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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력 떨어진 한국경제, 온갖 처방 나오지만 한방 없어" [경제위기 당시 수장에게 듣는다]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22 18:08

수정 2020.03.22 18:08

"가장 큰 뇌관인 기업 부도사태
막으려면 법인세 등 감세를"
'셀 코리아' 해외 투자자에
친시장 정책으로 신뢰 줘야
전국민 재난기본소득은 위험
주더라도 중위소득 이하에만
"면역력 떨어진 한국경제, 온갖 처방 나오지만 한방 없어" [경제위기 당시 수장에게 듣는다]
"면역력 떨어진 한국경제, 온갖 처방 나오지만 한방 없어" [경제위기 당시 수장에게 듣는다]
"면역력 떨어진 한국경제, 온갖 처방 나오지만 한방 없어" [경제위기 당시 수장에게 듣는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감염은 중국과 한국을 넘어 미국과 유럽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실물과 금융이 동시에 멈춰서고, 세계 증시가 폭락을 거듭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밖으로는 글로벌 밸류체인이 단절되고, 안으로는 자영업자부터 줄도산이 시작됐다. 대기업의 연쇄부도 가능성도 대두된다. 정부가 돈 풀기와 재정건전성의 딜레마에 빠진 사이 정책은 한 박자씩 늦다.
'죽음의 계곡'을 지나는 몇 개월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몇 년의 방향도 결정될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22일 역대 경제위기 소방수들과 긴급 전화인터뷰를 하고 각자의 답변을 좌담회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현 중앙대 명예교수),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현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등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핵심적인 역할을 한 3인이 참여했다.

ㅡ코로나19 국면에서 문재인정부의 경제 정책은 어떤가.

▲전광우=수년 동안 우리 기업들이 활력을 많이 잃고 잠재성장력도 지속적으로 떨어진 환경 속에 있었다. 면역성이 많이 떨어진 지금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가장 빨리 회복했던 2008년 금융위기, 1998년 외환위기 때도 비교적 빨리 어려움에서 극복했던 것은 정책 기조가 시장 친화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상당히 위축돼 있다. 차제에 정책기조를 대전환해서 친성장, 친시장으로 변화해야 '셀 코리아(Sell korea)'하는 해외투자자들도 더 신뢰할 수 있다. 정부가 메시지를 분명히 밝히고 믿음을 줘야 한다.

▲최중경=과거에는 기업들은 복원력이 있었다. 중국은 한국 제품을 따라올 수 없었다. 지금은 턱밑까지 따라왔다. 현재 정책은 기업, 산업에 족쇄가 많다. 최저임금을 너무 올려서 하청업체가 숨을 못 쉰다. 산업에 복원력이 없어 전체적으로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 부동산 부양은 못할망정 규제는 안된다. 잘못하면 스칸디나비아형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 경기 하락도 부담인데 부동산 규제를 하면 부동산은 폭락한다. 산업, 부동산 등 모든 경제정책을 대전환해야 한다. 전쟁에는 기본적으로 보병(기업)이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정부는 이념으로 기업의 손발을 묶어놓고 있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바닥이다.

▲박승=문제는 온갖 노력을 많이 하는데 한 방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능력은 함량 미달이다.

▲전광우=경제팀이 신속하고, 선제적이지 못했다. 국정운영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판단과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 실물에서 금융위기로 확산되는 과정에서는 금융위원회에 힘을 줘야 한다. 금융위가 전반적인 시장 안전판을 구축하도록 각 부처의 협조가 중요하다. 채권시장안정펀드 같은 것이 그렇다.

ㅡ소비쿠폰, 재난기본소득 등 직접적인 돈풀기 정책에 대한 생각은.

▲박승=현금을 직접 주는 재난기본소득이 국민생활 지원이나 소비 부양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물론 고소득층에는 줄 필요가 없다. 생존위협을 받는 중위소득 이하에 줘야 한다.

