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이만희는 큰 교회 돈·세습 문제 얘기하며 현혹했다"

이상언 입력 2020. 3. 23. 00:44 수정 2020. 3. 23.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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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다가온 사람 꼬임에 빠져
지난해까지 5년간 신천지 생활
'영생 누리는 제사장' 될 욕심과
'공동체의 정' 때문에 청춘 허비


신천지에 빠졌던 청년을 만나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신천지 교육 수료식. 각 지역 선교센터에서 6~7개월 동안 교리 학습 등을 마친 이들이 수료식에 참석한다. 5~6개월이 지날 때까지 그들은 자신이 신천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사진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2014년 3월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두 명이 다가왔다. “기독교인인데, 선교사가 되려면 다른 사람 앞에서 선교 스피치를 하고 평가서를 받아야 한다”며 “잠시 시간을 내 달라”고 부탁했다.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워 머뭇거리자 그들이 바로 옆의 카페로 인도했다. 선교 스피치를 듣고 난 뒤에 “신이 정말 있느냐, 천국·구원·영생이 진짜 존재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성경 공부를 한번 해 보겠느냐”고 제안했다.

박형민(24)씨가 신천지(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에 발을 들이게 된 날에 대한 기억이다. 물론 두 남녀가 신천지 신도라는 사실을 그가 안 것은 한참 뒤였다.

박씨는 당시 삶과 죽음의 문제에 빠져있었다고 설명했다. 전해에 가입한 통합진보당 계열 단체 ‘21세기 청년공동체 희망’의 활동가로 그해 말 서울에서 열린 시위에 참석한 게 그 계기가 됐다고 했다. “시위 중 한 참석자가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그가 사망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내부에서 ‘열사가 탄생할 뻔했는데 아쉽다’는 말이 들려왔다. 환멸감이 들어 한 달 뒤쯤 단체에서 나왔다. 분신의 충격 때문에 한동안 죽음이 무엇인지, 인간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 봄은 박씨가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이기도 했다. 일반계 고교 3학년이었지만 그는 대학에 가지 않기로 하고 다른 진로를 찾고 있었다. 보통 고3 학생과는 달리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직업교육 센터로 갔다. 박씨는 “신천지인지 모르고 만났던 여러 사람이 내게 보인 관심, 그들과의 만남에서 느끼는 소속감 같은 것이 나를 신천지로 이끌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금남로에서의 만남 이후 박씨는 성경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는 교사를 소개받았고, 신천지 내부에서 ‘복음방 단계’라고 불리는 입문 과정을 거쳐 그해 6월에 ‘센터’라는 곳으로 인도됐다. 센터에서 초급 과정(4개월)과 중급 과정(2개월)을 마쳤을 때 처음 강의를 했던 교사가 자신들이 신천지 교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함께 센터에서 교육받은 이들 중 3분의 2가 사실은 교육생이 아니라 신천지 교인이며, 그들이 새로 신도가 될 사람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동향을 파악하거나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박형민씨가 신천지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출판하려는 책.

박씨는 “모든 게 철저히 계획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배신감과 공포가 몰려왔는데, 그들은 성경의 ‘협력하여 선을 이루자’는 구절을 제시하며 나를 구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선한 일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심이 커지지는 했지만 여기서 탈퇴하면 제사장이 돼 영생을 누릴 14만4000명에 들지 못해 영영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과 그동안 쌓인 정 때문에 떠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박씨는 주변 사람을 신천지로 이끌고 관리하는 전도 작업에도 참여하며 신도의 의무를 이행했다. 의심이 씻기지는 않았지만, 신천지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모든 인간관계가 신천지 사람으로 엮여 있었다. 박씨는 “이만희 총회장은 큰 교회의 돈·비리·세습 문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열심히 전했다. 상대적으로 신천지가 깨끗해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2017년 5월부터 약 2년간 군 복무를 하고 지난해 봄에 다시 신천지로 갔다. “곧 역사가 이뤄진다”는 말이 똑같이 반복됐다. 더 이상 믿기가 어려웠다. 예배 참석을 중단하고 지난해 가을에 신천지에서 탈퇴했다. 박씨는 건축학을 배우기 위해 한 대학에 뒤늦게 입학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등교가 미뤄졌지만 새 인생길에 들어섰다. 박씨는 “지난 5년의 청춘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포섭’하려다 실패한 친구 김동규(24)씨와 함께 신천지를 고발하는 책을 내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작업을 시작했다. 책 제목은 『나는 신천지에서 20대, 5년을 보냈다』이다.

