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 위기 정유·차·항공 "코로나 경제, 산소호흡기 달아달라"

이소아 입력 2020. 3. 23. 05:01 수정 2020. 3. 23.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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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정유사 "영업이익 2조 급감"
현대차 "미국 판매 50% 줄어들 것"
"공장 멈추면 산업 생태계 흔들려
기업 회사채 발행 정부가 보증을"
제조업 생태계 붕괴 우려
면세점 매출 -80% 백화점 -30%
올 한국성장률 -1% 전망까지 나와
"업계 전반 줄도산 사태 막으려면
한은, 기업CP 매입도 고려해야"
인적끊긴 재래 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상 마음은 타들어간다. 22일 서울 홍은동 포방터 재래시장에서마스크 쓴 노점상이 오가는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코로나로 죽든, 굶어죽든 둘 중 하나입니다”
아직 1분기도 채 끝나지 않았지만 22일 국내 대표 정유기업 관계자는 “지금까지 적자만 계산해도 올해는 그냥 마이너스”라며 하반기 전망에 대한 기대를 일축했다. 정유사들이 과거 높은 가격에 사놓은 원유 재고는 국제 유가가 폭락하면서 평가 손실만 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로 원유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마진을 남겨 팔아야 할 휘발유 등 석유 제품도 전 세계 물류가 멈추면서 만들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 업계에선 국제유가 하락과 코로나19 수요 급감으로 인한 국내 4대 정유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폭이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SK그룹은 이번주 초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일제히 모여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비상 경영회의를 열 계획이다. 지난해 8월 일본의 수출 규제 비상회의를 소집했던 것처럼 최태원 SK회장이 직접 주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제조업 셧다운 본격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닥친 코로나19 경제 비상이 기업들로 본격적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슬로바키아 공장은 슬로바키아 국가 비상사태 선포에 따라 23일부터 일주일간 문을 닫는다. 유럽 시장용 TV와 모니터를 만드는 공장이다. 유럽 매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미국ㆍ캐나다ㆍ페루 등의 오프라인 매장도 일시 폐쇄했다. 삼성ㆍLG 등 가전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해외 판매가 이미 전년보다 20~30% 빠졌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 체코공장과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도 23일부터 각각 2주간 문을 닫는다.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과 기아차 조지아 공장은 이미 멈췄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겸 북미권역본부장은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4월 미국 판매가 전년의 50%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스타항공 결국 전면 셧다운
이스타항공은 24일부터 국내 항공업계 최초로 국제선에 이어 국내선까지 모든 노선 운영을 한 달간 중단하기로 했다. 육아휴직 중인 대한항공 한 직원은 “(고용이 유지돼)복귀나 할 수 있을지 잠을 설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는 사실상 모두 셧다운 상태다. 이제 국가에서 나서지 않으면 항공사고 협력업체고 모두 공중분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은 “2008년 리먼사태처럼 금융에서 시작된 위기는 정부가 돈을 풀면 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데 코로나처럼 실물경제 위기로 공장이 한번 멈춰버리면 하루 이틀 만에 재개가 돼서 정상화 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상공인에 이어 일반 기업들까지 어려워지면 그 아래 피라미드처럼 쫙 펼쳐져 있는 중소 협력사까지 한국 산업 생태계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차 판매가 줄어들 것이 자명해지면서 차 부품 업체들도 떨고 있다. 대구소재 자동차부품업체 현대코퍼레이션의 권택훈 본부장은 “현대 기아차가 한달만 쉬어도 우리 같은 부품 업체는 직격탄”이라며 “부품업체 어디나 그렇게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업계 셧다운은 이미 지상 조업사 등 협력 업체 일자리에도 타격을 미치고 있다. 한 지상 조업사의 협력 업체는 무급 휴직과 강제 연차로 버티다 최근 인천공항노조에 비정규직 정리 해고를 협의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에 멈춰선 소비. 그래픽=신재민 기자


소비재는 직격탄
여행객이 사라지면서 인천공항을 제외한 공항 면세점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인천국제공항에 입점한 면세점들은 월평균 매출액이 2000억원에서 400억원대로 80% 줄었다. 면세점 매출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는 화장품 등 소비재들도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익명을 요구한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면세점 매출이 빠지면서 1분기 실적에서 ‘어닝 쇼크’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고객이 찾지 않는데다 확진자 방문으로 휴ㆍ폐업을 반복하고 있는 백화점 업계의 비명도 커지고 있다. 이달 1일~15일 3대 백화점의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줄었다. 백화점에 입점한 상인 중에선 “차라리 휴업하게 해달라”는 요구까지 나오는 판이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든 한계상황이라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비명은 정부가 50조원의 비상금융 조치를 하기로 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A출판사 대표 이 모 씨는 지난 화요일 정책자금 신청을 위한 대기 접수를 인터넷으로 하려다 실패했다고 하소연했다. 아침 9시부터 접수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순식간에 마감됐다. 이 씨는 “다음 주 또 오픈한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나 나한테까지 차례가 올지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서울의 대표 상권인 강남역 곳곳에선 ‘임대’ 표지판이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강남역 먹자골목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김 모(45) 씨는 “평일도 평일이지만 주말 나들이 나오는 사람들이 없어 최근 몇 주 동안 주말 매출이 거의 없다”며 “아르바이트생도 3명에서 1명으로 줄였다”고 했다.
부양책을 아직은 실감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컸다. 경기도 수원 못골시장의 이충환 상인회장은 “소상공인 정책 자금을 신청해 받은 곳이 우리 시장엔 아직 없다”며 “대출 신청이 밀려 있다고 하니 더 못하는 것 같다. 차라리 전기ㆍ수도요금 등 공공요금을 낮춰주면 직접적인 혜택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노쇼
한국 경제의 위와 아래에 함께 균열이 생기면서 전문가들은 실물 경제 위기가 금융 위기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소비 위축과 수요 부진에 따른 수출 감소, 생산 중단과 고용 중단 등 실물 부문 위기가 경제 주체들이 돈을 갚지 못하는 신용 위기로 이어지고 급기야 자산 가격이 폭락하고 금융 기관들이 도산하는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상황은 심각한데 정부 대책은 뒷북이다. 오정근 한국금융ICT 융합학회장은 “경제와 금융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치권이 경제 대책을 틀어쥐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 요구하는 대책은 한발 늦고, 나랏돈을 퍼붓는 선심성 대책만 난무하다”고 지적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산업정책팀장은 “생산에 차질을 빚는 공급과 살 사람이 줄어든 수요에서 동시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이제 기업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회사채를 예정된 규모로 원활히 발행할 수 있게 정부가 보증에 나서 금리를 낮춰주는 등 속도감 있게 대응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업계 전반의 줄도산 사태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시중 은행이나 주요 기업들의 기업어음(CP)을 사들이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아ㆍ추인영ㆍ김영주 기자 lsa@joongang.co.kr

코로나19 사태로 유동인구가 끊겨 한산한 서울 강남역 인근 모습. 곽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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