는 세금·사회보험료 등을 일제히 감면해 기본소득처럼 소득을 늘려주는 제도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 가구의 월평균 비소비지출(세금·사회보험료 등 소비로 쓰지 않고 나가는 돈)은 104만원으로 이 중 연금·사회보험이 32%를 차지한다. 보험료 납부를 1년간 멈추면 가구당 매달 33만원씩 1년간 지원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일용직·임시직 등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비정규직 근로자는 혜택을 못 받는다. 이들에 대해서는 선별적인 재난 수당을 지급하는 등 '투 트랙 전략'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소상공인도 선호하나?
사회보험료 면제에 대한 소상공인 선호도도 높다. 소상공인연합회가 1080명의 소상공인을 상대로 진행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지원정책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원하는 정책으로 부가세 인하, 긴급 생계비 지원, 전기요금 등 공과금 감면, 4대 보험료 감면 등을 들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장사가 안되는 상황에서 사회보험료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4대 보험료는 한시적으로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경기가 나쁠 땐 사회보험료를 면제하고, 호경기 때 보충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학계에선 사회보험료 면제 외에도 근로장려금(EITC) 확대 등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도 나온다. 김원식 교수는 "근로장려금은 지원 대상자를 선별하는 별도의 행정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발표한 추경안이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2차 추경안을 검토 중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9일 "2차 추경도 앞으로 논의될 것"이라며 "당분간 '죽음의 계곡'에서 소비 진작, 수출·투자 활성화 등을 위한 정책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사회보험료 면제 등은 아직 논의하지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민연금 요율 조정 등 사회보험료 면제나 감면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