박씨에 따르면 신천지가 전도 대상으로 삼는 핵심층은 20대이다. 그중에서도 대학 신입생이다. 자신도 아마 대학생으로 보였기 때문에 접근했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신천지 신도 분포 형태를 보면 20대가 많다. 3분의 1이 넘는다. 일반 교회와는 양상이 크게 다르다. 신천지는 고교를 갓 졸업한 청년의 자아에 대한 고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의문, 미래에 대한 불안, 성숙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외로움을 파고든다. 교회에 다녔거나 다니는 청년은 수학 공식처럼 제시되는 ‘명확한 성경 해석’에 이끌린다. 대형 교회에서는 마이너리그에 속했던 청년들이 신천지에서는 메이저리그 멤버가 된다. 박씨는 “신천지는 전도로 수를 불리는 데 주력하는데, 20대가 시간이 많아 그 일에 가장 적합하다. 신천지가 급격히 커진 것은 청년 전도 덕분이다”고 말했다.

이정배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신흥 이단 세력은 기성 교회의 허물을 먹고 자란다. 기성 교회는 청년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그들은 교회 살림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봉사활동의 일꾼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N포 세대’라고 불리는 지금의 20대는 좌절·불안·외로움에 싸여 있는데, 교회가 그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성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 ‘믿음의 문제’로 설명한다. 기성 교회가 신천지 같은 집단을 도왔다고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교인 수를 늘리는 데 집착하고, 개인의 구원과 물질적 축복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지도자를 신격화하고…. 신흥 종교 집단에서 보이는 이런 모습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 보라. 대형 교회에서 계속 봐 온 모습 아닌가.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교인들이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 ‘말세’는 있어도 ‘종말’은 없다

문광 동국대 불교학술원 외래교수

불교·유교에도 말세론이 있다. 불교의 ‘대방등대집경’은 석가모니 입멸(入滅) 뒤 1000년은 정법시대(正法時代), 그다음 1000년은 상법시대(像法時代), 그 이후는 말법시대(末法時代)라고 설명했다. 중국 송나라 유학자 소강절의 ‘황극경세서’는 삼황(三皇)·오제(五帝)·삼왕(三王)·오패(五覇)·이적(夷狄)·금수(禽獸)의 기운으로 시대를 구분했다.

불교뿐 아니라 유교·도교·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사교(四敎)를 섭렵한 탄허스님(1913~1983)은 “말세는 있어도 종말은 없다”고 했다. 기독교는 종말론을 주장하고 최후의 심판을 강조하지만 탄허스님은 불교의 화엄학과 미륵 사상, 유교의 역학과 김일부의 정역(正易) 등을 근거로 “심판이 아니라 성숙이요 종말이 아니라 결실”이라고 설파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탄허스님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구의 수명은 아직 반밖에 이르지 않았고, 현재의 지구는 뜨거운 여름에 해당하며, 정확히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에 해당한다.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정신질환, 화병, 광신(狂信)의 양상들은 모두 뜨거운 화(火) 기운에 의한 것이며, 빙하가 녹고 온실효과가 일어나는 등의 기후변화, 그리고 지진·해일·화산과 같은 사태 역시 지구 속에 잠재한 불기운의 영향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혼란 역시 지구의 성숙과 인간의 완성을 향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속히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데는 한국인의 종교 심리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은 불교의 미륵하생 신앙이 조선조의 억불(抑佛)로 인해 잠재하고 있다가 기독교의 예수 재림에 대한 믿음으로 탈바꿈했다고 볼 수 있다. 삼국, 통일신라, 고려 시대를 거쳐 지속해서 이어져 온 미륵하생과 불국토의 신앙이 잠시 주춤했다가 서학(西學) 유입으로 빅뱅을 맞이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신천지 등의 일부 신흥 교파에서 종말론과 구원론이 과도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불교의 말법시대는 정법시대로 막을 내리고, 유교의 금수 운도 다시 성인(聖人)이 오는 황운(皇運)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불교와 유교는 한결같이 우리가 사는 이 땅 위에 정토 세계와 태평성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지구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대에는 정법시대와 말법시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우리의 청정한 근본 마음에는 정법 마음과 말법 마음이 따로 있을 수 없다. 항상 평상심과 부동심을 닦는 ‘마음 수행’을 통해 허망한 마음을 갖지 말고 혹세무민에 부화뇌동하는 일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극락과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의 바른 마음이 중요하다.

문광 동국대 불교학술원 외래교수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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