▲전광우=소상공인 등 절대적으로 최저생활이 안되는 분들에게 급히 지원해야 한다. '전국민 100만원' 이런 건 위험하다. 일본도 여러번 상품권을 돌리고 현금살포 경험이 있는데 기대한 만큼 효과가 없다는 검증도 많다. 재정은 돈 푸는 것만 생각하는데 감세도 동반해야 한다. 넉넉한 계층이 소비를 더 하도록 소득세 감면 카드도 있다.

▲최중경=지방재정이 파탄날 정도로 소비정책을 펴서는 안된다. 재정이 견디는 범위 내에서 추진해야 한다. 재정이 견디는 쪽이면 찬성이다.

ㅡ시급한 정책은.

▲박승=전 세계 경제활동이 올스톱됐다는 점, 시스템 자체는 문제가 없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즉, 코로나19가 끝나기만 하면 금방 회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지금은 비상시국 극복을 위한 단기대책 중심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건전해서 장기대책을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시스템이 서있는 동안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이 문제의 숨통을 터주는 단기대책이 필요하다. 취약계층 생존유지를 위한 재난기본소득, 법인세 감면 등 직접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 주52시간 근로제나 최저임금제 같은 것은 한시적으로 시행을 미루는 게 맞다.
"면역력 떨어진 한국경제, 온갖 처방 나오지만 한방 없어" [경제위기 당시 수장에게 듣는다]


ㅡ금리인하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분석이 많은데.

▲박승=양적완화 정책이 필요하다. 한은이 추가로 금리를 내리기는 힘들다. 양적완화 정책으로 기업을 살려야 한다.

▲전광우=양적완화를 바로 시행하지 않더라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백신, 치료제 개발이 늦어지고 미국, 유럽에서 확산이 계속되면 걷잡지 못할 것이다. 금리인하는 부작용만 크고 효과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지 양적완화로 가야 한다. 전통적 수단을 넘어서는 고민을 해야 한다. 경제가 살려면 대기업들의 경쟁력이 살아나야 한다. 법인세 감세도 좋다. 미국이 역대 최고수준의 경기와 50년 내 최저실업률을 유지한 배경에는 법인세 감세와 기업친화적인 규제완화 정책이 있다. 우리는 각종 규제와 공정거래 관련법 등의 리스크 탓에 기업이 제대로 뛸 수가 없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정부 정책기조가 언제 좀 바뀔 것 같냐고 제일 많이 물어본다. 이런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에는 지금이 적기다.

ㅡ가장 큰 위협은.

▲전광우=가장 큰 뇌관은 부도 사태다. 글로벌 공급망부터 소비진작을 위한 사람들의 이동까지 멈췄다. 여러 기업들이 자금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더 커질 개연성이 많다. 부실이 늘고 저축은행 취약으로도 확산될 수 있다. 기업들 도산을 사전에 막기 위해 자금이 돌게 해야 한다.

▲최중경=분야별로 외환 건전성을 체크하고, 외환·외채 장단기 구조에 대한 미스매치를 살펴봐야 한다. 한은의 금리인하는 성급했다. 금리인하는 수요, 경기진작 효과, 자산 시장 등 세 가지를 봐야 한다. 환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금리를 내려서 그렇다. 한은은 수요만 보고 금리를 내렸다.

ㅡ2차 추경까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재정건전성 우려도 많은데.

▲박승=2차 추경도 필요하다. 20조~30조원 정도의 재난기본소득 등이 나와야 한다. 과감한 대응이 필요한 시기지만 과도한 대응은 지양해야 한다.

▲전광우=위기상황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은 불가피하다. 다만 돈을 제대로 써야 한다.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1차 추경을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2차 얘기가 나오는 건 부적절하다. 재정건전성은 최후의 보루다. 우리의 국가신용도가 높은 것은 비교적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 덕분이다. 신용평가사나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추세적으로 악화되는 재정건전성에 우려를 나타낸다.
아직 3월인데 기존 예산을 조정해서 쓸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이후 추경을 편성하고 제대로 쓰는 돈이라는 확신을 줘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끌어다쓰는 중독에 걸려 부작용만 키운다.

km@fnnews.com 김경민 김서연 예병정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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